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30(주일)
아내는 정신을 못 차렸다. 내가 본 것만 해도 두어 번이었다. 서윤이가 울고 아내가 깨서 수유했던 장면이. 마지막으로 눈을 떴을 때는 밖이 환했다. 서윤이의 거친 울음 소리에 아내가 집이 꺼질 듯 한숨을 쉬며 서윤이를 안고 거실로 나갔다. 차마 아내의 그 한숨을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나도 일어나서 따라 나갔다.
“여보. 왜 나왔어. 더 자”
“아니야. 나 다 깼어. 서윤이 어제는 몇 번 깼어?”
“어제? 두 번”
“아, 진짜? 여보 들어가서 좀 더 자”
“아니야. 괜찮아”
“아, 얼른. 서윤이 내가 볼게”
처음에는 서윤이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안고 있다가 슬쩍 앉으면 여지없이 울었다. 이럴 때는 의외로 과감하게 바닥에 눕히면 괜찮기도 하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7시도 안 된 시간에 깨서 나왔는데 거의 한 시간 넘게 서윤이랑 놀았다. 진짜 놀았다. 서윤이 옆에 같이 누웠는데 나를 보며 쉬지 않고 웃어주는 건 물론이고 내 얼굴을 쥐어 뜯으며 옹알이를 했다. 나의 착각일지는 모르지만 다른 날과는 달랐다. ‘저 사람이 내 아빠구나’라고 분명히 아는 느낌이었다. 마침 소윤이와 시윤이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서, 그야말로 서윤이랑 둘이 데이트였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깨고 나서는 아침 준비하느라 서윤이랑 잠시 이별이었다. 하필 서로 다른 게 먹고 싶다고 해서 (소윤이는 ‘씻은 김치 볶음밥’, 시윤이는 ‘그냥 계란밥’) 시간이 더 걸렸다. 그때도 서윤이는 혼자 엄청 잘 놀았다. 하긴 혼자가 아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중간 중간 어찌나 잘 챙겨주고 신경 쓰는지 모른다.
아내는 지난 밤의 치열했던 수유를 증명하듯, 엄청 늦게까지 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먼저 아침을 먹였고, 아내는 느즈막히 일어나서 먹었다. 아내가 아침을 먹고 난 뒤에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야 했다. 서윤이는 예배 드리기 전에 아내가 수유를 했고, 그대로 잠들었다. 덕분에 예배 드릴 때는 서윤이한테 신경이 분산되지 않았고. 예배가 끝나고 나서 조금 있다가 깼는데 그때는 또 기분이 좋았다. 역시 바닥에 누워서 잘 놀았고, 옆에 누워서 같이 놀면 더 좋아했고.
오늘도 치열한 코로나와의 싸움이었다.
“아빠. 우리 오늘도 잠깐 어디라도 가자여”
“그러게. 어디를 갈까”
소윤이와 시윤이의 ‘어디라도 가자’라는 말은 ‘일단 집에서라도 나가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차 안에만 있어도 좋으니 일단은 나가자라는 바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안쓰러워서 아주 잠깐이라도 어디 발 붙이고 내려서 바람을 쐴 만한 곳이 없을까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몸을 사려야 하는 때였다. 지난주처럼 커피와 저녁 밥을 사러 나가면서 드라이브나 하자고 했다.
사실 나는 오늘은 생각보다 괴롭지 않았다. 서윤이랑 실컷 놀았다. 아침부터 틈이 날 때마다. 계속 안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눕혀 놓고 옆에 누워서 놀았는데도 내내 기분이 좋았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에게는 서윤이랑 원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뜻깊은 주일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는 엄마랑 서윤이 나오기 전에 먼저 나가서 요기 앞에서라도 좀 놀고 있자”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더웠다. 조금만 서 있어도 땀이 주룩 흐르는 날씨였다. 호기롭게 뛰어 나갔던 소윤이와 시윤이는 움찔했다. 더우면 그냥 차에서 기다려도 된다고 하자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그래도 더위를 무릅쓰고 열심히 뛰었다.
커피와 저녁을 사는 게 당초의 계획이었는데 한 가지를 추가했다.
“여보. 그럼 잠깐 PK 마켓 들러서 장 보고 가자”
“다 같이 내려서?”
“그럴까?”
사람이 너무 많으면 (주차장 진입에 시간이 오래 걸릴 정도) 들어가지 않기로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위한 최소한의 외출이었다. 아무래도 그냥 차에만 있다가 들어가는 게 불쌍해서.
“마스크 벗으면 안 되고 아무거나 막 만지면 안 돼”
단단히 단속을 시키고 딱 장만 봤다. 그마저도 구경하면서 슬렁슬렁 본 게 아니라 살 걸 미리 정하고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좋아하는 어묵은, 차에 가서 먹었다. 이제 뭐가 더 안전하고, 어디가 더 안전한지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집에 와서 애들을 먼저 씻겼다. 왠지 저녁 먹고 나면 또 귀찮고 피곤하고 늘어져서 또 미룰 것 같았다. 더 미루기에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머리에서 쉰내가 폴폴 풍겼고. 샤워 그게 뭐라고. 평일에 퇴근하고 나면 그렇게 버거운 일이 되는지. 내 몸은 매일 씻으면서.
마지막 자기 전까지도 서윤이와 알차게 놀았다. 이렇게만 써 놓으면 소윤이와 시윤이를 너무 등한시 한 거 아니냐는 지탄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누구보다 당사자들에게), 그건 아니었다. 물론 서윤이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 비하면 훨씬 집중이 분산 되었지만, 그래도 의지를 발휘해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지금은 서윤이의 웃음이 조금 더 청량한 맛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소윤이와 시윤이의 웃음이 고프지 않은 건 아니다.
마치 며칠 묵은 변을 남김없이 배출한 것처럼, 애들이랑 (특히 서윤이랑) 함께 보내고 싶은 욕망을 깨끗하게 해소한 주말이었다. 그래서 좋기는 한데 내일은 월요일이고, 5일을 또 어떻게 기다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