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2(수)
서윤이의 뒤집기는 한층 발전했다. 여전히 팔을 완전히 빼지는 못하지만 처음에 비하면 훨씬 완성도 높은 자세를 취하는 게 가능해졌다. 아내가 뒤집은 (혹은 뒤집힌) 채로 고개를 빳빳이 들기 위해 용을 쓰는 서윤이 사진을 보냈다. 뒤집기는 모르겠고 서윤이 얼굴만 보였다. 상사병이 말기에 이르렀다.
아내는 오늘도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 505호 사모님과 함께하는 외출이긴 했지만 어쨌든 셋 데리고 나가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이제 너끈히 소화하는 느낌이다. 아파트 놀이터나 동네 마트 정도를 데리고 나가던 게, 어느새 차를 태워서 제법 멀리까지 진출하고 있다. 그것도 덩치가 워낙 커서 골목길에 잘못 들어가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내와 참 안 어울리는 차를 가지고.
아내가 외출복 입은 서윤이 사진을 보냈는데, 제법 딸 같았다. 요즘은 워낙 여성스럽다는 말을 조심해서 써야 하는 시대지만, 아내와 나에게는 서윤이를 여성스럽게 입히고 싶은 욕망이 있다. 소윤이도 서윤이랑 똑같았다. 민머리. 이거 하나만으로도 아들이냐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다. 아내와 내가 '오늘은 그래도 딸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뿌듯했던 날에는 아예 성별 여부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이야, 장군감이네'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고. 시윤이는 아들이었으니까 넘어갔고. 혹시나 서윤이는 풍성한 머리숱을 자랑하며 태어나는 건 아닐까 기대했지만, 유전자의 힘은 강력했다. 소윤이의 재림이었다. 난 서윤이 데리고 다닐 기회가 주말밖에 없어서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아내는 많이 듣는다고 했다.
"아들이에요?"
그래서 누가 봐도 딸처럼 보이게 입히고 싶은 바람이 있는데, 힘을 주면 줄수록 아들이 딸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오늘은 그런 그간의 흐름에서 다소 진일보한 옷차림이었다. 군복에 칼같이 각을 잡고 나온다고 한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남들 눈에는 여전히 아들일지 몰라도.
[서윤이를 딸처럼 보이게 하는 스타일을 찾아가는 중이야]
아내는 오늘의 코디에 만족하며 이렇게 자평했다. 나나 아내나 드러내놓고 자식 자랑하는 편은 아니라서, 우리 둘이 서로 난리다. 남들 앞에서는 '아, 그런가' 시큰둥한 척하지만 아내와 나의 카톡, 대화에서는 그런 내숭이 필요 없으니까.
아내는 저녁으로 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서윤이 낳고 나서는 라면을 먹었던 적이 아마도 없지 싶다. 수유, 그러니까 서윤이에게 안 좋을까 봐라기보다는 아내의 가슴에 좋지 않으니까 멀리했다. 아내도 굳이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꽤 오랜만의 라면이었다. 실제로 얼마나 차이가 날는지는 모르지만 심정의 위안이라도 얻기 위해 한살림 라면을 샀다.
퇴근했더니 아내는 열심히 저녁 준비 중이었고 애들은 각자 놀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같이, 서윤이는 혼자 바닥에서. 손 씻고 당장 서윤이에게 가고 싶었지만 날 향해 달려드는 소윤이와 서윤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만약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한테 달려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참 서운할 일이다. 누구든 찾아주는 이가 있을 때가 행복한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와 짧고 굵게 (굵은지는 모르겠고, 짧은 건 확실했다) 놀고 바로 서윤이에게 갔다.
이 영악한 백일둥이가 마치 날 기다렸다는 듯, 방글방글 웃었다. 소리까지 내면서. 이때다 싶어서 요상한 소리와 표정으로 웃겨주니 더 웃고. 꼭 나한테 말하는 것처럼 소리도 내고(나만의 믿음이지만, 그냥 소리가 아니다. 나름의 박자와 분절성을 지닌, 마치 언어와 같은 느낌이다). 보통은 아주 짧게 그 시간을 허락해 주고, 곧바로 울기 시작해서 (우리가) 밥 먹을 때가 되면 안아주지 않고는 못 베길 정도로 우는데 오늘은 잠잠했다. 밥 먹는 내내 누워서 모빌을 보며 팔과 다리를 꼬물락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더 데리고 놀고 싶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를 키우며 경험한 게 있으니 자제했다. 육아인에게는 순간의 유혹을 잘 참아야 할 때가 있다. 특히 서윤이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아기를 키울 때는 더더욱.
시윤이는 자기 입으로 하람이 누나랑 헤어질 때 울고 떼를 썼다고 자백했다. 아내가 시윤이와 관련해서 별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아마 오늘도 적잖이 애를 먹였을 거 같다. 요즘 시윤이에게는 기본치라는 게 있다. 아내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매일 기본으로 깔리는 피로와 고단함이 바로 그것 때문일 거고.
애들 재우고 나왔다가 다시 자러 들어가면, 꼭 하는 일이 있다. 자고 있는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얼굴 보고 (이것마저도 서윤이를 가장 먼저, 오래, 애절하게 본다), 옆에 누워 얼굴이며 손이며 만지면서 귀찮게 하기. 아직 서윤이에게는 하지 않고 있다. 후폭풍을 감당할 준비가 안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 누워서 두 녀석의 손을 잡고 있으면 진심으로 '너무 행복하다' 이런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도 그렇게 아름답게 잠들었다가, 새벽부터 나를 깨우고 성가시게 구는 소윤이에게 버럭 짜증을 냈다. 그럼 또 '거실에서 자든가 해야지' 하면서 씩씩대다가도 막상 밤이 되면 다시 애들 사이로 기어들어가고.
새벽에 좀 깨지 좀 마. 그럼 우리가 함께하는 밤 시간이 더 아름다워질 거야. 니가 서윤이도 아니고. 왜 그렇게 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