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0(목)
오랜만에 애들 얼굴을 보지 못하고 출근했다. 아내를 위해서는 참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은근히 '누구 한 명 깨지 않을까'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깨우는 만행은 하지 않는다. 마치 자연 현상을 대하듯, 깨면 깨는 대로 자면 자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아내는 오늘도 낮에 모든 진력을 쏟아부어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마음 놓고 나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집에서라도 원 없이 뛰고 소리 지르지도 못하고. 아내도 아이도 다 고생이다.
일하다 보면 'gayoung lee 님이 사진을 공유했습니다'라는 구글 포토의 알림이 뜰 때가 있다. 대체로 바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데 오늘은 알림이 뜨자마자 바로 눌렀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의 일상을 사는 모습을 보니 관찰자인 나는 그저 좋을 따름이다.
[여보. 오늘 본죽 찬스 좀 쓸까요]
누군가에게 받은 쿠폰이 잔뜩 있었다. 아내의 원래 저녁 계획은 닭 다리 살 볶음, 계란말이었지만 이불 빨래를 하고 나니 만사가 귀찮아졌다고 했다. 이불 빨래가 마침표였을 뿐, 이미 그전에 많은 일을 쳐내느라 지쳤을 거다.
퇴근하니 아내와 아이들이 없었다. 장 보기를 비롯한 여러 이유가 있는 drive-thru 외출이었다.
"소윤아. 어디 어디 갔다 왔어?"
"음, 어디 갔냐면여. 라푸르타(과일 가게)랑 자연드림이랑 달고오묘랑 마노아랑 본죽 갔다 왔어여"
"우와. 엄마 짱이다. 엄청 많이 갔다 왔네?"
코로나 시대를 사는 다둥이 전업 엄마의 일상이다.
집에 돌아온 아내와 아이들을 맞이했다. 난 서윤이를 받아안았다.
'오예, 자연스러웠어'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의 손과 발을 씻기고 저녁상을 차리는 동안 서윤이는 내 품이었다. 이제 좀 컸는지 팔을 받침 삼아 등을 대고 하늘을 보며 눕는 자세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가슴에 얼굴을 대고 안기는 자세를 더 좋아하게 됐다. 엄지손가락을 빨면서. 이러나저러나 팔이 아픈 건 마찬가지다. 이러나저러나 힘들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고.
"여보. 계속 서윤이 안고 있을래? 내가 애들 씻길 게"
저녁을 먹고 나서도, 바닥에 누워 울음 시동을 거는 서윤이를 빠릿하게 안아 올렸다. 그러고 나서 애들이 모든 잘 준비를 마칠 때까지 계속 안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기적인 건 아니다(맞지? 여보?). 서윤이를 안고 있는 것도 꽤 힘든 일이다. 나도 힘들어서 몇 번이나 소파에 앉았지만, 앉지 말고 서라며 매섭게 울어대는 통에 바로바로 일어났다. 뭐가 더 힘들고 안 힘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요즘은 서윤이의 살결이 조금 더 그립다 정도로 정리하는 게 좋겠다.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서 가장 먼저 잠들었다 나오는 게 빈번한 아내는, 오늘도 마치 자다 나온 얼굴로 간신히 방을 탈출했다. 한다고 했지만 역시나 미진한 남편의 손길이 닿은 집안일을 마무리 한 아내는, 식탁에 앉아 drive-thru 외출의 결과물을 하나씩 꺼내 먹었다. 최고의 위로인 '자유 부인'도 코로나 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시국에서, 아내에게 가장 큰 위로이자 구원이다. 빵은.
휘낭시에, 초코 어쩌구저쩌구, 쿠키슈, 그리고 라떼 한 모금. 고된 하루를 보낸 아내가 누리는 작은 쾌락이다. 고된 노동을 마친 노동자들이 기름기 그득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처럼.
(이렇게 말하면 아내만 먹은 것 같지만, 사실 나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