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8(금)
오랜만에 소윤이와 시윤이가 깨서 날 배웅했고, 서윤이는 깨지 않았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거실에 있을 거야, 아니면 들어갈 거야?”
선택은 자유에 맡겼지만 어디를 선택하든 들락날락하지 말고 한 곳에 머물라고 했다.
“아빠아. 드, 드, 드을낙 나알낙이 머에여엉?”
“아,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왜여어?”
“엄마랑 시윤이 깨니까”
“시윤아. 그럼 우리 그냥 거실에 있을까?”
“그러자아”
소윤이와 시윤이는 거실에 머물겠다고 했다. 어제 소윤이가 방 한 구석에서 서윤이 장난감(?)을 하나 발견했다. 장난감이라기보다는 휴대용 라디오처럼 생겨서 버튼을 누르면 익숙한 클래식이나 연주곡이 나오는 아기용 스피커랄까. 아무튼 그걸 찾아와서는
“아빠. 이거 언제 서윤이 아기 침대에 달아줄 거에여?”
라고 물어봤다. 짧은 시간에 여러 번 반복해서. 자기 전에 건전지를 끼워 놓고 잤다. 서윤이 장난감인데 아침에 발견하면 소윤이가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그걸 줬다. 거실에 오래오래 머물기를 바라면서. 나가려고 신발 신는데 문득 ‘오히려 저거 가지고 싸우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윤아, 시윤아. 그거 가지고 싸우지 말고. 알았지?”
“네”
괜한 걱정이었다. 내가 나가고 얼마 안 돼서 서윤이가 깨는 바람에 아내도 강제 기상이었다.
요즘의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오늘도 아내와 아이들은 꼼짝없이 집에만 있었다. 낮에 잠깐 장 보러 나간 것 말고는. 물론 그마저도 애들은 차 안에만 있었다.
퇴근했을 때 아내는 서윤이를 업고 저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기분이 좋았다. 소윤이는 항상 비슷하지만 시윤이는 날에 따라 편차가 좀 있다. 오늘처럼 문을 열자마자 신나게 달려와서 장난을 치는 날은, 걱정 안 해도 되는 날이다. 급히 손과 발만 씻고 서윤이를 건네받았다.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 반, 서윤이가 그리운 것 반.
서윤이는 매우 졸렸지만 기분은 계속 좋았다. 보통 그 시간에는 졸리고 배고파서 우는 것만 볼 때가 많은데, 오늘은 좀 다른 양상이었다. 졸려서 눈을 못 뜨면서도 웃기는 엄청 잘 웃었다. 밥 먹을 때도 혼자 누워서 옹알이하고 이리저리 뒤집기와 되집기를 반복하며 놀았다. 매트 아래로 떨어져서 울기는 했지만, 안아주니까 또 금방 그쳤다.
졸려서 내 품에 얼굴을 파묻다가도 한 번씩 목에 힘을 팍 주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다 내가 눈을 맞추면 막 웃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눈만 마주쳤는데. 서윤이가 태어난 이래로 가장 재밌는 날이 아니었나 싶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아내랑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 느꼈던 그런 감정이랄까(아, 물론 요즘도 매일 그런 감정을 느끼며 살긴 합니다만).
아내가 너무 피곤한지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길 생각을 안 하길래 아니 생각은 했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하길래 내가 씻겼다. 그때 잠깐 아내에게 서윤이를 넘겼던 것 말고는 퇴근해서 내내 서윤이를 안고 있었다. 애들이 다 눕고 아내도 수유를 위한 준비를 마치기 직전까지 서윤이를 안고 놓지 못했다.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지나고 나니까 괜히 소윤이, 시윤이한테 조금 미안하네. 그래도 오늘 아빠가 엉덩이까지 깨끗하게 씻겨줬잖아.
시윤이는 코피를 많이 흘렸다. 시윤이는 종종 코피를 흘리긴 하는데 오늘은 평소에 비해 많이, 오래 흘렀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물로 계속 씻겨주는데 내 마음은 하나도 안 괜찮았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고작 코피였지만 그래도 싫다. 이번 주에 유독 시윤이랑 정분 나눌 시간이 없어서 그랬나 계속 신경이 쓰이고, 안쓰럽다.
이제 주말이긴 주말인데,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하니. 어떻게 해야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번 주말에는 아빠가 조금 더 노력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