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9(수)
5시 30분이 목표였다. 딱히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계획보다 30분 늦은, 6시에 집에서 나왔다. 작년에 비해 식구가 한 명 늘어난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하는 서윤이지만(아, 뒤집기도 시작했구나), 이 녀석 하나로 유발되는 바쁨과 분주함은 상상 그 이상이다. 두 동생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을 때 소윤이는 아내와 나만큼 빨리 일어나서 함께 부지런을 떨었다.
우리 가족에게나 휴가지, 많은 이에게는 출근하는 수요일이었다. 30분 늦게 출발한 대가를 제법 혹독하게 치르고 서울을 빠져나왔다. 우중충하게 비까지 내렸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출발하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다시 잠들었다. 소윤이는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잠을 이기려고 애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애를 쓰지도 않는 거 같다) 아무튼 한참을 쌩쌩하게 갔다.
오히려 아내가 잠과의 사투를 벌였다. 난 운전할 때 네 가지를 본다. 룸미러, 왼쪽 사이드 미러, 오른쪽 사이드 미러, 그리고 아내. 운전하다 졸음이 몰려오면 어떤 방법을 써도 소용이 없다. 먹어도, 때려도, 자세를 곧게 고쳐도 다 무용지물이다. 입을 벌려 이야기를 쏟아내는 게 잠을 떨쳐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내와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의 '듣는 시간'이 길어지면 한 번씩 아내를 봐야 한다. 자나 안 자나. 혹시나 헷갈릴까 봐 짚고 넘어가자면 내가 운전자고 아내는 동승자다. 운전자인 내가 동승자인 아내가 자는지 안 자는지 살피며 간다.
"어우, 여보. 졸리다"
"여보. 자. 나 안 졸려. 괜찮아"
"아니야. 그래도 깨 있어야지"
졸음은 말과 의지로 물리칠 수 없다.
"어, 여보. 잠깐 졸았네"
"응? 여보 30분 잤는데?"
"진짜? 아니야. 잠깐 졸았는데?"
"차라리 푹 자. 일어나려고 하지 말고"
"그럴까? 알았어. 여보 졸리면 나 깨워. 무조건 깨워"
깨어 있는 소윤이가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하기에는 소윤이와 나 사이가 너무 멀고, 내부의 소음도 만만하지가 않다. [90-00년대 노래방 인기 발라드] 노래를 틀고 핏대를 세워가며 따라 부른다. 아직까지는 이게 제일 효과가 좋다.
"아빠. 너무 시끄러워여. 그만 좀 불러여"
"미안. 아빠가 이래야 잠이 깨"
소윤이의 구박을 받을 때도 있지만.
9시에 휴게소에 들어가서 아침을 먹었다. 서윤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는데 아내는 서윤이를 깨우는 게 아까웠는지 그냥 차에서 기다리다가 혹시나 서윤이가 깨면 나가겠다고 했다. 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휴게소로 들어갔다. 나도 별로 아침 생각은 없었다. 아내가 같이 들어왔으면 모를까 혼자 뭘 먹기도 귀찮았다.
"소윤아, 시윤아. 뭐 먹을래?"
이것저것 음식을 읊어줬다. 그중 괜찮은 거 몇 가지를 추려서 제안했다. 소윤이는 떡만두국, 시윤이는 돈까스를 골랐다. 두 개를 시킬 필요는 없었다. 시윤이를 잘 설득해서 떡만두국을 시켰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거면 애초에 물어보지 말지 왜 물어봤나 싶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배가 고팠는지 꽤 잘 먹었다.
아내가 차에서 나오지 않는 걸로 봐서 서윤이는 계속 자는 듯했다. 서윤이가 깨기 전에 다시 출발해야 하니 급히 차로 돌아가려는데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왜 그냥 가여?"
"그냥 가다니?"
"아니. 왜 휴게소에서 뭐 맛있는 것도 안 먹어여?"
"아, 지금 시간이 없어서. 여기까지 오는 게 생각보다 막혔잖아"
"그래도여. 뭐 하나라도 사자여"
"소윤아.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나중에 오자"
소윤이와 시윤이는 기특하게도 나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물론 못내 아쉬운 표정이긴 했다. 그걸 보니 또 미안했다. 휴게소에 가면 뭐 엄청 신나고 대단한 일이 있을 것처럼 바람을 넣어 놓은 건 나였으니까.
"소윤아. 그럼 우리 잠깐 들어가 볼까?"
들어가긴 했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뭐가 됐든 그 자리에서 먹고 가려면 시간이 늦어질 테고, 그건 좀 부담스러웠다. 다시 소윤이와 시윤이를 설득했다.
"얘들아, 살 게 진짜 없다. 오늘은 그냥 가고 나중에 우리 울산에서 우리 집에 갈 때 그때는 꼭 들러서 맛있는 거 사 줄게"
다시 한번 그럴 거면 도대체 왜 데리고 들어갔나 싶었다. 스스로.
소윤이도 피곤하긴 했는지 잠이 들긴 했다. 딱 30분 자고 일어났다. 초특급 공부 영재가 TV에 나와서
"정말 졸릴 때 딱 30분 자면 다시 머리가 맑아져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30분 체력을 회복하더니 다시 쌩쌩해졌다.
목적지는 순창이었다. 울산의 (울산에 가면 신세를 지는) 두 가정과 일단 순창에서 1박 2일을 하기로 했다. 우리까지 포함해서 어른 6, 애 8. 거기에 순창에 거주하는 처치홈스쿨 선교사님네 가정, 그 옆집 식구도 합류했다. 어른 10, 애 17.
어른 10, 애 17.
5 가정이 모였는데 애가 17명이라니. 엄청난 규모였다.
일단 담양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떡갈비 정식을 먹었다. 맛이 좋긴 했는데 엄청 매콤했다. 대놓고 매운 건 아니었고, 입에 넣고 몇 번 씹으면 매운 내음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생각보다는 강렬하게.
"아빠. 이거 너무 매워여"
"아, 그래? 그럼 다른 반찬이랑 먹어"
소윤이는 자기 그릇에 있던 떡갈비 반 덩이를 도로 나에게 주려고 했다. 소윤이가 옮기던 떡갈비는 내가 미처 쏜 쓸 틈도 없이 수직 낙하를 시작했다.
"어, 어"
하는 사이에 떡갈비는 내 배와 허벅다리에 튕겨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떡갈비 덩이도 아까웠지만, 얼룩진 내 옷이 더 속상했다. 입은지 6시간, 그중 차에서 6시간. 이제 겨우 빛을 본 하얀 티셔츠와 반바지에 떡갈비의 흔적이 남았다. 함께 식사를 하던 선교사님이 아니었으면 순간적으로 끓는점을 넘은 나의 감정이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대신 어금니를 꾸욱 깨물었다.
"소윤아. 다음부터는 아빠한테 해 달라고 해. 알았지?"
밥 먹고 옆에 있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 수는 여전했다. 어른 10, 애 17. 카페가 그리 크지 않았고 모든 자리를 점령했다. 어른들은 자리를 잡았고 애들은 바깥 잔디밭으로 뛰어나갔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가끔씩 세차 지기도 했고. 아무튼 나가서 놀면 옷이 흠뻑 젖을만한 양이긴 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어른들의 증언으로 보아 하니 비를 맞는 건 둘째 치고, 아예 잔디에 구르고 적시고 난리도 아닌 모양이었다. 바깥에서 노는 게 끝나고 등장한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냥 다 젖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기에 흙탕물 투성이었다. 평소에는 비로 생긴 아주 작은 물웅덩이도 발이 더러워진다며 못 밟게 했는데, 이게 웬 떡이냐 싶었을 거다.
그 자리에서는 어떻게 처리할 수준이 아니라 일단 옷을 벗겨서 차에 태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 모든 게 일탈이고 즐거움이었다. 흙탕물에 뒹구는 것도, 홀딱 벗고 차에 타는 것도.
숙소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자마자 애들을 씻겼다. 내가 씻겼는지 다른 사람이 씻겼는지 모르겠다. 다들 육아의 베테랑이고 막역한 사이라 니 애, 내 애 구분이 없었다. 집단 육아의 장점이다.
층간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집보다 완화된 정숙 유지 조항'으로 신이 난 아이들은 숙소 내부가 운동장인 듯 뛰어다녔다. 누군가 한 명은 누워 있는 서윤이를 밟고 지나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신이 사납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시끄럽게 뛰어다녔다. 소리 지르는 건 기본이었고. '휴가니까 그 정도는 봐 줄게'라고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선을 넘는 게 다반사였다. 그래도 휴가이기도 하고, 모두 내 애가 아니기도 하고, 또 애들이 떼거지로 모여서 노는 게 귀엽기도 해서 모르는 체해도,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그만. 너무 시끄러워"
"얘들아. 그건 너무 위험해"
"얘들아. 조금만 천천히"
저녁은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고기 굽느라 정신이 없어서 애들이 어떻게 먹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잘 먹었을 거다. 고기 굽고 먹는 동안에도 애들은 계속 놀았다. 걷고 뛰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처럼 한시도 쉬지 않았다. 사람이 많다 보니 고기 굽는 것도 만만치가 않았다. 식사 시간이 꽤 길었다.
우리를 포함한 세 가정은 그 숙소에서 자는 거였고, 나머지 두 가정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를 포함해 숙소에서 자야 하는 집의 아이들은 먼저 잠자리에 누웠 아니 눕혀졌다. 바깥에서 시끄럽게 뛰노는 소리가 여전히 들리는데 방에 들어가서 자는 게 달갑지도 않고 영 슬픈 일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아이들을 배려해 주기는 어려웠다. 어른들의 휴가도, 어른들의 밤도 소중하니까.
애들을 모두 재우고 나와 밤늦게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두 가정이 갈 때까지가 1차, 그 뒤로 무려 새벽 3시가 넘을 때까지 2차.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 꼭 수련회에 온 느낌이었다. 앞으로 남은 날을 생각하면 첫날 너무 무리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원래 놀 때는 열과 성을 다 해야 하는 거니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다음 날이 되면 출근해야 하는 주일은 도둑같이 찾아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