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술 육아

20.08.26(수)

by 어깨아빠

오늘은 서윤이가 깨서 나왔다. 물론 아내에게 안겨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방 안에서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자다가 자세를 바꾸다가 뭔가 불편한 게 생겨서 잠깐 잠에서 깨면, 외마디 비명처럼 우는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그런 울음은 아니었다. 마치 ‘나 깼으니 와서 안으세요’라며 우는 거 같았다. 갑자기 조용해졌길래 아내가 수유를 한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아내가 서윤이를 안고 나왔다. 수유를 마치고 나왔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유를 하기 전에 아빠 얼굴 보여 주려고 데리고 나온 거였다. 안타깝게도 배 고프고, 뭔가 언짢은 서윤이는 웃으며 인사를 건네지는 않았다. 괜찮다.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여준 게 황송하다.


아내랑 서윤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에게 안겨 있는 서윤이 사진.

아내에게 아기띠로 안겨 있는 서윤이 사진.

바닥에 누워서 양손의 엄지를 넣고 빠는 서윤이 동영상.


아내가 보내준 사진과 동영상이었다. 요즘 아내의 사진과 동영상 지분을 서윤이가 많이 점유한 건 사실이지만, 오늘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제 그만큼 아내의 품을 벗어나서 지내는 시간이 짧아졌다는 거다. 안고 있어도 앉으면 우니까 서서 안아줘야 하고, 서윤이 안느라 아무것도 못 하니까 아기띠를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진 거다. 아내의 노동(?) 강도는 아주 세졌고.


퇴근은 정시에 했는데 중간에 내려 줄 동행도 있었고, 차도 막혔고, 아내가 요청한 커피도 사러 가야 해서 생각보다 늦게 집에 도착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먼저 밥을 먹고 있었다. 아내는 서윤이를 업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서윤이는 매우 졸려 보이기는 했는데, 그래도 그 와중에 나를 발견하더니 소소하게 웃음을 보여줬다.


아내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서윤이부터 받아 안으려고 했더니, 아내는 일단 앉아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아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더니 얼른 먹고 서윤이를 안아 달라고 했다. 바로 밥 숟가락을 들고 폭풍 식사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속도를 낸 건 아니고, 원래 속도로 먹어도 보통 사람보다는 훨씬 빠르다.


식사를 마치고 바통 아니 서윤이를 이어받았다. 졸리고 배가 고파서 까딱하면 울 거 같았다. 웃는 것 좀 보려고 장난을 치면, 그럴 기분이 아니라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울음 시동을 걸었다. 얌전히 안고 있었다. 서윤이도 얌전했다. 내 품에 안겨서 엄지 손가락을 쪽쪽 빨며 가만히 있었다. 조금 더 밝고 즐거운 서윤이를 보고 싶었지만, 울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여보. 오늘은 여보가 애들 좀 씻겨줄래요? 난 서윤이랑 먼저 들어가서 수유하고 있을게”

“알았어. 내가 씻길게”


서윤이를 안고 방에 들어가면서 아내가 얘기했다.


“소윤이는 오늘 똥 두 번이나 쌌어요. 시윤이도 똥 쌌고. 애들 팬티도 좀 갈아 입혀 줘요”


아내가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내 귀에 의역이 되어 들어왔다.


“똥을 두 번이나 싼 엉덩이와 한 번이지만 냄새가 고약한 엉덩이를 설마 그냥 방치한 채 팬티를 갈아 입히려는 건 아니죠?”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아래 옷을 벗기고, 엉덩이를 물로 씻어줬다. 별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만 퇴근이 임박한 순간(즉, 보유한 체력이 거의 고갈되었을 즈음)에는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어쨌든 무언의 지시 사항을 잘 이행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도 너희끼리 자야 하는 거 알지?”

“그럼여”


반응이 어떨는지 슬쩍 찔러봤는데, 생각보다 평이한 반응이었다. 아내는 먼저 들어가서 수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윤이와 시윤이가 잘 준비를 마치고 방에 들어갈 때쯤에는 수유가 거의 끝나갔다. 아내가 어제처럼 더 있다가 나올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일단 나는 아내에게 선택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줬다.


애들을 눕히고 문을 닫고 나서 거의 바로, 아내가 나왔다.

“소윤이는? 괜찮아?”

“어, 일단은. 오늘은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냥 나왔어”

“그래, 잘했어”


다행히 그 뒤로는 애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아내랑 둘이 거실에서 애들 얘기만 실컷 했다. 서윤이가 어땠느니, 시윤이가 어땠느니, 소윤이가 어땠느니. 참 신기하다. 그렇게 이별(?)하고 싶어서 나왔는데, 고작 한다는 일이 애들 사진 보고 애들 얘기하는 거라니.


술로 난 병은 술로 먹어서 푸는 해장술 같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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