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01(목)
오전에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어제 빨래 못 널었다"
어제 애들 재우기 전 얼핏 아내가 빨래 얘기를 하긴 했었는데 아내는 그대로 잠들어 버리고 나도 미처 생각을 못했다. 다 된 빨래를 잊고 널지 못했을 때의 찝찝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내는 다시 헹굼 절차를 거친 후 빨래를 널었다.
그제부터 사 먹으려고 했던 홍루이젠 샌드위치를 매번 다 팔려서 못 먹었고 아내는 오늘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아내가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매번 실망하는 소윤이를 위해. 오늘은 꽤 일찍 갔는데도 역시나 실패. 505호 사모님의 정보에 의하면 공사 중이라서 그런 거라는데 그럼 [매진]이 아니라 [공사중] 이라고 써 붙여야 되는 거 아닌가?
홍루이젠 실패 후 아내와 애들은 리스토어(카페)에 갔다. 소윤이가 동영상을 보냈다.
"아빠 저는 지금 마카롱 먹고 있어여. 어, 어, 시윤이는 자고 나는 마카롱 먹어여. 마카롱 먹고 큐티도 하고 그럴거에여"
애교가 철철 넘치는 말투로 본인의 상황을 전한 소윤이에게 아내가
"소윤아. 사랑한다고도 해야지"
라고 말하자
"아빠 사랑해여. 아빠 많이 사랑해여. 내가 뽀뽀해드릴게여"
라고 얘기했다. 비록 엎드려 절 받기였지만 그래도 좋다. 안타깝게도 마카롱을 다 먹고 큐티를 하려는 찰나 시윤이가 깼다고 한다. 리스토어에는 야외 마당이 있어서 애들이랑 가면 시간 보내기가 좋다. 많이 쌀쌀해지긴 했어도 아직 낮에는 따뜻해서 춥지 않게 입히면 충분히 놀만하다. 나중에는 하람이(505호 사모님 딸)까지 합세해서 한참을 리스토어에 머물렀다.
퇴근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시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들어가 보니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고. 소윤이는 날 보더니 반갑게 와락 안겨서는 일체의 절차 없이 바로
"아빠. 나랑 놀자여 놀자여"
그러더니 바로 안겨서는 날 나무로 여기는 듯 올라타고 매달리고 이런저런 자세를 주문했다. 시윤이도 그걸 보더니 자기도 누나랑 똑같이 해달라며 매달리고.
"아빠. 나랑 나랑"
"소윤아. 시윤이도 같이 해줘야 안 울지"
열심히 놀아주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누구도 마음 상하지 않게 분배까지 해야 한다. 저녁 메뉴는 자연드림에서 사 온 짜장면이었는데 시윤이한테는 면만 줬다. 소스까지 주면 뒷 일이 너무 많아지니까.
아내한테는 애들 저녁 먹이고 나갔다 오라고 오후에 얘기해놨다.
"왜? 마지막 외출이야?"
"마지막은 무슨"
애들 밥 다 먹이고 나서 아내가 소윤이, 시윤이한테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엄마 나갔다 올 게. 오늘은 아빠랑 자"
"엄마 오늘 운동가는 날이에여?"
"어. 헬스하고 오려고"
소윤아 헬스는 1시간도 안 한단다.
용케 알아들은 시윤이는
전혀 울지 않았다
"읏냥, 읏냥"
하면서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아내는 나갔고 애들도 금방 잠들었다. 얼른 나와서 짐을 쌌다.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혼자 훌쩍 떠나는 거라 쌀 짐이 많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싸다가 속옷과 양말에서 주춤했다. 베란다 건조대에 없었다. 방 안에서 꺼내 와야 하는데 잠든 아이들이 있는 방에 침투하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갈등했다.
'이따가 꺼낼까'
깔끔하게 지금 딱 다 싸 놓고 싶은 마음이 커서 침투를 감행했다.
기도비닉.
군대에서 전시 상황이 벌어지면 적이 아군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빛도 소리도 모두 차단하고 은폐엄폐하는 걸 말한다. 미션임파서블의 톰크루즈로 빙의했다. 거실의 모든 불을 끄고 휴대폰을 손에 들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적외선 감지기가 있는 양 조심조심 발을 옮겨 서랍을 열었다. 이 모든 동작은 마치 슬로우 효과를 건 것처럼 아주 천천히. 속옷과 양말을 조심스레 꺼내는데 시윤이가 뒤척거렸다. 헉. 휴대폰을 끄고 급히 없는 척을 했다. 망했다. 시윤이가 고개를 쳐들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확인하려고 했다. 날 봤는지 아니면 엄마가 없는 걸 알았는지 아무튼 울어재꼈다. 보통은 울다가도 안아주면 금방 잠잠해졌는데 오늘은 악을 쓰고 울었다. 안아줘도 몸부림치고 눕혀도 몸부림치고.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매우 곤란했다. 소윤이까지 뒤척이고. 멍청이같이. 그냥 이따 아내가 오면 들어와도 될 것을 괜한 욕심을 부린 스스로를 자책했다. 톰크루즈는 무슨. 시윤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시윤아. 엄마 없어. 얼른 누워"
마치 첩보 영화에서 적을 협박하는 암살자처럼. 그래도 계속 울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막상 눕고 나서는 금방 잠들기는 했다. 그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허"
"왜? 애들 깼어?"
"허. 지히그흠 바항히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허. 치히키힌"
"어디꺼?"
"모홀라하. 여허보호 마함대해로호"
"무슨 맛?"
"아할아하서허. 마할기힐게헤 모홋해헤"
"알았어"
무사히 애들을 재우고 다시 거실로 탈출했다. 아내가 영화를 제안했고 조금 더 큰 화면 (그래 봐야 우리 부모님 집이나 처갓댁의 TV 화면이겠지만) 에서 보고 싶어 미루던 신과 함께 2를 봤다. 중간에 한 번 소윤이가 깨서 들어갔다 오기는 했지만 무사히 시청을 마칠 수 있었다.
"여보. 이제 얼마 안 남았네?"
"그러게"
"좋아?"
"좋긴"
좋긴. 엄청 좋지. 우하하하하하하하.
오예.
드디어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