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가, 강릉 여행 3일차

18.11.04(주일)

by 어깨아빠

* 주의사항
1. 육아일기 없음
2. 글 쓸데없이 김
3. 쏠쏠한 여행 정보 없음

다른 방에 묵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이불속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다 뒤늦게 일어나서 움직였다. 밖에 나가보니 모두 퇴실하고 나만 남아 있었다. 퇴실하는 날이니 묵었던 방을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했다.

나오기 전 휴대폰으로 한참을 찾아봤지만 예배 드릴만 한 교회를 찾지 못했다. 가까운 곳에, 너무 작지 않고, 11시에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그렇게 없을 줄 몰랐다. 일단 나가서 걷다 보면 어느 교회라도 만나겠지 하는 심정으로 모든 짐을 챙겨서 나왔다. 친구가 한 명 생겼다. 그동안 방 안에서만 머물던 나의 캐리어.

그제 회 포장해서 걸어오던 길에 교회가 하나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강릉성결교회] 라는 곳이었다. 교회 근처에 가니 성경책을 끼고 교회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달그락 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나도 교회로 들어갔다. 엄청 작지도, 크지도 않은 크기의 본당에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1923년에 세워진 교회라고 했다. 좋았다. 목사님 말씀도 좋고, 분위기도 따뜻했다.

IMG_1928.jpg?type=w580 괴물 같은 요즘 교회보다는 훨씬 교회미(?)가 풍긴다
IMG_1923.jpg?type=w580 내부는 다 거기서 거기


애초에 가보기로 한 곳 중에서 오죽헌, 선교장, 허난설헌 기념관 같은 데를 못 가봤다. 오늘 예배드리고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안 가기로 결정했다.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강릉에 왔으니까 여기는 가야 한다, 저기는 가야 한다 갔다는 강박에 이끌려 다니는 건 별로라고 생각했다. 출발하기 전만 해도 원래 내 계획은, 이번 강릉 여행에서 책을 많이 읽고 돌아가는 거였다. 아무 데도 안 돌아다니고 그저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책만 읽다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막상 도착하니 그게 잘 안 됐다. 자꾸 한 곳이라도 더 봐야 할 것 같고, 가만히 있으면 시간을 버리는 것 같고. 마지막 날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일단 점심은 먹어야 하니,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며 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강릉터미널 맛집]을 찾아보려는데 왼쪽에 가게 하나가 보였다. [동원]이라는 밥집이었는데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제철 재료로 정성스레 만들었다는 음식들이 진짜로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들어갔다. 장칼국수, 손만둣국, 자연밥상 등의 식사 메뉴와 전이나 수육 같은 곁들임 메뉴가 있었다. 장칼국수를 시켰다. 서빙해주시는 분은 개량 한복 같은 걸 입으시고 쪽머리를 하고 계셨다. 말도 나긋나긋하게 하셨다.

"여행, 오셨나 봐요?"

배우 이영애 같은 느낌이랄까. 가게 안 배경음악으로는 피아노 연주곡이 흐르고 있었다. 적막이 가득한 공간을 채우는 연주곡, 일 하시는 분의 조곤조곤한 목소리, 왠지 모르게 세련되고 깔끔한 분위기가 꼭 치과 로비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장칼국수는 안 먹어 봐서 여기가 다른 곳에 비해 얼마나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도 꽤 맛있었다. 맛이야 어떻든 정말 정성스레 만들었다는 게 느껴졌다. 나중에 나 말고 다른 손님도 한 테이블 더 들어왔는데, 분위기가 너무 조용한 탓에 내가 면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처음에는 민망해서 조심조심 먹었는데 먹다 보니 맛있어서 체면이고 뭐고 엄청 후루룩거리면서 먹게 만드는 그런 맛이었다. 아무래도 난 맛집 만나는 운이 있나 보다. 부디 맛집으로 소문나지 말고 지금의 맛과 모습이 변치 않길 바란다.

IMG_1929.jpg?type=w580 참치 전문점 아님
IMG_1924.jpg?type=w580 개인적으로 이 메뉴판이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IMG_1926.jpg?type=w580 식사가 나오기 전 주신 보리차
image_4545239971541508543952.jpg?type=w580 내 인생의 첫 장칼국수


밥 먹고 나서는 버스터미널 쪽으로 이동했다. 오죽헌이나 선교장 같은 대표 관광지를 포기하는 대신 카페에서 글도 쓰고 사진도 정리하며 여행을 정리하려고 했다. 버스 터미널까지는 약 30여분을 걸어서 갔다. 캐리어 때문에 엄청 거추장스럽긴 했지만 강릉 골목골목을 볼 수 있었다.


버스터미널 바로 근처에 [개락]이라는 카페가 있었다. 찾아보고 간 곳이었다. 로스팅 카페였다.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분이 사장이었다. 벽면에는 커피 관련 자격증이나 증서(?) 같은 게 서너 개 붙어 있었다. 나름 여러 곳에 카페를 들락날락한 경험으로 얻은 직감에 의하면, 대충 만드는 카페는 아닌 것 같았다. 역시. 첫 모금을 넘겨 보니 예상이 맞았다. 나의 마지막 시간을 허접한 커피와 함께하면 어쩌나 염려가 됐는데, 첫 모금과 함께 사라졌다. 어제 쓰다 만 편지도 쓰고, 일기도 쓰고 그랬다. 버스 시간이 4시간도 더 남았을 때 들어와서, 뭔가 한참 하고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하나 시키고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게 미안해서 괜히 한마디 했다.

"아. 제가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IMG_1930.jpg?type=w580 발로 찍은 사진 탓도 있지만, 실제로 외관은 별로다
IMG_1933.jpg?type=w580 개락은 강릉 사투리로, '많다'는 뜻이라고 한다
IMG_1934.jpg?type=w580 내가 나갈 때까지 손님은 많지 않았다
IMG_1932.jpg?type=w580 강릉에서의 마지막 커피


터미널은 카페에서 5분도 안 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출발시간은 저녁 5시 30분이었다. 3시간 소요 예정이긴 했지만, 주일인 데다가 시간대가 막힐 시간대라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파주에 있다가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오기로 했다. 올 때는 일반 고속이었고 갈 때는 우등 고속이었다. 솔직히 큰 차이는 모르겠다. 발받침이 있고 없고 정도의 차이 말고는 일반 고속이나 우등 고속이나 3시간씩 타면 좀이 쑤시긴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한 것만큼 많이 막히지는 않았다. 3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아내보다 먼저 터미널에 도착해서 내가 원흥역으로 가기로 했다. 화정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원흥역으로 가는데, 갑자기 환각에 사로잡혔다. 강릉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느꼈던 것처럼.


'뭐지.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지? 나 강릉에 있었는데'

믿기 싫었지만 내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다. 사실 끝난 거지만 아직 끝이 아니라고, 집에 가야 완전히 끝난 거라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원흥역에서 아내를 만났다. 여행이 끝나는 건 안 반가워도 아내랑 애들을 만나는 건 참 반갑다. 애들은 둘 다 카시트에 잠들어 있었다.

"여보. 재밌었어?"
"어. 덕분에 재밌게 잘 보내고 왔지. 여보는 안 힘들었어?"
"어. 나는 엄마, 아빠랑 같이 있었으니까. 괜찮았어"
"다행이네"
"여보. 이제 여행 끝나서 어떻게 해? 슬프겠네?"
"슬프긴 뭘. 즐겁고 좋았지"

차 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가로등이 꼭 나의 강릉 여행 같았다. 신기루처럼 사라져 갔다. 슬프긴 뭐가 슬퍼. 이렇게 예쁜 아내랑 귀여운 자식들을 만났는데. 기쁘지.

또르르르

난... ㄱ ㅏ끔... 눈물을 흘린 ㄷ ㅏ....
ㄱ ㅏ끔은 눈물을 참을 수 없는 ㄴ ㅐ 가 별루 ㄷ ㅏ.....

또르르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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