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31(월)
역시나. 월요병 증상이 심했다. 많은 직장인이 겪는 월요병과는 조금 다른 ‘상사병을 동반한 월요병’이긴 했다. 서윤이, 시윤이, 소윤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오늘 새벽에도 두 번이나 깨서 수유도 하고, 그냥 재우기도 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아내가 듣기에는, 배부른 소리 같겠지만.
월요일이 되니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지난 주말의 일을 되짚어 보게 됐다. 소윤이가 마음에 걸렸다. 서윤이한테 정신이 팔려 가지고 소윤이한테는 제대로 애정 표현도 못했으면서, 또 이런저런 잔소리는 얼마나 많이 했는지. 서윤이를 품에 안고 헤벌쭉 하는 나를 바라보는 소윤이의 표정이 떠오르기도 했고. 괜히 너무 감성적인 건지는 모르지만, 그냥 생각해 봐도 첫째가 느끼는 서러움이 분명히 있을 거다.
“여보. 이거 스피커폰인가?”
“아니. 왜?”
“오늘 소윤이랑 데이트 하고 올까?”
“밤에?”
“어. 시윤이한테 양해를 구하면 양해를 안 해주겠지?”
“어”
“그럼 같이 재우러 들어갔다가 소윤이만 데리고 나와야겠다. 소윤이한테는 미리 말하고”
“왜 갑자기?”
“그냥. 소윤이가 뭔가 불쌍해서”
“그래. 그럼. 여보가 이따 집에 와서 말해”
아내는 오늘도 서윤이를 등에 업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은 서윤이를 넘겨 받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아빠아. 내일은 회다 안 가는 날이에여어?”
“아니. 가야지”
“언데 안 가여어?”
시윤이의 질문이 나에게 힘을 줬다.
‘그래. 아이들은 날 원하고 있구나’
오랜만에 열심히 몸으로 놀았다. 근력을 써야 하는 고된 놀이였지만 즐겁게. 한참 그렇게 놀다가 책도 읽었다. 평소에 (주로 자기 전에) 읽어 달라고 하면 ‘너무 길어서 안 된다’며 되돌렸던 책으로. 골라온 책을 한 권씩 읽고 나니 저녁 준비가 끝났다. 아내의 등에 업혀서 잠들었던 서윤이는, 아내가 방에 눕히고 난 뒤에도 계속 잤다. 덕분에 우리는 평화로웠다.
다행히도(?) 시윤이는 저녁 먹을 때부터 엄청 졸렸다. 소윤이에게는 저녁 먹기 전에, 시윤이가 잠시 화장실에 갔을 때 ‘깜짝 데이트’ 계획을 알렸다. 티내지 말고 잘 숨기고 있으라고 했다. 소윤이도 평소처럼 잘 준비를 했다. 아직은 시윤이가 이런 걸 눈치 챌 만큼 크지는 않았다. 굉장히 허술했지만 아무 탈 없이 비밀 유지가 가능했다.
시윤이는 거의 눕자마자 잠들었다.
“소윤아. 나가자”
데이트라고 별 건 아니었다. 아내와 나의 커피 사러 가는 길에 데리고 갔다가, 먹을 것도 하나 사 주고 그럴 생각이었다. 카시트를 조수석으로 옮겨서 옆에 앉게 하고. 소윤이의 말과 행동에서 설렘이 느껴졌다.
“소윤아. 늦게 자는 게 좋은 거야? 아니면 아빠랑 나가는 게 좋은 거야?”
“늦게까지 아빠랑 음, 노는 건 아니지만 아빠랑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 하고 그런 게 좋져”
소윤이는 조수석에 타라는 나에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빠? 왜 여기 타여?”
“그냥. 데이트 기분 내려고”
소윤이는 가는 내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 말을 했다. 아주 다양한 주제로. 내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여서 그랬나, 재미도 있었다. 다음에 장거리 갈 때는 아내 대신 소윤이를 앉히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윤아. 소윤이는 엄마, 아빠가 소윤이를 사랑한다고 느껴?”
“그럼여”
“아니, 당연히 사랑하는 건 알겠지만 엄마, 아빠가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고 느끼냐는 말이야”
“어, 저 혼자 있었을 때, 시윤이랑 서윤이가 없었을 때는 엄마, 아빠가 저만 사랑했는데 동생들이 생기고 나서는 동생들한테 사랑을 나눠주니까 좀 적어지겠다는 생각은 하져”
부족한 사랑을 느꼈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소윤이다웠다.
“소윤아. 그럼 소윤이는 언제 제일 서운해?”
“어, 별로 그럴 때는 없는데 저도 엄마랑 안고 있고 싶은데 시윤이가 먼저 엄마한테 가서 안길 때가 좀 속상하져”
“아, 그래? 소윤아. 그런데 엄마랑 아빠는 서윤이 보면 소윤이가 서윤이 나이였을 때가 엄청 생각이 나. 지금 엄마, 아빠가 서윤이한테 하는 거 소윤이는 보잖아. 그거보다 훨씬 더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 주고 그랬어”
“저를 제일 많이 사랑했어여?”
“음,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소윤이가 첫 아기였으니까 아빠가 맨날 안아서 재워주고, 목욕도 맨날 시켰어”
“맨날이여?”
“어, 거의 맨날”
“그때는 저 혼자였으니까 엄마, 아빠가 시간도 많고?”
“그것도 그렇고. 처음이니까 그만큼 정성스럽게 한 거지. 엄마, 아빠는 소윤이를 제일 처음, 제일 많이 사랑했지”
“아빠. 만약에 쿠키라고 생각하면, 처음에 저 혼자 있었을 때는 이렇게 동그란 쿠키가 하나 있었는데 시윤이가 태어나면서 그걸 반으로 잘라줬는데, 서윤이가 태어나면서 시윤이가 가지고 있던 쿠키를 다시 반으로 잘라서 반의 반이 됐으니까, 제가 제일 큰 거에여?”
“그런가? 아니면 동그란 쿠키가 있었는데 시윤이가 태어나면서 그걸 반으로 나누고, 서윤이가 태어나면서 다시 동그란 쿠키를 똑같이 세 개로 나눴다고 할 수도 있고”
커피를 주문하면서 소윤이도 먹고 싶은 걸 하나 고르라고 했다. 마카롱이나 쿠키, 빵 중에. 소윤이는 고민 끝에 마카롱 하나를 골랐다.
“소윤아. 집에 가면서 차에서 먹어도 돼”
‘차 안에서는 취식 금지’라는 대원칙도 파괴한 파격 데이트. 소윤이는 마카롱을 만지작 거리더니 얘기했다.
“아빠. 이거 그냥 내일 시윤이랑 나눠 먹어도 돼여?”
“진짜? 당연히 그래도 되지. 시윤이가 생각나서?”
“아니, 마카롱 보다가 갑자기 시윤이가 생각이 나서 같이 나눠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여”
“소윤아. 진짜 기특하네. 시윤이랑 나눠 먹을 생각을 하다니”
“아, 그런데 지금 먹고 싶기도 하네”
“지금 먹어도 되고. 내일 나눠 먹어도 되고. 소윤이 마음대로 해”
“아, 그냥 꾹 참고 내일 나눠 먹어야겠다”
“그러기로 했어?”
“아, 그런데 너무 먹고 싶네. 어떻게 하지”
“소윤아. 그럼 이렇게 하자. 그건 지금 소윤이 먹고, 이따 집 앞에서 아빠가 빼빼로 하나 사 줄 테니까 그걸 시윤이랑 나눠 먹어. 어때?”
“좋아여. 그러자여”
소윤이는 마음의 짐을 덜고 나자, 경쾌하게 마카롱을 베어 먹었다.
“아빠. 흘려도 돼여?”
“어. 흘려도 돼”
“아빠가 차에서 먹으라고 했으니까?”
“그럼. 흘려도 되니까 차에서 먹으라고 했지”
갈 때도 소윤이의 입은 쉬지 않았다. 짧았지만 즐거웠던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윤이는 아빠가 제공한 일탈(?)의 내용을 엄마에게 신이 나서 얘기했다.
“엄마랑 들어가고 싶다”
아빠랑 아무리 데이트를 즐겁게 했어도, 엄마의 자리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나 보다. 나와 함께 들어갔지만 그렇다고 뭐 우울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다만 엄마랑 자는 게 ‘조금’ 더 좋았겠지.
결국 아내도 들어오긴 했다. 아까 방에 눕혔던 서윤이는 그때까지 자고 있다가, 나와 소윤이가 들어가는 소리에 깼다. 아내는 들어와서 수유를 했고, 수유가 끝났을 때는 소윤이도 잠들었다. 언니, 오빠 챙기느라 제대로 보지도 못한 서윤이 얼굴을 그때라도 좀 보려고, 내가 안고 트림을 시켰다. 트림은 금방 나왔고, 서윤이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일단 침대에 눕히고 나왔는데, 낑낑대는 소리 한 번을 듣지 못했다.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소윤이 기분 좋게 하려고 기획한 데이트였는데 내가 더 혜택을 입었다. 한 번씩 한 사람에게 몰아서 사랑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네.
다음에는 시윤이 데리고 나가야지.
(소윤이한테는 미리 양해를 구했다. 다음에 시윤이랑 나갈 때는 이해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