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을 하는 이유

20.07.16(목)

by 어깨아빠

아내는 같은 단지에 살다가 이사 간 언니네 집에 놀러 간다고 했다. 당연히 애들 셋을 데리고 그걸 놀러 가는 거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내는 요즘 육아 동지(그게 누구든)를 만나고 싶어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가 결코 심심한 건 아니지만 매일 반복되는 고된 일상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고 신선함이 깃들기를 바라는 거다. 오늘처럼 조금은 먼(차로 15-20분) 가는 일정이 있는 날은 준비하는 게 힘든 만큼 시계가 빨리 돌아가는 효과도 있다. 애들 크는 거 보면 시계바늘을 잡고 싶은데 하루를 기준으로 보면 빨리 돌리고 싶고.


아내는 오후를 거기서 보냈다. 퇴근 한 시간 전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시간상 왠지 아내가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밖에서 밥을 먹고 가자고 할 것 같았다. 전화했을 때도 아직 그 집이었기 때문에 집에 가서 저녁 차리는 건 힘들어 보였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내는 집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아내의 부지런함의 끝이 어디인가 싶었다. 나였으면 99.9% 밖에서 먹었을 거다. 부지런히 집으로 가고 있는데 아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가고 있어. 여보는? 도착했어?"

"어. 주차하고 다시 나왔어"

"왜?"

"도저히 밥을 못 하겠어서 저녁 먹을 거 사서 들어가려고"

"뭐?"

"전기구이 통닭 살까 하는데. 괜찮아? 아니면 탕수육"

"좋지. 아니면 둘 다 사"


뭐가 됐든 하나로는 우리 네 식구(서윤이는 아직 열외니까)의 배를 채울 수 없으니까. 둘 다 사기로 했다. 전기구이 통닭을 좀 한참 기다려야 한다길래 차라리 밖에서 먹고 가자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오늘은 외식. 전기구이 통닭집 앞 야외 자리에 앉아 통닭과 탕수육을 먹었다.


허리는 많이 좋아졌다. 서윤이를 안고 있을 정도로는 회복이 됐다. 항상 그 시간에는 울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서윤이는,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매우 지쳐 보였다. 통화할 때만 해도 목소리가 제법 살아 있었는데. 아내는 마지막(나와 통화하고 난 뒤부터 나를 만날 때까지)에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 시간쯤에는 큰 사건이나 이유가 없어도 힘에 부치는 게 흔한 일이다. 잘 시간이 가까워지며 귀도 닫히고, 눈도 닫히고, 반응도 더뎌지는 아이들을 통솔하는 것 자체가 큰 체력의 소모를 유발한다. 이미 쓸 체력이 바닥난 상태일 때가 많은데.


아내는 자기가 서윤이를 안고 있을 테니 나에게 편히 먹으라고 했지만 서윤이를 넘겨주지 않았다. 아내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서윤이는 매서운 울음을 크게 한 번 내뱉고는 금방 잠들었다. 저녁 먹는 내내 안고 있었다. 그래도 앉는 건 가능했다. 아내는 유모차에 눕히라고 했지만 그러면 깰 것 같았다. 깨면 아내가 안을 게 뻔하고. 앉아서 안으니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한 팔만 사용해야 하는 게 조금 불편할 뿐이었다. 불편쯤이야 뭐. 소윤이랑 시윤이도 엄청 기분 좋게 먹었다.


다 먹고 일어서서 서윤이를 유모차에 눕히는데 서윤이의 머리와 몸을 받쳤던 왼팔이 펴지지 않았다. 엄청난 통증과 함께. 헬스장에 가서 한 시간 동안 한쪽 이두박근만 운동한 다음날 같았다. 서윤아. 너도 기억해. 너 막내딸 대우 엄청 잘 받았다.


집에서 먹는 게 번거로워서 밖에서 먹기는 했지만 시간이 늦어지는 건 비슷하다. 오히려 더 늦어지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식을 하는 이유는, 다 먹고 일어설 때의 그 쾌감 때문에. 내가 먹은 그릇을 내가 치우지 않아도 되는 그 혜택 때문에.


애들을 다 재우고 나왔는데, 아내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게 우울 때문인지 피곤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여보. 많이 힘들어?"

"나? 아니. 괜찮아"

"여보가 뭔가 우울해 보여서"

"우울하지"

"왜?"

"먹을 게 없으니까"


빵 때문이었다. 빵을 먹지 못하는 아내는 오늘도 세상을 잃은 사람처럼 시름시름 앓았다. 빵수병에 걸렸다.


내일은 교회 가기 전에 빵을 미리 사 놨다가, 교회 다녀와서 하나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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