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목)
새벽에 소윤이가 온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낑낑댔다. 끙끙 앓는 소리와 짜증 내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하도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 통에 옆에서 자던 나도 잠에서 깼는데, 뭔가 쌔한 느낌이었다. 바로 소윤이의 팔과 다리를 만져보고 이마를 짚었다. 뜨끈했다.
"소윤아. 힘들어?"
"네"
"많이 힘들어?"
"많이는 아니고 조금 힘들어여"
체온계로 열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열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불덩이처럼 뜨겁지는 않았고. 어제 뭔가 신나지 않아 보이던 이유가 다 있었구나.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의 밝기를 보아하니 알람이 울릴 시간이 머지않은 듯했다. 이때부터는 나도 비몽사몽이긴 했는데 첫 알람이 울렸을 때 끄고, 한참 더 늦은 시간으로 다시 맞췄다. 혹시라도 소윤이가 푹 잠들지 않았을 때 일어나면 소윤이까지 잠을 설칠까 봐 소윤이가 푹 잠들 때까지 옆에 누워서 기다리다가 나도 살짝 잠이 들었다.
다시 알람이 울렸을 때는 다행히 소윤이가 깊게 자고 있었다. 다들 곤히 자고 있었다. 출근하고 나서 아내에게 알려 주려고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일어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한참 더 있다가 통화가 됐다. 소윤이도 늦게까지 자고 시윤이도 늦게까지 자고, 아내도 늦게까지 잤다고 했다.
소윤이는 38도 정도였다. 아내와 시윤이, 서윤이는 무사했다. 소윤이는 엄청 힘들어하지는 않았지만 기운은 없다고 했다.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점심때쯤 잠들었다. 아픈 누나 덕분에 시윤이가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엄마랑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마침 서윤이까지 자고. 아내는 어느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배달 시켜서 점심으로 먹고 있다며 시윤이와 찍은 사진을 보냈다. 시윤이의 웃는 표정은 평소에 보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괜히 더 행복해 보였다. 아내도 시윤이가 엄청 아기처럼 좋아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엄마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마음껏 누리는 건, 세상 모든 첫째들의 큰 특권이다.
아플 때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열이 더 오르거나 상태가 더 안 좋아질 때도 많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열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오전보다 더 잘 논다고 했다. 소윤이의 몸 상태가 눈꺼풀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평소에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가 아프거나 피곤할 때만 보이는 쌍꺼풀이 소윤이의 왼쪽 눈에 생겼다.
소윤이가 이렇게 열이 나며 아픈 건 거의 반년도 더 된 거 같다. 너무 오랜만의 일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잠깐만 나갔다 와도 철저하게 손을 씻었더니 정말 잔병치레가 말끔히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아픈 소윤이가 굉장히 어색했다. 아내는 머리가 멍해져서 (하도 오랜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가 안 된다고 했다. 사실 뭘 어떻게 할 필요는 없었다. 병원에 가서 해열제를 먹이든, 그냥 열이 떨어지길 기다리든 둘 중 하나였다. 우리는 주로 후자를 택했고 오늘도 그랬다. 혹시 모르니 내일까지 열이 안 떨어지면 보건소나 병원에 전화해서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소윤이한테도 혹시 숨이 가쁘고 힘들지는 않은지 자주 물어봤다. 다행히 그런 건 없다고 했고 보기에도 그래 보였다. 안쓰러웠다. 다 큰 줄 알았는데 아프니까 또 엄청 불쌍하네. 어제도 힘들었을 텐데 괜히 밖에 데리고 나갔나 싶기도 했고.
소윤이는 체리와 바나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체리와 바나나를 사 들고 퇴근했다. 아내가 누룽지도 사 오라고 해서 누룽지도 사 왔다. 소윤이는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누룽지만 조금 먹었다고 했다.
"이제 많이 힘들지는 않은데 기운이 좀 없어여"
소윤이는 스스로도 이렇게 얘기했다. 소윤이는 일반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어쨌든 밥이 들어간다는 건 몸이 좀 회복이 됐거나 그럴 거라는 신호였다. 물론 이러다가도 먹고 나면 속이 안 좋아서 토하고 그러기도 해서 계속 신경은 쓰고 있었다. 소윤이한테서 느껴지는 기운은 괜찮았다. 어제는 신나야 할 상황인데 뭔가 '신나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면 오늘은 더 아파야 할 상황인데 뭔가 '멀쩡한' 기운이 느껴졌다. 열도 오히려 떨어진 듯했다.
혹시라도 아내나 시윤이, 서윤이에게 옮았을지도 모르니까 수시로 확인을 했다.
아내에게는 "여보는 괜찮지?"라고 물어봤고, 시윤이와 서윤이는 수시로 이마를 짚어 보며 상태를 가늠했다.
그러고 보니 다섯 식구가 되고 나서는 열이 나거나 아팠던 사람이 없었다. 아내가 유선염 걸렸을 때 빼고는.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 사이 훌쩍 큰 소윤이가 아픈 게 영 안쓰러운 건지 행동은 의연했는데 마음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이번에 아프고 나면 또 훅 크려고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