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여행의 후폭풍

18.11.05(월)

by 어깨아빠

원래 어젯밤에 짠 하고 만났어야 됐는데 애들이 자고 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오늘 아침에 해후했다. 물론 난 너무 피곤한 상태였고 소윤이랑 시윤이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계속 날 깨우고 있었고. 일찍 일어난 건 일어난 거고 어쨌든 계속 깨우는 데 안 일어나니 소윤이도 짜증 났을 텐데 그래도 잘 참고 기다리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아빠. 이거 뭐에여?"

"어. 그거 아빠가 소윤이랑 시윤이 선물 사온 거지"

"이게 내 꺼에여?"

"응. 핑크색이 소윤이 꺼, 회색은 시윤이 꺼"

"아빠. 이건 뭐에여?"

"어. 그건 소윤이 머리핀"

"이것도 핑크색이네?"

"응. 소윤이 핑크색 좋아하잖아"


홈스쿨 모임이 있다고 해서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했다. 엄청 피곤했다. 여행의 여파인지 집을 나서면서부터 엄청 피곤했다. 지하철이고 버스고 앉기만 하면 엄청 졸았다. 아니, 잤다. 내릴 때마다 조느라(혹은 자느라) 그냥 지나칠 뻔한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고 힘겹게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도무지 잠이 깨지 않았다. 보통은 점심 먹고 나서 오후 시간에 열정적으로 졸고 나머지 시간대는 그래도 무난한데, 오늘은 자리에 앉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퇴근할 때까지 정말 정신없이 졸았다. 강릉에 시차가 있었나. 시차 적응하는 건가.


홈스쿨 모임에 가서 소윤이가 친구한테 머리핀을 자랑했다는 소리를 듣고 뿌듯했다. 소윤아 아빠가 용돈쟁이라 큰 건 못 사줘도 그런 잔잔바리는 종종 사 줄 수 있어.


"여보"

"어. 끝났어?"

"어. 근데 애들이 잠들어 버렸어"

"아. 진짜?"

"어. 어떻게 하지. 깨울까?"

"아니. 잠들었는데 뭘 깨워. 하아. 오늘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깨울까?"

"아. 됐다니까. 이미 잠들었는데 뭘 깨워"

"그래. 알았어"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오늘 죽었구나'


여독 덕분에 몸도 피곤한데 특별 야근까지 준비되어 있다니. 아예 데리고 밖에 나갈까, 아니면 오랜만에 목욕을 할까, 집에 있으면 뭘 하고 놀까. 여러 가지 계획을 떠올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여보"

"어. 집에 갔어?"

"아니. 병원에 왔어"

"아. 병원에?"

"어. 애들 기침하는 것 좀 보려고"

"그래"

"애들은 30분만 재우고 깨웠어"

"진짜?"

"응"


30분은 미지의 시간이었다. 30분으로 완전히 충전되었을 수도 있고, 30분으로는 택도 없어서 일찍 잘 수도 있고. 어쨌든 반반의 확률을 만들어 놓은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생각했다. 소윤이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시윤이는 아주 미세하게 모세기관지염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일단 약 먹고 며칠 뒤에 다시 소리를 들어보자고 하셨다.


대중교통으로 퇴근한 덕분에 차를 이용할 때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집에 도착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저녁을 먹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가방 던져 놓고 손만 후다다닥 씻고 바로 식탁에 앉았다.


"자. 밥 먹자. 기도"


시윤이는 또 엄마를 자기 앞에 앉히려고 했지만 그새 컸다고 설득이 통한다.


"소윤아. 아빠가 앉아서 먹여줄게. 알았지?"

"압빠아"


밥 잘 안 먹는다고 소윤이한테 핀잔을 좀 줬더니 그게 그렇게 서러웠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도대체 그 맛있는 밥을 왜 안 먹을까.


"여보는 얼른 운동 가"

"아. 난 오늘 운동 못 갈 것 같아"

"왜?"

"내일 애들 오기로 했잖아. 그래서 장 좀 보려고. 일찍 돌아올 예정이야"


내일 낮에 아내의 대학 친구들이 놀러 오기로 했고 아내는 점심을 차리기 위한 장을 보고 집도 치워 놓기 위해 일찍 오겠다고 했다. 이제 월요일은 그냥 자유시간으로 생각하나 보다. 헬스는 선택사항일 뿐.


아내가 나가고 차례차례 애들을 씻겼다. 전체적인 시간 자체가 좀 늦어서 자려고 방에 들어갔을 때 이미 8시가 좀 넘었었다. 소윤이한테 책 두 권을 읽어주는 동안 몇 번을 졸았는지 모르겠다. 소윤이가 자려고 누워서도 나한테 계속 말 걸고 수다를 떨었는데 조느라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했다. 깨보니 둘 다 곤히 자고 있었고 시간은 9시가 넘어 있었다. 그대로 잠들지 않고 깨서 나온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소파에 앉아서 글 쓰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졸았다. 고작 강릉 며칠 갔다 온 게 이렇게 힘든 일인가 싶었다. 아니면 몸과 마음이 돌아온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격렬히 저항하는 건가.


일찍 돌아오겠다고 했던 아내는 11시가 넘어서 돌아왔다. 아, 평소보다 일찍 돌아오겠다는 얘기였구나? 이럴 거면 그냥 굳이 월요일로 고정하지 말고 아무 때나 하루 자유시간 하고 헬스는 그 때 그 때 가라고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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