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토)
엄청 늦게 일어났다. 나만. 아내의 배려였다. 배려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일찍 일어나서 소란을 피우는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까지 거두어 거실로 나가면 그게 배려다. 덕분에 난 아주 호사스러운 늦잠을 누렸고.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간만에 아무 약속도 계획도 없는 토요일이라 한가롭게 보내긴 했는데, 비가 잔뜩 내리는 바람에 어디 나가기가 어려웠다. 소윤이나 시윤이보다 오히려 내가 더 답답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둘이 잘 놀았다. 이런저런 역할극을 하면서.
집에서 머무는 조금은 답답하지만 여유로운 주말의 가장 큰 이로움은, 평일에는 24시간 동안 못 볼 때도 많은 서윤이를 마음껏 본다는 거다. 서윤이가 웬만하면(수유를 하거나, 안아주면) 울음을 그치는 편이기도 하지만, 가끔씩 그러지 않더라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막내딸을 향한 애정이 다른 모든 감정을 이기고 있다. 안 힘든 건 아니다. 요즘은 소윤이, 시윤이 때보다 체력이 달린다는 게 느껴질 때도 많다. 곱씹어 보면 힘든데 막상 순간에는 안 힘든 것처럼 마취가 된다.
주말의 또 다른 즐거움은 애들 먹을 음식을 해 주는 거다. 평일에는 도저히 그럴 시간과 여유가 나지 않으니 주말에나 겨우 시간이 생기는데, 최근 몇 주는 이렇게 집에서 한가롭게 보낸 토요일이 드물었다. 오늘은 떡만두국을 끓여줬다. 아내와 아이들의 극찬(가족 advantage 아주 많이 작용함)은 아빠를 춤추게 한다.
"여보. 우리 맛있는 커피라도 마시러 다녀 오자"
"그래. 그러자"
일부러 조금 먼 (차로 30분) 곳으로 갔다. 나들이 기분도 낼 겸. 아내와 내가 마실 커피 한 잔씩과 함께 먹을 빵과 (조각)케이크를 샀다.
"너무 많이 샀나?"
"그래? 아닐 거 같은데"
아내는 빵 하나에 케이크 하나가 너무 많은 건 아닌지 걱정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무서운 속도로 입을 벌리고, 씹고, 삼키고, 다시 입을 벌리기를 반복했다.
"소윤아, 시윤아. 좀 기다려 줘. 엄마도 먹어야지"
"그러게. 엄청 잘 먹네. 밥 먹을 때도 그렇게 좀 먹으시지?"
게다가 빵은 아내도 엄청 좋아했다. 아내가 진짜 맛있는 걸 먹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걸 먹으면 "와, 이거 진짜 맛있다"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아내 말로는 그래야 먹는 음식의 '맛있음'이 극대화된다나 뭐라나.
어떤 모습이었냐면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빵을 잘라서 한 조각씩 입에 넣어주면 애들은 맛있게 먹는다. 그 사이 아내는 자기가 먹을 빵도 자르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미 목 넘김을 마치고 다시 입을 벌리고 기다린다. 아내가 자기 몫을 입에 넣기도 전부터. 그럼 내가 옆에서 케이크를 소윤이와 시윤이 입에 넣어준다. 함께 먹으려고 샀지만 감히 함께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보. 각자 하나씩 먹어도 다 먹겠는데?"
서윤아. 엄마 모유 많이 많이 먹어라. 이런 거 몸에도 안 좋아. 일찍 먹어서 뭐 하겠니.
그래도 나름 좋은 시간이었다. 일단 서윤이가 극도로 강렬하게 울지 않았다. 유모차에 좀 누워 있기도 했고, 울면 안아줬고 그러면 또 금방 괜찮아졌다.
저녁도 밖에서 먹었다. 카페 옆에 있는 생선구이 집에 들어갔다. 여기서는 서윤이가 유모차를 거부했다. 감사하게도 무릎에 앉혀 놓는 건 허락했다. 덕분에 앉아서 식사가 가능했다. 물론 왼쪽 허벅지와 팔은 서윤이의 차지였다. 잘 먹었다. 아, 애들 말고 나. 언제나처럼 서윤이를 안고도 잘 먹었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 그리고 나 챙겨주는 게 더 번거로우니 차라리 자기가 서윤이를 아기띠로 안고 먹겠다고 했지만, 그건 아내의 소화불량을 유발하는 일이니 막았다. 서윤이는 나의 숟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기 시작했다. 곧 무릎에 앉혀 놓고 먹기도 힘든 때가 올 거다. 자기도 먹겠다고 달려드는 통에.
주말에 어디 나갔다 오거나 일정이 있어서 피곤한 게 아니었다. 거의 집에만 있었던 오늘도 무척 피곤했다. 애들을 재우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서윤이 수유를 하고 먼저 나간 아내가 전화로 나를 깨워줬다.
아내랑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감사하다. 주말이라고 아내랑 영화 한 편 볼 여유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