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가족의 여름 휴가 3

20.07.31(금)

by 어깨아빠

남의 집에 얹혀 지내는 주제에 일어나기도 엄청 늦게 일어났다. 나의 늦잠은 누군가의 초특급 빠른 기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육아의 실상이거늘. 나는 물론이고 아내도 늦잠을 잤다. 아무래도 방에서 자다 보니 아이들이 나가고 오히려 더 편해졌나 보다. 서윤이까지 방에서 나가고 (스스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없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아침도 먹고, 재밌게 놀고 있었다. 느지막하게 일어났는데 마침 울산에서 같이 일하던 동기 형이 울산에 있다길래 급히 점심 약속을 잡고 나갔다. 도망친 건 아니었다.


정말 딱 점심만 먹고 왔다. 한 시간짜리 외출이었다. 나를 제외한 어른들은 라면, 애들은 짜파게티가 점심이었다. 집에 다시 돌아갔을 때 한창 먹고 있었다. 잘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신경 쓰지 않았다. 잘 먹었겠지 뭐.


서윤이는 누보백 덕을 톡톡히 봤다. 아, 서윤이가 덕을 본 건 아니고 아내와 내가 봤다는 말이다. 오히려 서윤이는 답답했을지도 모르겠다. 울산에 오기 전에 엄청 뒤집고 그랬는데 누보백 안에 딱 맞게 누워 있으니 뒤집을 기회가 없었다. 뒤집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 번씩 미안하긴 했는데 서윤이가 너무 조용하기도 했다. 막 울고 답답하다고 짜증 내고 그랬으면 바닥에 눕혔을 텐데. 여전히 없는 아이처럼 조용히 혼자 누워서 놀다가 잠들었다가 깨고, 그래도 조용히 누워 있고 그러니까 미처 꺼내줄 생각을 못 했다. 아무튼 엄청 순했다.


오늘의 일정을 의논하며 잠시 바닷가 이야기도 나왔지만 뭔가 버거웠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어른(그래 봐야, 아내 포함해서 세 명이지만)이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놀이하는 건 좋은데 바다 물놀이는 하고 나서가 너무 피곤하다.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삭신이 쑤시고 피로에 휩싸이는 느낌이었다. 내일이 되어서 마음과 체력의 여유가 좀 생기면 그때 고려하기로 하고 바다에 가는 건 일단 보류, 아니 애초에 고려하지도 않았다.


태화강 생태관에 가기로 했다. 사실 난 일정과 관련해서 아무런 의견도 의지도 없었다. 정해지는 대로 따라갈 준비만 했다. 어제까지 꾸물꾸물하던 날씨가 확 바뀌어서 찜통 같은 더위가 찾아왔다. 진짜 찜통이었다. 습기는 채 몰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태양은 강렬해지고, 기온은 올라가고. 태화강 생태관이 실내라 정말 다행이었다. 뒤처리고 뭐고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은 날씨였다.


예전에 갔을 때보다 좀 보완이 된 건지, 아니면 예전에도 똑같았는데 그때는 소윤이가 어려서 별로 관심이 없었던 건지. 아무튼 뭔가 더 좋아진 느낌이었고 애들도 즐거워했다. 소윤이는 친구인 은율이와 걸음을 맞췄고 거기에는 대성씨(은율이 아빠, 신세 지는 집 주인)가 있었다. 난 시윤이와 함께 걸었다. 시윤이는 살아있는 거북이가 있는 곳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어제 소윤이랑 둘이 산책했던 시간만큼이나 좋은 시간이었다. 자기가 본 것 하나하나를 엄청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놀라며 전해주는 모습을 보는 게 퍽 재밌었다. 아내와 승아 자매(은율이 엄마, 신세 지는 집 주인)는 서윤이 유모차를 밀며 실내 산책을 즐겼다. 대성씨는 쉬지 않고 아이들 곁을 지켰다. 그냥 지키는 것도 아니고 대체로 아이들의 요구에 적극 호응하기도 하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역시. 울산의 션. 울산의 세인트 대성.


거기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규모는 엄청 크고, 직원들의 유니폼은 정장인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는데 주변 환경은 자연 그 자체였다. 산도 높고 주변이 온통 푸르렀다. 게다가 카페 앞에는 커다란, 아주 커다란 잔디밭도 있었다. 아이들의 달리기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문제는 너무 더웠다는 거다. 카페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빵으로 버텼지만 빵을 다 소진하고 나서는 아이들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한 번씩 나가서 잠깐 걷고 들어오기는 했지만 아이들의 욕구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잠깐이었지만 밖에 나갈 때마다 사우나에 입장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아이들을 따라나섰다. 물론 나보다 먼저 울산의 성자가 움직였고 난 그를 따를 뿐이었다. 난 그의 신발 끈을 맬 자격조차 없다. 애들은 덥지도 않은가 나가자마자 엄청 뛰어다녔다. 술래도 얼음, 술래가 아닌 이도 얼음, 땡은 자기 마음대로인 난장판 얼음땡을 하면서. 난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땀이 줄줄 흘렀다. 잠깐 카페에 다시 들어갈 때 마치 냉장고 문을 연 듯했다.


저녁도 그 근처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가려던 곳이 휴무일이었다. 근처의 다른 곳을 물색했지만 마땅치 않았고 (신세 지는 집) 동네에 가서 먹었다. 바닥에 앉아서 먹는 곳이었는데 서윤이는 푹신하지도 않은 방석 위에 눕혀놔도 전혀 싫은 내색이 없었다. 오히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어줬다. 울산에 와서 부쩍 웃음이 늘었다. 그새 좀 컸나 보다. 서윤이만 조용히 있어주면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다.


집에 가자마자 애들을 씻겼다. 휴가 기간에는 어쩌다 보니 매일 샤워를 시켰다. 그러지 않고서는 찝찝할 정도로 땀을 많이 흘리기는 했지만, 그건 평소에 집에 있을 때도 비슷했다. 아무튼 소윤이와 시윤이, 은율이까지 차례대로 씻겼다. 헌신과 봉사의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고, 조금이라도 빨리 재우고 고요한 밤을 맞이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모두가 서두른 덕분에 제법 이른 시간에 각자 아이를 재우고 다시 거실에서 만났다. 각 집의 남편들이 애들을 재우는 동안 아내와 승아 자매는 치킨을 사러 나갔다 왔다.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었다. 기억해야 할 이야기도 있었고, 그때 웃고 잊어도 될만한 이야기도 있었고. 어쨌든 재밌었다. 이것 때문에 매년 울산에 오는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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