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9(수)
[여보. 잘 지내고 있나요]
[여보. 체감은 3시야. 아직 12시도 안 됐다고?]
이때가 11시 30분이었다. 오늘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나를 배웅했다. 시윤이는 조금 더 늦게 일어났고. 아내는 어제와는 다르게 일찍부터 막막함을 호소했다.
그래도 아내는 많은 걸 했다. 애 셋을 데리고 자연드림에 가서 장도 보고, 집에서 계란빵도 해서 먹이고. 코로나가 워낙 심해져서 애들을 데리고 나가도 애들은 차에 머물고 아내만 후다닥 가서 필요한 것만 사 오고 그랬다.
계란빵도 난 프렌치토스트 정도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유랑 계란을 넣고 막 섞다가 그게 하얗게 되면 거기에 핫케이크 가루를 넣고 또 막 섞다가 다 섞이면 계란을 하나씩 탁 깨뜨려 넣은 다음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진짜 계란빵이었다(만드는 과정은 퇴근했을 때 소윤이가 신나게 설명해 줬다).
애 셋을 돌보며 세끼 챙겨 먹이는 것만 해도 하루가 꽉 찰 텐데, 그 사이의 공백을 조금이라도 덜 무의미하게, 삼시 세끼에도 조금 더 특별함과 영양이 가미되도록 애를 쓴다. 그 와중에 틈틈이 사진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주기도 하고 육아 퇴근하면 보여주기도 하고. 하루의 기록으로 남은 사진을 보여주며 그래도 웃으며 즐거워하는 걸 보면 '힘들지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거 같아 감사하다.
'힘들지만 행복한' 은 '행복하지만 힘든'으로 치환도 된다. 퇴근해서 만난 아내는 저녁상을 거의 다 차린 상태였다. 가지밥에 부추전. 부추전을 부치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서 큰 부침이 느껴졌다. 차마 내가 다 알기 힘든 거대한 고단함이 아내의 작은 몸 구석구석 스며든 느낌이었다.
그래도 감사하다. 결국 다시 모여 저녁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배부르게, 안전하게 하루를 지내고 함께 마무리할 수 있어서. 저녁을 먹기 전에 이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2시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만 함께할 수 있는 아빠가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진심이랄까. 혹시라도 우리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가 한 10년 뒤에 이 일기를 나와 함께 볼 수 있는 큰 복이 주어진다면, 그건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감사의 결과일 거다. 난 인생의 대부분을 교만하게 살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잘 버티던 서윤이는 저녁 식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울기 시작하더니 점점 격렬해졌다.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먼저 먹이고 재워야 할 거 같다면서. 나머지 식사를 마친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기고 잘 준비를 하는 동안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잠시 그쳤다가 다시 거세졌다. 잠시 그쳤던 건 젖을 물었기 때문일 거고 다시 거세진 건 다 먹고 눕혀졌기 때문일 거고. 결국 아내는 다시 서윤이를 안고 나왔다.
"왜 그러지. 오늘 많이 우네"
신기한 건 방에서 나오니까 울음을 뚝 그쳤다. 마치 자기 혼자 방에 들어가는 게 싫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울음을 뚝 그쳤을 뿐만 아니라 아빠를 보며, 언니를 보며, 오빠를 보며 방실방실 웃어댔다.
"여보. 얘 진짜 혼자 방에 들어간 걸 아나?"
"그런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게 잠시 후에 밝혀졌다. 언니, 오빠, 엄마와 함께 들어가고 나서도 한참을 울었다. 난 밖에 있었는데 가서 안아줘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로 꽤 크고 길게 울었다.
[많이 우네]
[그러게. 안아줄까?]
[고민이네]
아내와 나의 카톡이 끝나자마자 잠잠해졌다. 밖에 있던 난 아내가 안아줬나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고, 혼자 조용해졌다고 했다.
아내는 나와서도 남은 집안일을 처리했다. 난 아내가 나오기 전에 설거지를 한다고 했는데 그건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이다. 빨래, 건조, 개기를 비롯한 자잘한 집안일이 즐비했다. 아내는 한참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러고 나서 호두 연유 바게트와 함께 고된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