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0(목)
우리가 묵은 숙소는 넓긴 했지만 공간 분리가 많이 되지는 않았다. 방 하나에 아주 넓은 거실 겸 주방 혹은 쓰임에 따라 방이 되기도 하는, 이렇게 두 공간이었다. 방에서 아이 여덟 명과 엄마 세 명이 자고 넓은 다목적 공간에서 아빠 세 명이 잤다. 아침 아니 새벽이었던 거 같다. 잠에서 깬 아이들이 하나, 둘 방에서 나왔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어렴풋이 아내가 일어나 애들 밥을 차려주는 장면도 있었다. 애들을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엄청 많아 보였다. 아마 서윤이 빼고 자가 거동이 가능한 아이는 전부였던 거 같은데.
나중에 들어보니 아내가 아주 일찍부터 일어나서 애들 아침을 차려줬다고 했다. 원래 토스트를 먹기로 했는데 애들이 하도 배가 고프다고 해서 어제 고기 먹을 때 남았던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줬다고 했다. 집단 육아의 또 다른 장점. 우리 애들만 있었으면 어쩌면 그렇게 기쁘게 아침을 차려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친밀하고 내 애 같아도 어쨌든 다른 집의 아이도 있다 보니 까만 마음은 누르게 되고 하얀 마음은 쥐어 짜게 된다. 좋은 효과다.
아침으로는 토스트를 먹었다. 애들은 분명히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고 했는데 누가 보면 아내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토스트를 잘 먹었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뭘 해도 규칙과 순서가 필요했다. 지역은 달라도 다 처치홈스쿨 하는 애들이라 어느 정도 통일된 규칙을 배운 아이들이라 다행이었다. 토스트를 먹을 때도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아이부터 (사실 의미가 없는 것이, 모두 어찌나 바르게 앉아 있는지) 나눠줬다. 다른 엄마가 나눠 줬는데 소윤이를 깜빡하고 마치 모두 나눠준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소윤이는 울음이 터졌다. 이런 걸로 그리 서럽게 우는 걸 보면 아직 애는 애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이었다. 날이 좀 맑고 더웠으면 숙소 앞에 있는 물웅덩이에서 물놀이라도 했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건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막상 물놀이를 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만들어졌다면, 귀찮고 힘들어서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울산으로 넘어가야 했는데 가는 길에 어제 오셨던 선교사님 댁에 잠깐 들러 수박을 비롯해 이것저것 전달해 드리기로 했다. '잠깐'이 잠깐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 점심시간이라 점심을 먹고 가라는 권유가 계속되었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선교사님 댁 바로 옆집(어제 점심 함께 먹은 가족)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다시 한번 인원 규모를 짚고 가자면, 어른 10명, 아이 17명. 총 27명. 아이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웃고 떠드는 소리와 모습에 흐뭇해지다가도 갑자기 꿈에서 깬 듯 '이 혼란한 광경은 무엇인가'하는 생각과 함께 정신없기도 하고. 애들은 돈까스, 어른들은 탕수육을 먹었다. 소란스럽고 정신없고 이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때도 있었지만 (서윤이가 울어서 서윤이도 안고 있었다) 어쨌든 맛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방에 들어가 다른 아이들과 놀았는데 소윤이가 방에서 나와 내 무릎에 앉았다. 딱 보아하니 흥미를 잃은 듯했다. 울산의 아이들을 빼면 대부분 어색한 얼굴이고, 노는 방법도 소윤이 성향에 맞지 않았나 보다. 얼핏 보니 때려 부수는 게 주요한 놀이의 흐름이었다. 소윤이도 좋아할 때가 있지만 대체로는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다. 시윤이는 재미가 있는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소윤아. 아빠랑 밖에 산책하고 올래?"
"밖에여?"
"어. 시윤이 잘 놀고 있을 때 얼른 나가자. 아빠랑 둘이만"
"좋아여"
순창에서도 가장 깊은 골짜기인 마을이라고 했다.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사람을 구경하는 건 힘들었다. 그렇다고 무슨 오지는 아니었다. 큰 차도도 뚫려 있고 정비된 마을이었지만 시골은 시골이었다. 소윤이 손을 잡고 어른 걸음으로는 5분 정도 걸릴만한 거리를 산책했다. 중간에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만났을 때는 잠깐 멈춰서 발도 담그고. 소윤이는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난 너무 좋았다. 동네에서도 아주 가끔 소윤이랑 둘이 걸을 때가 있지만 이곳의 느낌하고는 천지 차이였다. 일단 엄청 조용했다.
"소윤아. 엄청 좋지?"
"뭐가여?"
"아빠랑 산책하는 거"
"좋져"
"아빠는 엄청 좋은데"
"왜여?"
"그냥. 소윤이랑 둘이 이렇게 나오니까. 소윤아. 아빠랑 나중에 여행 갈까?"
"아빠랑? 둘이여?"
"어. 왜? 싫어?"
"아니여 좋져"
"엄마랑 시윤이는 집에 있고 소윤이랑 아빠만. 1박 2일로. 괜찮겠어?"
"그럼여"
돌아올 때는 목마를 태워서 왔다. 다시 집(아까 밥 먹었던 그 집)에 돌아오니 시윤이가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에서 나왔는데 아빠랑 누나만 산책을 갔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우울해진 거다.
"그럼 시윤이도 산책 갈까?"
다시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까 소윤이랑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었다.
"소윤아. 우리 이런 시골로 이사 올까?"
"그러자여"
"그런데 여기 오면 마트에 가기도 힘들고 친구도 만나기 힘들 텐데. 괜찮겠어?"
"그래여? 그럼 싫어여"
"대신 자연이 엄청 좋잖아. 공기도 좋고"
"그건 좋긴 한데 너무 시골은 싫어여"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니 이번에는 모든 아이들이 산책을 하러 나간다고 했다. 물론 어른이 동행해야 했고, 아빠들이 따라나섰다. 내가 우리 애들을 데리고 나갔던 건 아이용 산책이었다면 이번 산책은 어른용 산책이었다. 선교사님이 길을 인도했는데 엄청 멀리까지 가셨다. 어디까지 가시는 걸까 싶은 궁금함 반 걱정 반인 마음이 들 때쯤, 공사 때문에 막다른 길이 나타났다. 이미 거기까지 가는 동안 녹록지 않았다.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조금 어려도 능숙하게 뛰어다니고 앞서 나가고 그랬다. 길이 험하지는 않았는데 산길이라 이따금씩 한쪽으로는 절벽(?)도 등장했다. 애들 마음대로 뛰어 가게 하는 건 아무래도 불안했다. 열심히 쫓아다니고 부르고, 멈춰 서게 하면서 갔다. 이 자체가 엄청난 체력의 소모였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는 다른 집 아이가 자꾸 넘어졌다. 아직 너무 어려서 삼촌인 나를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엄마와 아빠를 찾았다.
"삼촌. 엄마, 아빠는 어디에 있나요?"
라고 정중하게 물을 리 만무했다.
"아빠아아아아아아악, 엄마아아아아아아아악"
한 두어 번 넘어졌을 때마다 잠시 안아서 달래주고 다시 내려놓고 그랬는데 내려놓으면 얼마 안 되어서 다시 넘어졌다.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아서 쭉 안고 걸어왔다. 산책을 마치고 나니, 분명히 산책이었는데 군 시절 행군을 마쳤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이때쯤에는 '이제 그만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 봐야 우리 집이 아닌 남의 집에 신세 지는 건 똑같았지만 어쨌든 조금 더 적은 사람, 적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순창에서 울산까지도 세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내가 가장 취약한 시간이기도 했고 행군 아니 산책도 거하게 한 터라 엄청 졸렸다. 아내에게 여러 얘기를 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아내는 눈을 뜨지 못했다.
"여보. 차라리 잠깐 자고 일어나. 억지로 깨지 말고"
"알았어. 여보"
아내는 한 30분 자고 일어났다. 나도 너무 졸려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아내가 깼고, 내 졸음도 달아났다.
남은 울산의 일정은 한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오늘 저녁도 거기서 먹었다. 가는 길에 아구찜과 아구 불고기를 포장했다. 애들은 김밥. 세 가정으로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어른보다 아이가 많았다. 어른 6, 아이 8. 난 일단 샤워부터 했다. 오랜만에 샤워의 욕구가 온몸을 휘감았다. 날도 습한 데다가 가만히 있으려야 가만히 있기 힘든 인원 구성이다 보니 하루 종일 땀을 흘렸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샤워가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육아일기인데 애들 이야기가 별로 없는 건, 그만큼 애들이 크게 힘들게 하거나 어렵게 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여있는 그 자체로 뭔가 피로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 싸우거나 되바라지게 구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다. 다들 참 잘 지냈다. 거기에 서윤이도 한몫했다. 물론 서윤이가 평소에도 순한 편이지만
"와, 어떻게 이래. 진짜 순하다. 꼭 없는 거 같다"
라는 감탄을 계속 자아낼 정도로 없는 듯 조용했다. 혼자 누워서 놀고, 그러다 잠들고. 조금 찡찡대서 안아주면 또 금방 괜찮아지고. 잠들고. 놀고. 잠들고. 아내와 나의 관심이 필요 없을 정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애들을 모두 재우고 다시 어른들의 시간을 시작했다. 오늘은 거의 2시까지. 한 가정은 내일 지리산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야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 가족을 배웅하고(잠든 그 집 아이들을 차로 날라줬다) 바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 편의점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물론 애들은 집에서 자고 있었다. 어른 넷의 소소한 일탈이었다. 짜릿했다. 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긴 한데, 역시나 밤공기를 맞으며 거닐고 수다를 떠는 건 또 그만의 매력이 있다.
10여 분의 일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애들은 아무도 깨지 않고 잘 잤다.
낮에 결코 편안한 일정이 아니었는데 놀 때는 밤이 아무리 깊어도 피곤하지가 않다. 일 할 곳이 있는 게 정말 감사하긴 한데, 놀면 더 감사하다. 휴가가 이틀이나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