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4(월)
"여보. 내일 애들 일찍 일어나겠다"
"그러게"
일찍 잤으니 일찍 일어나리라는 예측은 충분히 가능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빗나가길 바랐는데, 여지없이 적중했다. 소윤이는 5시 30분부터 깨서 사부작 사부작, 시윤이까지 덩달아 일찍 깨고. 요즘은 서윤이도 새벽에 한 번씩 깨기 때문에 아내의 피로가 말이 아니다.
"소윤아. 얼른 더 자. 안 그러면 너 오늘도 낮잠 자야 돼"
"아빠. 저 낮잠 잘래여. 왜냐면 그때 낮잠 잤을 때 좋았어여"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알았어. 그럼 조용히 있어"
라고만 했다. 난 거실에 나가 출근 준비를 하는데 목마르다, 오줌 마렵다 등의 얕은 수를 쓰며 자꾸 거실로 나왔다. 사랑하는 아내의 잠을 방해하는 건 참 밉지만, 잠이 안 와서 일찍 일어난 걸 어쩌겠나. 게다가 거실에 나올 때면 세상에 둘도 없는 해맑은 표정과 웃음을 가지고 나온다.
"아빠아. 오늘 회다 가여어?"
"응. 회사 가지"
"달 가따 와여어"
출근하면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거실에 나와 있지 말고 방에 누워 있으라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방에 누운 채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고. 1층까지 내려가서 차 문을 열었는데 열리지 않았다. 차 열쇠가 아내 가방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집에 올라가서 문을 열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거실에 앉아 뭔가 장난감을 꺼내고 있었다.
"아빠가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잖아"
둘은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못하고 날 쳐다봤다.
"그럼 방에 들어가지 말고 거실에서 조용히 놀아. 알았지?"
"네"
"아빠 간다"
"아빠 안녕"
그러고 나서 아내와 나의 하루는 각각 매우 바쁘고 분주했다.
아내는 아파트 재계약과 관련된 서류를 관리사무소에 내야 했는데, 이게 은근히 아니 대놓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했는데 집에서 뽑으려고 하니까 사이트 대기자가 3만 명이라나 뭐라나. 그래서 집 앞 무인 발급기에 가서 뽑아야 했는데, 아무리 가까워도 애 셋을 데리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매우 고된 일이고. 그 와중에 어제 일상 탈출 기분 낸다고 위치를 바꿔놨던 카시트는 그대로고.
서로 바빠서 아주 짬짬이, 카톡으로는 몇 마디, 통화로는 2-3분 잠깐씩 연락을 했는데 '현재의 상태'를 묻는 나의 질문에 '뭐 그때그때 달라', '이랬다가 저랬다가' 등의 답이 돌아오는 걸 보면 결코 만만한 하루는 아닌 듯했다.
퇴근까지 좀 늦어져서 평소보다 40-50분 늦게 집에 도착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저녁을 다 먹고 씻으려고 하는 찰나였다. 서윤이는 바닥에 누워 잘 놀고 있었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시간에 비해 제법 상태가 괜찮았다. 서윤이도 보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봐야 하니 (요즘은 서윤이만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일기에 적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첫째는 첫째만의, 둘째는 둘째만의, 셋째는 셋째만의, 서로 다른 이의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고유의 '보고 싶음'이라는 게 있다) 부지런히 소윤이랑도 대화하고, 시윤이하고도 대화하고, 서윤이도 안고 그러고 있었다.
"여보. 나는 지금 소윤이에 대한 감정을 다스리고 있어요"
"왜?"
"소윤이가 잘 자고 있는 서윤이를 뒤집어준다고 깨웠거든요"
"아, 그랬어"
"생각보다 엄마를 화나게 하는 행동이라고 말해줬어요"
소윤이는 아내의 말에 조금 당황하는 듯했지만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나도 따로 소윤이에게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아내의 뚜껑을 열리게 하는 가장 위험한 행동이긴 했다. 애들은 씻으러 가고 난 저녁을 먹었다. 서윤이를 바닥에 눕혀놨는데 번개같이 뒤집더니, 울었다. 아내는 그냥 두고 먹으라고 했지만 차마 그러기가 어려워서 얼른 안고 무릎에 앉혔다. 그러다 울면 잠시 어깨에 기댈 수 있게 안았다가 다시 무릎에 앉히고. 물론 난 그 와중에 열심히 밥을 퍼먹었다.
애들하고는 그걸로 끝.
아내는 매우 지치고 곤해 보였다. 어디라도 나갔다 오라고 하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여보. 차 타고 드라이브라도 하고 와"
"이 시간에 어딜 가겠어"
"뭐 맛있는 거를 사러 가기로 정하면 되지"
"맛있는 거 뭐?"
꿩이 없으면 대신 닭이라도 잡는 거지 뭐. 집 근처(지만 차 타고 갈 만한 곳)의 빵 가게를 검색해서 아내에게 알려줬다. 아내는 가방을 챙겨서 나갔고, 커피와 빵을 사 왔다. 언제나처럼 빵 때문인지 커피 때문인지 바깥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퇴근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아내가 한결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