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5(수)
퇴근을 30-40분 정도 남겼을 때 아내가 서윤이 사진을 몇 장 보냈다. 거의 항상 내복만 입고 있는데 외출복을 입은 데다가 머리에는 밴드까지. 덕분에 남은 30-40분은 수시로 사진 보느라 (고작 3-4장을 계속) 제대로 일을 못했다.
얼른 집에 가서 소윤이와 시윤이의 눈을 피해 서윤이랑 좀 꽁냥거려야겠다는 부푼 기대는, 언제나 외면당한다. 퇴근해서 집에 가면 서윤이는 하루 중 가장 졸리고 배고픈 상태기 때문에 항상 운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운다'라는 게 표현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런 모습이다. 뒤집힌 개구리처럼 양손은 움켜쥐고, 두 다리는 공중에 띄우고 파르르 떨면서.
아직 퇴근한 아빠를 보며 생글생글 웃고, 노는 건 아직 상상으로만 가능하다. 언제나 울며 떠는 서윤이를 안아주기 바쁘지만, 그마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아예 아빠의 손길을 거부하고, 엄마만 찾아대는 시기가 올지도 모르니까. 울 때 내가 안아주면 멈춰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퇴근한 나에게 애교를 잔뜩 묻혀 미주알고주알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시윤이를 보며, 아내는 눈을 흘겼다. 시윤이의 이중성, 낮과 밤이 다른 두 얼굴의 네 살을 향한 야속함의 표현이었다. 그렇다고 진심이 많이 담긴 건 아니었다.
"오늘은 말 잘 들었어?"
"잘 들었겠어요?"
아내가 며칠 전에 이렇게 얘기했다. 이제 애 셋과 하는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거 같다고. 다른 말로 하면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게 많아졌다는 뜻이었다. 밖에 나가려고 정신없이 애들 옷 갈아입히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서윤이가 똥을 싸서 다시 옷 벗기고 기저귀 가는 와중에 시윤이도 팬티에 오줌 아니 똥을 싸더라도, 이전보다는 덜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는 느낌이랄까. 이게 다 내 몫이려니 하며 받아들이는 자세가 생겼다는 거다.
이렇게 날로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해 가는 아내를 뒤흔드는 거의 유일한 존재가 시윤이다. 물론 소윤이도 한 번씩 그러기는 하지만 그래도 소윤이는 아내의 통제와 지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편이다. 시윤이는 상상 그 이상이다. 애들 재우고 나면 아내는 시윤이의 만행(?)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저 시윤이가 어떤 기행(?)을 벌였는지를 얘기하곤 한다. 아마 내가 주말에 애들이랑 시간을 보내지 않는 아빠였다면, 육아의 스트레스로 아내가 지나치게 히스테리를 부리고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시윤이도 불쌍하긴 하다. 갑자기 가운데 끼인 자가 되었으니. 내 눈에는 시윤이가 사랑을 고파하는 게 보일 때도 많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불쌍한 시윤이를 잘 보필해야지 무슨 우는소리냐고 타박하지는 않는다. 나도 시윤이랑 몇 시간 아니 때로는 몇 분만에도 불쌍이고 뭐고 울그락불그락 할 때가 많으니까.
시윤아, 흉보는 거 아니야. 그냥 미친 아니 미운 아니 너의 네 살이 어땠는지 조금 자세히 기록해 두는 것뿐이란다. 오늘은 그래도 엄마가 마음에 여유가 있었는지 제법 멀쩡하구나. 니가 잘 해서 그런 건 아니란다. 엄마가 잘 참은 거지.
아침에는 잠을 방해하며 강제로 하루를 깨우는 아이들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고 잔소리도 하고. 밥 먹을 때는 자꾸 딴짓하고 깨작거려서 속 터지고, 밥그릇 치우면 또 치웠다고 징징대는 녀석과 한 판하고. 그러다 또 좋을 때는 한없이 좋게 지내다가 진짜 말도 안 되고 어처구니없는 걸로 트집 잡아 징징대는 녀석 때문에 또 한차례 달아올랐다가. 다시 또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짜증 났다가. 괜찮아졌다가. 를 여러 번 반복하고 애들을 재우고 나면 도대체 하루 종일 뭐 한 건가 싶은 공허함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가. 애들이 자고 있는 방에 자러 들어가서는 한 명씩 쳐다보고 만져보면서 하루의 고초를 거짓말처럼 잊고 다시 태초의 사랑이 샘솟는 이 '억울한' 일과의 반복이다. (무한히 반복되는 수유와 안아주기로 몸이 축나는 건 기본이고)
요즘 아내의 육아는. 애 셋 키우는 게 안 괜찮지만 괜찮아지고 있는데 안 괜찮아지기도 하다가 또 괜찮기도 하고 그런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