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비타민, 양파즙

20.08.10(월)

by 어깨아빠

아침부터 무척 피곤했다. 선물로 받은 고려은단 비타민C와 엄마가 보내준 양파즙을 열심히 챙겨 먹고 있지만, 피로 앞에 장사 없는 것인지. 아니면 주말 육아의 여파인지.


아내도 나와 비슷한 월요일을 보내는 중이었다. 점심시간 무렵에

[당이 필요하다]

라면서 카톡을 보냈다. 무엇 때문에 당이 필요한지 묻지는 않았지만, 뻔했다. 아이 셋과 분초를 다투며 사는 '엄마'에게 당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을까. 한 시간쯤 지나고 아내에게 물었다.

[당은 충전되었나?]

[아니. 청소하고 빨래하느라 물도 못 마셨넹]


가끔 밤에 애들 재우고 여유를 찾는 시간에 아내에게 묻곤 한다.

"여보. 오늘 한약 먹었어?"

"아, 맞다. 까먹었네"

"요즘 한약 잘 챙겨 먹고 있어?"

"아니. 며칠 못 먹었네"

"잘 좀 챙겨 먹어"

다 아내가 안쓰럽고 걱정이 되니까 하는 말이기는 한데, 아내라고 챙겨 먹기 싫어서 의지를 가지고 일부러 잊은 건 아닐 거다. 한약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나가는 날이 다반사니까 그랬을 거고, 설령 생각이 났더라도 바로 먹지 못하는 어떤 상황이 계속되었을 거고.


밥을 아직 못 먹었다는 아내의 말에

"밥도 안 먹고 뭐 하냐"

며 구박하려면 적어도 애들을 내가 모두 책임 지거나, 밥상이라도 뚝딱 차려 놓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애들 내가 볼테니까 얼른 먹어" 라면서. 물론 그럴 상황은 아니었으니 응원했다. 마음으로. 부디 바쁘지만 맛있는 점심을 먹기를.

퇴근하면서도 한 번 더 물어봤다.

"당은 충전됐어? 뭐 사다 줄까?"

"아니 괜찮아"


라더니 통화를 끊자마자 카톡이 왔다.

[윌 커피? 남옥 언니가 오늘 노티드 간대서 구매대행 부탁했어]


역시 아내는 허튼사람이 아니었다. 다 이유가 있었다.

퇴근하면 저녁 먹고, 씻기고 바로 재우기 때문에 저녁 먹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즐겁기 위해서 올바르지 않은 식사 태도를 무작정 눈감아 주는 건 어렵기 때문에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애들이 알아서 우걱우걱 잘 먹는 거다. 오늘이 딱 그랬다. 쌈 채소와 돼지고기볶음이었는데 실제로 엄청 맛있기도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꼬박꼬박 쌈을 싸서 '열심히' 먹었다.

"소윤아, 시윤아. 너무 맛있지 않니? 얼마나 감사해. 이렇게 맛있는 거 맨날 먹고"

"맞아여. 아빠 저도 엄청 맛있어여"

"아빠아. 더는 이여케 땀 따더 먹으는 게 도아영"

"소윤아, 시윤아. 엄마는 아빠가 이렇게 맛있게 먹으면 좋아"


그러면서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진짜 '주고받는' 대화가 가능해졌다니!)

잘 키운 30분 식사 시간, 10시간 놀이터 안 부럽다. 진하게 부대끼고 노는 건 주말에 하고, 평일에는 식사 시간의 질을 높여야 한다. 더. 그래서 시윤이의 식사 시간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거고. 때가 되면 다 괜찮아진다는 건, 반만 맞는 말이다. 때에 맞게 가르칠 건 잘 가르쳐야 때가 되면 괜찮아지는 거다.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도 아내는 집안일에 열심이다. 어떤 날은 소파에 늘어져 있다가 뒤늦게 시작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나오자마자 열심히 집안일부터 하고 소파에 앉기도 하고. 순서의 차이는 있지만 온전히 집안일에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을 개미처럼 부지런히 사용한다.

아내가 구매 대행을 부탁한 그 빵을, 애들 재우고 나와서 아내와 나눠 먹었다. 당 충전만 되고 살 충전은 안 되면 좋으련만, 그건 감수해야 한다.

당도 높은 빵, 비타민C, 양파즙. 뭐라도 효능을 발휘해서 내일은 좀 덜 피곤하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