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가족의 여름 휴가 4

20.08.01(토)

by 어깨아빠

일어난 건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서윤이도 안 나가고 있길래 (아무도 꺼내주지 않았겠지. 너도 울지 않고 조용히 누워 있었을 테고) 서윤이를 안고 놀았다. 누워서 배 위에 앉혀 놨는데 한참이나 울지도 않고, 울기는커녕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아빠와 동생이 깨서 놀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기 전까지는 그러고 놀았다.


오늘은 은율이네 교회에 가기로 했다. 승아 자매와 대성씨가 각각 교회에서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점심은 그 근처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애들을 여럿 데리고 가서 먹기에는 굉장히 복잡하고 협소한 곳이었지만 마침 유모차 놓을 공간이 있는 자리였고, 서윤이도 얌전히 있어줬다. 아내가 도착하자마자 수유를 한 덕분이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서윤이가 금방 울음을 터뜨렸다.


애들 입이라고 무시 못 하는 게 다들 참 잘 먹었다. 은율이는 파스타, 소윤이랑 시윤이는 피자, 가을이(은율이 동생)도 피자. 요즘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하는 예상을 보기 좋게 깰 때가 많다.


승아 자매와 대성씨가 각자 볼 일을 보러 가고 아내와 나는 애들을 데리고 교회 꼭대기 층에 있는 자모실에 있었다. 큰 감자탕 가게에 가면 있을 법한 미끄럼틀과 방방이가 딸린 놀이 기구(?)가 있었다. 아내와 나는 한숨 돌렸다. 열심히 뛰고 돌아다니다가 블록도 가지고 놀고, 아내와 나는 관찰자로만 머물러도 충분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우리(아내와 나)의 참여를 요구하지 않았다. 서윤이는 안에서나 밖에서나 누보백 신세였다. 안에서는 꺼내주는 걸 깜빡해서 그렇고, 밖에서는 뭔가 바닥이 더러울 텐데 깔아줄 게 없으니 못 꺼내고. 그래도 울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찌나 잘 자던지.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볼 일을 마친 승아 자매와 대성씨가 돌아왔다. 교회 마당(혹은 주차장) 한 쪽에는 모래밭이 있었다. 그 옆으로는 여러 마리의 닭도 있었고. 실내에서의 놀이가 지겨웠는지 애들이 나가서 모래 놀이를 하겠다고 했다. 아내와 승아 자매, 서윤이는 자모실에 남았다.


애들은 신이 나서 모래밭으로 뛰어 들어갔다. 대성씨가 나에게 뭔가를 건넸다. 자그마한 캠핑 의자(아니면 낚시 의자?)였다. 이런 의자가 참 희한한 게 눈으로 보기만 할 때는 굉장히 허접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막상 앉아 보면 생각보다 편하다. 대성씨가 건넨 것도 마찬가지였다. 대성씨와 나란히 앉아서 애들이 모래 가지고 노는 모습, 그 주변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거니는 닭을 지켜봤다.


자꾸 눈이 감겼다. 교회 건물이 시원한 그늘도 만들어줬고, 마침 바람까지 선선하게 불었다. Saint 대성은 졸리지도 않은 듯 계속 깨어 있었다. 물론 가을이가 아빠를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긴 했다.


"형, 좀 자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뭐가 아니고 뭐가 괜찮다는 거였을까. 그렇게 말하고도 정신없이 졸았 아니 대성씨 입장에서는 잔 거나 마찬가지였을 거다. 내가 운전할 때 아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내가 그대로 하고 있었다. 졸면서도 '깨야 한다'라는 의식은 있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교회 사모님이 사다 주신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서야 정신을 좀 차렸다.


아내와 승아 자매는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승아 자매가 서윤이 옆에 누워 잠들었다는 소식을 아내가 전해줬다. 덕분에 애들은 모래 놀이를 원 없이 했다. 교회에 하루 종일 있었던 셈이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어디 돌아다녔으면 엄청 피곤했을 거다. 캠핑 의자가 신의 한 수였다. 집에 돌아가면 캠핑 의자부터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동네는 바닷가였다. 눈에 바다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 바다 내음이 느껴졌다. 여름휴가라면 모름지기 물놀이가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그게 잘 안됐다. 미리 준비를 꼼꼼하게 하지 않은 탓도 있고, 더 정확히는 코로나 때문에 물놀이는 아예 배제한 면도 없지 않았다. 물론 소윤이와 시윤이는 수시로 바다는 언제 가는 거냐고 물었다.


어느새 저녁 시간이었다. 지리산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던 시언이네(순창에서 함께 지낸 나머지 한 가정의 첫째 아들, 7살)도 다시 합류해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전복밥을 파는 가게였는데 아주 맛있었다. 수도권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음식이었다. 안타깝게도 맛을 깊이 음미할 시간은 없었다. 서윤이가 오늘은 참기 어려웠는지 막 울어 젖혔다. 순식간에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서윤이를 안았다.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그래. 안아주기만 해도 그쳐줘서 고맙다. 계속 울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한 그릇을 다, 맛있게 먹기는 했지만 식사 시간이 너무 짧아 밥 먹었다는 사실조차 잊는 건 아닐까 싶었던 저녁 식사였다. 다 먹고 나서 카페에 갔는데, 우와 여기가 정말 엄청난 곳이었다. 그동안 내가 갔던 그 어떤 카페보다 만족스러운 '바닷가 카페'였다. 내가 좋아하는 항구 바닷가를 적당히 높은 곳에서 넓게 내려다볼 수 있고, 무엇보다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1-2년만 지나도 금방 유명세를 치러서 지금의 한적함이 사라질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기는 했다. 거기에 야외 자리가 자갈밭과 잔디밭이라 애들이랑 가기에도 너무 좋았다. 해 질 녘이 되니 날씨도 아주 선선했고. 식당에서 카페까지 걸어가는 길도 어촌 마을의 오래된 집, 그 안에서 생선을 다듬는 할머니, 낮은 돌담 같은 걸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무튼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최고의 카페였다(커피 맛은 아주 나쁜 정도는 아니었지만, 거기서는 자판기 커피를 마셔도 최고급 원두로 내린 에스프레소 맛이 날 거 같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도 모자라지 않을 그런 카페였다).


애들도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았다. 애들이 경치를 즐기는 법은 몰라도 그런 자연에 가까이 있으면 받는 기운이 분명히 있을 거다. 삭막하고 복사, 붙여넣기의 연속인 아파트 숲에서 보내는 일상과는 분명히 다를 거다. 단순히 농촌이고 시골인 곳이 아니라 가까이에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서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더욱 짙어졌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아이들 사이에서 격렬한 토론이 오갔다.


지난 목요일, 순창에서 울산으로 갈 때, 은율이가 시언이네 차에 타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소윤이는 자기도 시언이 오빠 차에 타고 싶다며 그래도 되냐고 물었다.


"소윤아. 그건 상관없는데 그럼 시윤이는 어떻게 하지? 시윤이도 타고 싶다고 할 텐데"


그때부터 소윤이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예를 들면, "그동안 누나가 많이 양보했으니까 너도 양보해", "그럼 다음부터 누나도 양보 안 한다" 등) 제안을 쏟아냈다. 당연히 시윤이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서로 타겠다며 격론을 벌이던 와중에 시윤이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누나아. 나는 누나랑 같이 타고 가고 지퍼. 누나가 없뜨면 독당해에"


소윤이도 움찔했지만 다른 집 차를 타고, 오빠랑 이야기하며 가고 싶은 욕구를 떨쳐내지는 못했다. 결국 점심 먹고 순창에서 울산으로 오는 동안 소윤이는 시언이네 차를 타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누느라 잠시 시윤이를 혼자 차에 뒀는데, 나중에 보니 시윤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시윤아. 왜? 왜 울어?"

"누나가 없더더여"

"진짜?"

"네. 누나가 없더더 독당해여엉"


시윤이는 진심이었다. 불쌍하기는 했는데 내심 뿌듯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은근히 우애가 깊었다는 걸 확인한 셈이었으니까.


목요일에 이런 일이 있었고 오늘은 은율이가 우리 차에 타기로 했다. 시윤이는 이걸 이해를 잘 못한 건지 계속 자기'도' 은율이 형아 차에 타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누나가 은율이 차에 타는 게 아니라 은율이가 우리 차에 타는 거라면서, 니가 은율이 형아 차에 타도 은율이 형아는 없다는 걸 열을 올려 설명했다. 그럼 시윤이는 계속 그래도 은율이 형아 차에 탄다고 그러고. 그렇게 여야의 100분 토론처럼 애초에 합의할 생각이 없는 논쟁을 벌이다가, 갑자기 극적 타결이 이뤄졌다.


"누나아. 나느으은 누나아라아앙 가아치이 타느은게에 조오타아고오"

"그래, 시윤아. 누나도 같이 탈 거야. 같이 탈 건데 은율이 형도 우리 차에 탄다고. 알았지?"


아내들은 아까 그 카페에 있었고 아빠들과 아이들은 잠시 그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차를 가지러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대서 데리고 갔다 왔는데 은율이가 안 보였다. 소윤이는 당황했다.


"아빠. 은율이 어디 갔어여?"

"글쎄"


대성씨(울산의 성자, 은율이 아빠) 차가 보이길래 가서 물어봤더니


"아, 은율이는 시언이 차에 탔어여"


라고 얘기했다.


"소윤아. 은율이 시언이 오빠 차에 탔다는데?"

"네? 왜여?"

"글쎄. 카페에 갈 때까지만 탄다는 건가"

"아빠. 이따 카페에 가면 저도 내려서 물어보자여. 알았져? 아빠 얼른 가여. 얼른"


거기서 카페까지는 2-3분 거리였다. 그동안 소윤이는 매우 당황했고, 계속 '이상하다. 은율이가 왜 시언이 오빠 차에 탔지. 우리 차 타고 같이 간다고 했는데'라는 말을 읊조렸다.


카페에 도착했고, 은율이는 우리 차에 올라탔다. 소윤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집으로 가는 20-30여 분의 시간 동안 [김은율 청문회]가 시작됐다. 소윤이는 "왜 말도 하지 않고 시언이 오빠 차에 탔는가,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는가, 다음부터는 말하고 가라"며 은율이를 다그쳤고(?), 은율이는 "난 카페에 갈 때까지만 탈 생각이었고, 너에게도 말하려고 했는데 아빠랑 얘기하다 보니 까먹었다, 나중에 차에서 니가 당황했을까 봐 나도 걱정했다"라고 해명했다. 이 공방을 집에 가는 내내 벌였는데 아내와 나는 어찌나 재밌었는지. 글로 남기려니 아이들의 순수함과 진지함이 담기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의 장면.


"내가 잠깐 생각을 잃어버려서 그랬지" - 은율

"생각이 뭔데?" - 시윤

"생각이 뭐냐면, 뇌야. 뇌" - 소윤

"생각은 하고 싶은 말을 머리에 담아두는 거야" - 은율


은율이의 표현이 기가 막혔다. 은율이는 '생각을 잃어버리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도 "생각이 잠깐 다른 데 갔다 오는 거"라고 설명했다. 감성도 유전인가.


집에 복귀한 시간이 어제보다 많이 늦었다. 그 늦은 시간에 아이들은 목욕을 요구했다.


"아빠. 우리 목욕해도 되여?"

"목욕? 너무 늦지 않았을까?"


"삼촌. 우리 아빠가 목욕해도 된다고 했어여"

"아, 그래? 아빠가 그러셨어?"


Saint DS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있었다. 차원이 다른 배려와 수용. 배워야 한다. 우리 집이었으면


"소윤아. 이 시간에 무슨 목욕이야. 간단히 씻고 자. 내일 봐서 시간 되면 목욕하자. 못 할 수도 있고. 상황 봐서"


당장의 거절은 물론이요, 내일의 거절의 가능성까지 알렸을 텐데.


내일 주일이기도 하고, 은율이네는 9시까지 가야 한다고 해서 일전의 날들처럼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지는 못했다. 그래도 1시는 됐지만.


믿기지 않는다. 이제 다시 복귀라니.

내 휴가 누가 훔쳐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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