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8(화)
새벽부터 셋 다 깨서 얼굴을 봤다. 덕분에 아내까지. 서윤이는 잘 자고 일어났는지 내 배 위에서 밝은 표정으로 놀기까지 했다. 아내와 애들한테 인사하고 집을 떠난 그 순간부터 보고 싶었다. 이때는 몰랐다. 아침의 시간이 오늘의 복선이었다는걸.
아내는 서윤이 영유아 검진이 있어서 오전부터 애 셋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나간 김에 밖에서 밥을 먹으라고 하기에는 혼자 애 셋을 감당하는 것도 힘들고, 코로나 때문에 어디 들어가서 먹을 환경도 아니고, 날씨도 모든 걸 태울 듯한 폭염이었다. 아내는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검진을 마치고 나면 근처 한적한 공원에 가서 점심을 먹을까 한다고 했다. 집에 와서 정신없이 밥을 차리는 게 생각만 해도 번거롭기도 하고, 기왕 나간 김에 애들도 바람 좀 쐬면 좋으니까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결코 만만한 계획은 아니었다.
검진을 마친 아내가 공원에서 애들하고 찍은 사진을 보냈다. 사진만 보고 있어도 함께 땀이 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에 더위가 가득했다.
[웬 사서 고생]
아내의 말처럼 사서 고생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묘한 행복이 있었다. 그 더운 날 엄마와 누나와 동생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먹은 김밥이, 그러면서 소소하게 남은 웃음이 분명 아내와 아이들의 삶을 보이지 않게 채우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 풍경에 없던 나는. 이렇게 속 편히 생각한다. 아내는 어떨지 모른다. 너무 더워서 거의 밥만 먹고 바로 왔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야근이 결정됐다. 집에 오니 11시 30분이었다. 아내는 오늘 하루를 '몸이 힘들긴 했지만 정신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이라고 평했다. 감사한 일이다. 나도 없었는데 정신까지 무너졌으면 참 힘들었을 텐데.
아침에 애들 얼굴을 보고 출근을 해서 하루 종일 애들 아니 우리 아내 얼굴이 가장 많이 떠올랐고 그다음 애들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래서 아침에 다들 일찍 일어나서 아빠 배웅했구나.
만나지 못한 아이들의 일화로 오늘의 일기를 갈음.
#1. 소윤이의 큰 그림
막 어질러 놓은 거실을 정리한다는 소윤이. 그러더니 바닥에 있던 수영 모자를 시윤이한테 계속 씌웠다. 시윤이는 별로 쓰기 싫어하는데도 "이거 편하잖아 써"라면서 계속 씌웠다. 그걸 지켜보던 아내가 소윤이에게 물었다.
"소윤아. 왜 자꾸 씌워?"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시윤이 몰래) 치울 데 없어서"
#2. 사회 문제에 바삭한 소윤이
새싹꿈나무에 가고 싶은 소윤이와 그걸 설명하는 아내의 대화.
"새싹꿈나무 가고 싶어여"
"요즘에 교회에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 안 보내는 거야"
"사랑제일교회에 많다면서여"
"어떻게 알았어?"
"라디오에서 많이 들었어여"
#3. 속이 깊은 큰 딸
아빠의 야근 소식을 들은 아내와 소윤이의 대화.
"소윤아. 오늘 아빠 늦으신대"
"왜여?"
"아빠 오늘 야근하신대"
"그래도 다행이다. 서윤이가 아침에 아빠 얼굴 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