수요 야식회

20.07.08(수)

by 어깨아빠

곧 서윤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된다. 이번 주 주일에 양쪽 부모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집에서 간소하게 사진도 찍고. 아내는 서윤이에게 무슨 옷을 입혀야 하나 고민 중이다. 서윤이 외출복 혹은 사진용 의복은 산 적이 없다. 물려받고 선물 받은 옷 중에 고르고 있다. 가끔 아내가 서윤이에게 입혀서 사진을 보내곤 한다. 사실 옷은 그럭저럭 뭐 괜찮은데, 항상 보넷이 문제다. 머리카락이 없는 서윤이가 딸이라는 걸 티 내기 위해 선택하는 소품인데 어색하기 짝이 없다.


[여보. 서윤이 어때? 안 어울려?]

[찰떡은 아닌 느낌?]


서윤이가 직접 보는 것도 아닌데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왠지 미안해서 에둘러 말했다. 사실, 안 어울렸어. 적어도 보넷만큼은. 아, 애를 셋이나 낳았지만 머리 긴 아기는 한 번도 키워보지 못한 슬픈 우리 부부여.


취침을 뒤로 미루고 놀기로 한 오늘 저녁 시간은, 근처 상가 광장에 나가 치킨을 먹기로 했다. 야외 자리에서 자유롭게. 시윤이는 낮잠을 자지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낮잠을 좀 재워야 하지 않겠냐는 나의 걱정에


"놀 때는 괜찮을걸"


이라고 일축했던 아내의 말이 다 일리가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킥보드와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야외 자리에 앉은 건, 소윤이와 시윤이가 놀기와 먹기를 마음대로 오가도록 배려(?)한 조치였다. 바로 앞에 자그마한 광장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 가능했는데 의외로 소윤이와 시윤이가 거부했다. 배달 오토바이가 아주 드물게 나타났는데 거기에 쫄았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엉덩이 붙이고 모범적인 식사 시간이 됐다.


서윤이도 제법 오랫동안 누워 있었지만 마지막까지는 아니었다. 급히 일어나서 유모차를 앞뒤로 움직이고 슬렁슬렁 걷는 척을 했더니 계속 울지는 않았다. 서서 유모차를 끌며 한 번씩 치킨도 먹고, 아내가 먹여주는 것도 받아먹고. 그래도 행복했다. 앉아서 먹지 못한다는 비관은 조금도 없었고, 그냥 그 풍경과 순간이 또 언젠가 엄청 그리워질 거 같아서, 그래서 좋았다.


"아빠. 저기 가서 놀고 있어도 돼여?"

"응, 그래. 조심하고"


잘 버티던 서윤이도 조금씩 울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다 먹었어. 서윤이 울면 내가 볼 테니까 여보는 먹어"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전거와 킥보드 타러 가고, 아내는 서윤이 달래주러 가고. 자리에는 나만 남았다. 옷도 안 갈아입고 출근했던 복장 그대로 앉아서 혼자 치킨을 뜯는 평균보다는 좀 많이 비대한 아저씨. 아내가 날 쳐다보며 웃었다.


"여보. 여기에 소주 한 병 갖다 놓으면 딱이겠는데?"


처음 밖에 나왔을 때는 시원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치킨 다 먹고 애들이랑 노느라 조금 움직였더니 땀이 삐질삐질 났다. 그래도 최대한 귀가를 채근하지 않고 (이건 엄청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속도에 맞췄다.


"아빠. 우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할까여?"

"그래, 대신 너무 오래는 못해"


오래 못하는 대신 모든 걸 쏟아내기로 했다. 뛰고 또 뛰고 계속 뛰고 마지막에는 시윤이 안고 뛰고 심지어 소윤이도 안고 뛰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아니 비보다 더 많이. 확실히 한 살, 한 살 클수록 듣기가 어려워지는, 뱃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날 뛰게 만들었다.


"하아. 애들 또 언제 샤워 시키냐"

"여보. 그럼 머리는 감기지 말고 몸만 씻겨"

"머리 감기려고 샤워하는 건데? 땀 많이 흘렸잖아"

"언제 또 말리고 그래"


결국 현실과 타협했다. 소윤이는 머리를 질끈 묶었고. 소윤이와 시윤이의 머리카락은 물에 젖지 않았다.


"여보. 애들 진짜 좋아하더라"

"그러니까. 애들도 얼마나 평일에 놀고 싶었겠어"


맨날 이러지는 못하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가끔씩은 꼭 필요한 시간이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삐걱거리는 잡소리를 없애주는 시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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