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주일)
은율이네는 일찍 교회에 가야 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났다. 우리 가족도 함께 일어났다. 은율이네는 그 바쁜 와중에 우리 가족이 먹을 아침으로 불고기까지 준비해 줬다. 정작 본인들은 아침도 안 먹고 교회에 가려고 했다. 이때 승아 자매와 대성씨의 고전류 신경전이 시작됐다. 시간이 촉박하니 일단 얼른 가자는 승아 자매와 굶고 가면 점심때까지 배가 너무 고프니 몇 숟가락이라도 먹고 가자는 대성씨. 은율이와 가을이도 배가 고프다고 했다. 서서 준비하며 밥을 먹고, 먹이는 대성씨와 이를 지켜보는 승아 자매의 신경전은 집에서 나갈 때까지 계속됐다. 나가서는 어찌 됐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가끔 부모님 집에 가면 부모님 집에서도 볼 수 있고.
평소에 비하면 엄청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여유가 있었다. 여유가 있었지만 여유가 있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여유가 없어지는 주일 아침의 마법을 피하기 위해 늘어지지 않았다. 은율이네는 급히 가느라 빨래도 못 널고 갔다. 그걸 그대로 두면 퀴퀴한 냄새 때문에 다시 빨래를 해야 할 건 당연했고. 날이 계속 꿉꿉해서 먼저 널어놓은 빨래도 여전히 마르지 않은 상태라 걷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빨래를 널기에는 자리가 턱없이 모자랐지만 자취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꾸역꾸역 쑤셔 널었다. 싱크대에 쌓여 있던 설거지도 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3박 4일 동안 먹고 잔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객의 마음이랄까. (3박 4일? 한 1박 2일 같은 느낌인데 3박 4일이라고?)
우리는 시언이네가 다니는 교회(이자 소윤이가 태어나고 아내와 나의 신혼을 보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소윤이는 시언이가 드리는 유치부 예배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원래 8월부터는 다시 어린이 예배에 보낼 생각이었다. 소윤이는 씩씩하게 시언이를 따라갔다. 은근히 어색한 장소와 사람을 가리는 소윤이의 성격상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이제 그 정도는 의지로 극복이 가능한가 보다. 많이 컸다. 서윤이는 아내가 수유를 했는데도 자지 않고, 좀 칭얼댔다. 한참 동안 서서 안고 예배를 드리다가 아내에게 건넸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 다시 시언이네, 은율이네와 만나 점심을 먹었다. 점심 먹고 나서는 새로 이사한 시언이네 집에도 갔다. 뭘 그렇게 자꾸 만나고 헤어지지 못 하나 싶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려고 울산 가는 거다. 게다가 오늘은 마지막 날이었으니까.
소윤이에게 곧 가야 한다고 얘기해 주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울음을 그치고 나서도 징징거렸고. 마치 할머니, 할아버지와 헤어질 때처럼. 얼마나 아쉬울까 싶기는 했다. 그것도 자기만 떠나는 모양새였으니. 굉장히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서윤이는 마지막까지 순하게 자는 모습만 보여줬다.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서윤이도. 난 열심히 달렸다. 내가 달린 건 아니지만. 2시간 넘게 달리고 휴게소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였다. 곰탕과 쌀국수를 한 그릇씩 시켜서 나눠주고 아내도 쌀국수를 조금 먹었다. 약속한 게 있으니 마트에 들어가 군것질거리를 사줬다. 이런 데서는 오히려 나보다 더 칼 같은 때도 많은 아내에게 맡겼다. 아내와 아이들은 빼빼로 하나와 해바라기씨 초콜렛 골라서 왔다. 빼빼로는 4개씩, 해바라기씨 초콜렛은 아내가 한 주먹씩 쥐어서. 아내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끼니를 때우는 병사들처럼, 빠르고 분주하게 먹었다. 아내가 한 움큼 쥔 해바라기씨 초콜렛을 소윤이와 시윤이의 입에 욱여넣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가,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항상 그렇지만, 역시나 뭔가 꿈을 꾼 듯했다. 조금 전까지 울산이었는데 갑자기 우리 집인 것도 그렇고 5일의 휴가가 끝나고 내일 출근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