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5(화)
소윤이는 무려 5시부터 일어나서 부스럭거렸다. 뭔가 소란스러운 기류에 처음 눈을 떴을 때는 몇 시인지 가늠을 하지 못했다. 밖이 꽤 어둡길래 '다행히 아직 이른 새벽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창밖의 어둠이 순식간에 물러났다.
'하아. 오늘은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난 거야'
소윤이도 잠들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하고 알람이 울릴 때까지 누워 있었다. 알람이 울리고 방에서 나가며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조금 더 자. 아니면 누워 있거나. 알았지?"
"네"
어제부터 또 허리가 아파서 거실 소파에 누워 성경을 읽는데 방 안에서 시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아내가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느낌'이라는 게 얼마나 예민한 도구인지, 아내의 문 여는 소리만 듣고도 아내가 어떤 기분인지 예측을 했다. 아내는 피곤한 얼굴로 씩씩거리며 나왔다.
"하아. 소윤이는 5시부터 깼어"
"아, 그래? 5시였구나. 지금은 왜 그래?"
"몰라. 서로 내 옆에 눕겠다고"
하아. 군대에 있을 때도 불침번 말번초(원래 정해진 기상 시간 직전, 그러니까 맨 마지막 불침번 순서) 근무를 제일 싫어했다. 하루가 너무 길어지니까.
어쨌든 아내는 다시 들어갔고, 조금 있다가 소윤이가 나왔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5시는 너무 이른 거 같았다. 앞으로도 그렇고. 자꾸 아내의 잠을 방해하는 것도 고쳐줘야 할 거 같고(그동안 여러 차례 시도해 보기는 했지만).
"소윤아. 이제 오늘부터는 밤에 잘 때 소윤이랑 시윤이 둘이서 자. 알았지?"
"아빠아. 아니에여어어어"
소윤이는 바로 울음으로 반응했다.
"아니야. 소윤이가 자꾸 이렇게 일찍 깨서 엄마 자는 거 방해하고 그래서 안 되겠어. 엄마도 너무 피곤하시고. 오늘부터는 엄마, 아빠가 안 재워 주고 너희끼리 자"
"아빠아. 이제 일찍 안 일어날 거에여"
"소윤이가 진짜로 일찍 안 일어나고, 일어나더라도 다른 사람 자는 거 방해하지 않으면 그때 다시 엄마, 아빠가 재워줄게. 그동안은 아빠가 말한 대로 하는 거야. 소윤이가 엄마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엄마를 그렇게 피곤하게 하면 어떡해. 엄마 새벽에 서윤이 수유하느라 제대로 잠도 못 주무시는데 아침부터 그렇게 깨우고. 서로 엄마 옆에 눕겠다고 싸우고. 엄마, 아빠가 여러 번 얘기했잖아. 일찍 일어나면 피곤하니까 충분히 자고 깨더라도 누워 있으라고. 엄마, 아빠 말을 안 들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거야"
소윤이는 더 이상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슬픈 표정은 여전했다. 그래도 화를 내거나 무절제하게 감정을 폭발시킨 게 아니라, 차분히 할 말을 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소윤이는 눈물을 머금고, 떨리는 목소리로 날 배웅했다.
"아빠아. 안녀엉"
아내는 오늘 파주(처가, 아내의 친정)에 간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파주에 가는 건 물론이고 장모님도 지난주부터 한 번도 못 오셨다. 아내가 먼저 '파주에 갔다 와도 되겠느냐'라고 물었다. 애들도 애들이지만 누구보다 아내가 고역이다. 모르긴 몰라도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아마 한 번도 '아, 엄마랑 좀 떨어지고 싶다' 이런 생각을 안 하지 않았을까. 외출은 못해도 어쨌든 그렇게 좋아하는 엄마랑 같이 있는 거니까 상쇄가 된다지만, 아내는 아닐 거다. 어쩌면 하루에도 수백 번씩 '아, 애들이랑 잠깐 분리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당분간 이뤄지지 않는 꿈인 건 당연하고, 요즘은 그야말로 집 안에서만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싶다.
코로나 때문에 무조건 집에 머무는 게 상책이라고는 하지만 감금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한 아내의 친정 행차까지 막는 건, 비인격적이었다. 대신 어디든 외출은 하지 않고 집에만 머문다고 했다.
오늘도 퇴근이 좀 늦어서 평소보다 집에 좀 늦게 왔다. 아내한테는 미리 '야근을 할지도 모른다'라고 얘기를 해 놨다. 아내는 차라리 애들 저녁도 먹이고 씻겨서 집에 오겠다고 했고, 아내와 아이들은 나보다 30분 정도 뒤에 도착했다.
소윤이는 밝음, 시윤이는 어두움, 아내는 흐림, 서윤이는 알 수 없음. 시윤이는 뭔지는 몰라도 한바탕 떼를 부렸다고 했고, 아내는 그냥 지쳐 보였다. 소윤이는 엄청 신났고. 이미 다 씻고 온 거라 손과 발만 씻고 바로 자러 들어갔다. 아내가 먼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은 엄마 서윤이 수유하면 바로 나올 거야. 알았지? 이따 엄마 나올 때 울지 말고"
소윤이는 갑자기 표정에 그림자가 졌지만 울지는 않았다. 아침에도 듣고, 저녁에도 들은 거라 충격파가 덜했을 거다. 시윤이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졸렸다. 서윤이는 처음에 파주에 갔을 때 엄청 울었다고 했다. 낯가림이었다. 저번에 신림동에 갔을 때도 그러더니 오늘도 똑같았다고 했다. 다행히 나한테는 낯가림이 없었다. 다만, 앉아 있는 건 낯가림을 했다. 앉으면 울고, 서면 안 울고.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서윤이 수유를 마친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좀 더 있다가 나갈까 어쩔까 고민이네. 소윤이는 엄마 아빠가 나가면 더 잠이 안 온다네. 엄마 아빠 보고 싶은 마음에 울먹이게 된다고. 그래도 한 말이 있으니 나가야 하나]
[여보가 알아서 해]
[그럼 좀만 있다가 나갈게]
* 문득 든 생각인데 아내와 주고받은 메시지는 이모티콘이나 'ㅋㅋ', 'ㅎㅎ' 이런 걸 빼고 올리다 보니 굉장히 삭막해 보이네. 실제로는 [ㅋㅋ여보가 알아서 해 ㅋㅋ] 이래요.
아마 내가 들어갔어도 소윤이 잠드는 거 기다렸다가 나왔을 거다. 하루 종일 기분 좋게 지냈는데, 울며 잠들게 하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뭐 까짓 거 내일도 일찍 일어나려면 일어나라지.
라고 호기롭게 쓰지만, 막상 내일이 되면 또 얼굴을 붉힐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자기 전에 계속 다짐해야 한다. '일찍 일어나도 괜찮다. 애들은 다 그런 거다. 화내면 안 된다'. 자면서도 무의식은 계속 저 다짐을 되뇌인다. 과장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해야 불편한 상황을 마주해도, 연두부처럼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
소윤아,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라.
(아빠는 거실에서 잘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