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선물이야

20.08.11(화)

by 어깨아빠

아내는 고작 오전이었는데도 이미 체력을 많이 소모했다는 게 느껴졌다. 통화도 아니고 카톡에서. 오늘도 시윤이가 뭐만 하면 (혹은 뭘 안 해도) 짜증 내고 뒹굴고 징징대고 그랬다고 했다. 시윤이야 그렇다 쳐도 소윤이까지 덩달아 우는소리를 했고.


시윤이는 욕구 불만과 날씨, 소윤이는 날씨가 가장 큰 이유인 듯했다. 며칠 내내 비가 오더니 그나마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다. 비만 안 내렸지 흐린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비가 안 내리고 조금이라도 더 햇빛이 느껴진다는 게 어디인가.


아내도 애들도 다 안쓰러웠다.

[퇴근해서 내가 좀 데리고 나갔다 올까?]

[내가 점심 먹고 한 번 나가볼까 생각 중]


애들한테도, 아내한테도 외출이 필요했다. 차이가 있다면 애들은 엄마가 함께하는 외출이 필요했고, 아내는 혼자만의 외출이 필요했고. 애들의 욕구는 아내가 낮에 풀어 준다길래, 나는 아내의 욕구를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욕구 해소라기보다는, 저번에 어디서 본, 참 인상 깊었던 표현처럼 '아내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다.

"여보. 이따 여보는 나가. 서윤이 수유하자마자"

아내는 낮에 애들이랑 성경을 읽으면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자세를 바르게 앉으라고 하고서는 정작 본인은 엄청 졸았다고 했다. 부끄러울 정도로. 아내는 성경만 펴면 졸리다고 했지만 (물론 30여 년의 경험으로 볼 때 그 말도 맞지만) 어쩌면 잠시라도 몸과 마음이 멈출 틈이 생기면 본능적으로 잠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소파에 앉아서 쉴 때, 성경책 읽을 때, 서윤이 재울 때. 그렇게 졸릴 수가 없다.

퇴근해서 소윤이, 시윤이와 저녁을 먹는 동안 아내는 서윤이 수유를 했다. 자라고 눕히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침대에 눕히지는 않았다. 이렇게 되면 재울 때 수유를 하기에는 또 너무 간격이 짧아지고. 그렇다고 큰 고민은 아니었다. 뭐 이제 아내와 나는 그런 사소한(?) 일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일단 눕히면 되고 울어도 언젠가는 잘 것이고 정 안 되면 또 먹이면 될 것이고. 덕분에 기분 좋은 서윤이랑 놀 시간이 생겼다. 점점 누군지 아는 듯한 느낌이 진해지는 서윤이의 눈빛을 만끽하면서.

저녁 먹으며 소윤이와 시윤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눈빛과 입모양으로 아내에게 물었다.

'애들한테 말했어?'

'아니'

"소윤아, 시윤아. 우리 오늘 엄마한테 선물 드릴까?"

"선물이여? 갑자기여? 왜여? 무슨 선물이여?"

"아, 엄마가 오늘 너무 힘드시니까 서윤이 재우면 엄마는 나가시라고 하자"

"....."

"엄마도 너무 힘드시니까 쉴 시간이 필요하잖아. 나갔다 오셔야지"

"엄마 아까 나갔다 왔잖아여"

"아니, 너네랑 같이 말고. 엄마 혼자"

"알았어여. 엄마한테 선물 하자여"

다행히 소윤이도 시윤이도 잘 받아들였다. 사실 평소에도 아내는 서윤이 수유를 하고 나면 거의 바로 나간다. 그러니까 아내가 방에 없는 건 똑같지만 거실에 있느냐, 집 밖에 있느냐의 차이인 셈이다. 이 점을 부각시켰더니 소윤이와 시윤이도 납득이 됐나 보다.

밥 다 먹고 잘 준비하면서 시윤이랑 지난 휴가 때 이야기를 나눴다.

"시윤아. 시윤이는 저번에 울산 갔을 때 뭐가 제일 재밌었어?"

"더는 그, 그, 단디밭에서 물노이 한 거영"

"아, 그게 제일 재밌었어?"

"네. 아빠아. 데가 오또케 했냐며언"

시윤이는 자기가 어떻게 놀았는지 몸소 시범을 보여줬다. 껄껄 웃으면서.

"아빠아. 아빠는 어떰 게 재미떴떠영?"

"아빠? 아빠는 너네 재우고 삼촌이랑 이모랑 이야기 한 거"

"무즌 조리 하는 거에여엉"

"진짠데? 아빠는 그거 하려고 울산 가는데?"

옆에서 아내가 킥킥거렸다. 진짜야, 시윤아. 아빠가 그럼 뭐가 재밌겠니. 울산에 가서 너네 재운 게 재밌겠니, 울산에 가서 너네 밥 먹인 게 재밌겠니, 울산에 가서 운전한 게 재밌겠니.

일단 서윤이는 침대에 눕혀봤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나와 함께 누웠고. 아내는 거실에서 잠시 대기 중이었다. 서윤이가 잘 듯 말 듯 (어둠 속에서 소리로 가늠한 거다) 울음 시동을 걸었다 말았다 했다. 그러다 갑자기 점화가 되어서 아주 매섭게 울기 시작했다. 마치 '어떻게 마지막 식사도 안 주고 그냥 눕힐 수가 있냐'라고 말하는 것처럼.

[여보. 수유를 한 번 하고 나갈까 봐]


거실에 있던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방에 들어와 서윤이를 안고 수유를 했다.

[너무 잘 먹네]

[그걸 그냥 재우려고 했다니]

수유하고 나서는 숨도 안 쉬고 잠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거실에 나왔다. 아내는 그전에 나갔고.

여보, 힘내. 이게 우리가 여보에게 건넬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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