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북의 필요성

20.07.28(화)

by 어깨아빠

소윤이는 오늘도 일어났다. 오늘은 어제처럼 그리움의 온도가 뜨겁지 않아서 사실 혼자만의 시간을 좀 보내다가 출근하고 싶었는데 소윤이가 꽤 일찍 나왔다. 물론 티를 내지 않고 반갑게 안아서 무릎 위에 앉혔다. 말은 이렇게 해도 막상 소윤이랑 얘기하다 보면 뭔가 감정이 샘솟는다. 6살이어도 어쨌든 내가 낳은 자식 중에 현재로서는 가장 말이 통하고,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느낌을 주는 게 소윤이니까.


출근하기 직전에는 아내와 서윤이도 나왔다. 시윤이만 만나지 못했다.


아내가 낮에 네이버 아이디를 해킹, 도용당한 것 같다며 사진을 보냈다. 누군가 모르는 번호로 제보(?)를 해서 확인했더니, 중고나라에 아내 아이디로 안마 의자를 판다며 올린 글이 있었다. 물론 그런 걸 소유한 적도 판 적도 없었고. 다른 카페에도 게시글이 있었다. 확인해 보니 이상한 휴대폰 번호가 등록되어 있었다. 얼른 비밀번호를 바꿨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긴 했는데 문득 두려웠다.


"내 네이버 계정 해킹 당하면 일기 다 날아감"

"생각만 해도 끔찍"


나라는 인간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아무런 백업도 없이 올렸을까.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PDF 저장 기능으로라도 옮겨 놔야지 생각은 하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진짜 그렇다. 아무튼 아내 말처럼 생각도 하기 싫다.


"맥북이 있어야 함"

"맥북 있으면 쉽게 돼?"

"아니. 내가 기분 좋게 일함. 생일 선물로 신발은 됐고 사과나 사 줘"

"요즘 아오리 사과 나오던데? 그거?"


내 친구들 카톡방이었으면 레미콘 10대 분량의 비난을 받아도 모자랄 개그 아니 훈민정음이 나열된 문장이었다. 아내니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그냥 '읽고 씹었'다.


낮에 장모님이 오셨다. 친한 권사님도 함께 오셨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권사님이랑 재밌게 놀고 있었다. 메모리 게임을 하고 있었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메모리 게임의 굴레. 서윤이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간단하게 계란밥을 먹였다. 아내와 나는 애들을 재우고 수제 버거를 사서 먹었다. 아내 말로는 집에 먹을 반찬이 없었다. 새로운 반찬을 채울 필요도 없었고.


저녁 먹는 소윤이와 시윤이 앞에 앉아 조잘조잘 이것저것 얘기하는 두 녀석의 하루 일과 보고를 들었다.라고만 얘기하면 너무 핑크빛이니까 조금 더 사실을 기록해 보자. 애들, 아니 시윤이 밥 먹는 걸 앞에서 보고 있으면 멀쩡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던 감정이 들뛰기 시작한다. 그나마 오늘 저녁은 시윤이가 양호한 편이었다. 심하게 졸리거나 뭔가 심사가 뒤틀린 날에는 어찌나 속이 터지게 하는지.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을 판 일 때가 많다. 나도 훈련 중이다. 앞에 앉아서 그런 모습을 여과 없이 보면서도 감정을 다스리며 들어줘야 할 건 듣고, 가르쳐야 할 건 가르치는걸. 훈련 중이라고 했지 그렇게 하고 있다고는 했다. 부모는 강형욱 훈련사도 됐다가 훈련받는 강아지도 됐다가 그런 존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금방 잠들었다. 아내는 4박 5일 치 짐 싸기에 바쁘고.


서윤이를 데리고 가는 최장거리, 최장기간 여행이다. 서윤이에게는 미안하리만치 서윤이로 인한 걱정이나 염려, 고려, 배려 따위가 없다. 아내와 나 모두. 마치 작년에도 서윤이가 있었던 것처럼 당연한 듯 여기고 있다.


서윤아, 무관심이 아니다. 짬에서 나오는 배포라고 생각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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