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주일)
분명히 이른 아침에 아내가 깬 걸 본 거 같은데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아내는 매트리스 위에서 자고 있었다. 내가 본 게 꿈이 아니라면, 아마 아침 수유를 하고 바로 다시 잠든 듯했다. 내가 일어난 시간도 이미 꽤 늦은 시간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이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
"아빠. 배고파여"
거실에 나가자 소윤이와 시윤이 둘이 동시에 그렇게 말했다. 어제 약속한 대로 계란밥을 해주려고 했는데 계란이 두 개 밖에 없었다(다른 곳에 더 많이 있었는데 그걸 몰랐다). 시윤이는 밥 위에 계란 프라이를 얹은 '진짜 계란밥'을 원했다.
"시윤아. 그런데 밥도 조금 부족하고 계란도 두 개 밖에 없어서 그냥 볶음밥으로 해야 할 거 같아"
"왜여?"
"엄마도 같이 드셔야지"
시윤이는 '엄마'도 먹어야 된다는 말에 바로 수긍했다. 아내는 내가 깨우기 전에 먼저 일어나서 나왔다. 내가 눈을 떴을 때부터 이미 시간은 촉박했다. 비는 어제보다 더 세차게 내렸다. 시간은 얼마 안 남았지, 비는 세차게 내리지. 애 셋을 준비시키고 차에 태우는 과정 자체가 만만하지 않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집에서야 지하 주차장이 있으니 상관없었지만 교회에서는 아니었다. 출입문 바로 근처에 차를 대고 이동 거리를 최대한 줄여도, 비가 워낙 강하게 내리니 조금만 맞아도 금방 젖었다.
"여보. 점심 어디서 먹지?"
"그러게. 지하 주차장 있는 곳에서 먹고 싶다"
"그렇지? 그런 데가 있을까"
일단 집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면서 이케아(옆에 붙어 있는 쇼핑몰)를 후보지에 올렸다. 주차장에 진입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여보. 안 되겠다. 사람 너무 많다"
혹시 스타필드는 어떨까 싶어서 가 봤다. 이케아는 아무것도 아닌 정도의 많은 차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와. 여보. 사람들 대단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다들 가네"
그냥 집으로 왔다. 대신 점심은 피자를 사서 들어왔다. 아내는 한 번씩 피자를 먹고 싶어 한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잘 먹은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계산해 보니 고작 한 조각씩이었다. 그럼 그 많은 피자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응, 아빠.
배가 부르니 꾹 누르고 있던 피곤함이 연기처럼 스물스물 새어 나왔다.
"아, 먹고 한숨 자면 딱 좋겠네"
"좋은 생각이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잘 거냐고 물어봤다. 그러겠다는 대답이 돌아올 리 없다는 걸 당연히 알았지만 그냥 한번 물어봤다. 당연히 거절했다. 아내랑 같이 들어가기를 바랐다. 혼자 들어가면 너무 미안하니까. 아내도 그러겠다고 했는데 서윤이가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서윤이가 금방 깰 거 같아. 여보 먼저 들어가서 자"
"여보도 같이 들어가면 좋은데"
"서윤이 다시 재우면 들어갈게. 먼저 들어가"
의리 없게 혼자 방에 누웠다. 아내가 들어오기 힘들다는 건 예상했다. 서윤이가 자기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으면 모를까. 그렇게 2시간을 잤다. 아주 달콤하게. 잘 잤는데 좀처럼 잠이 깨지 않았다. 아내의 얼굴에도 잠이 가득했다. 톡 쓰러뜨리면 바로 잠들 것 같았다.
"여보. 여보도 들어가서 좀 자"
"아니야. 지금 자면 애매해. 괜찮아"
미안한 마음에 괜히 들어가서 자라고 부추겼지만, 낮잠을 자기에 늦은 시간이기는 했다.
애들도 답답했을 거다. 주말인데 어디 나가서 놀지도 못하고. 비는 계속 오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해를 못 보니 기분이 더 쳐지는 듯도 했고, 여전히 피곤하기도 했다. 의지를 발동시키기 전에 나도 모르게 애들한테 차갑고 다정하지 않은, 더 솔직히는 짜증이 섞인 말이 자꾸 나갔다. 좀 미안했다. 사죄의 의미를 담아 엄청난 성가심을 감내해야 하는 목욕을 제안했고, 애들은 흔쾌히 응했다(베란다에 있는 커다란 욕조를 낑낑대며 화장실로 옮겨야 했고, 목욕이 끝나고 물기가 마르면 그걸 다시 원래 자리에 갖다 놔야 한다).
고작 목욕으로 무수히 뱉었던 듯한 나의 짜증과 다정하지 않음을 지워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 녀석을 모두 재우고 모든 걸 마치고 나니, 더 미안함이 몰려왔다. 서윤이만 나의 감정의 화살을 피해 갔다. 애초에 조준 대상도 아니었고.
자러 들어가서 자고 있는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 누워 두 녀석의 손을 잡고 미안한 마음을 마음으로 전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얘기했다.
"오늘 피곤했나. 애들한테 너무 짜증 낸 거 같아서 미안하네"
"피곤해서 그랬겠지"
갑자기 소윤이가 몸을 뒤척이면서 잠꼬대처럼 말을 이어 받았다.
"누가 짜증을 많이 내여?"
"어? 소윤아, 깬 거야?"
"네. 누가 짜증을 내여?"
"아니. 아빠가 소윤이랑 시윤이한테 그런 거 같다고. 미안해"
"괜찮아여"
그러더니 금방 또 잠들었다. 우와, 이게 첫째 딸의 위엄인가. 자면서도 아빠의 짐을 덜어주는 이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