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목)
오랜만에 아무도 깨지 않고 혼자 아침을 보냈다. 난 누가 깨든 안 깨든 크게 상관은 없다. 다만 그만큼 아내가 조금이라도 더 잤으니, 그런 면에서는 아무도 안 깨는 게 낫긴 하다. 물론 나도 혼자 있는 아침 시간을 잘 쓰고 있기도 하지만.
나랑 못 만나는 날이라고 해도 애들이 엄청 늦게까지 자지는 않는다. 오늘도 내가 거의 나가자마자 일어났다고 했다. 아내와 내가 슬하에 자녀를 셋이나 뒀지만 키워 보지 못한 아이가 있다. 머리숱이 풍성한 아이, 잠이 많은 아이.
태풍의 영향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오후가 되니 오히려 날이 개고 화창했는데,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하늘이며 구름이며 도저히 사무실에 앉아 있기가 힘들 정도로 멋졌다. 물론 사무실을 탈출하지는 못했다. 대신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이 멋진 풍경의 감상을 짧게나마 공유했다. 아내도 이미 감탄 중이었다. 아내는 자연드림에 장이라도 보러 다녀올까 한다고 했다. 이 순간만큼은 아내가 부러웠다. 사무실이 아닌 것만으로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날씨가 정말 너무 좋은데. 밤에 애들이랑 어디라도 갈까”
“어디어디 너무 좋지”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게 문제였다. 날씨는 당장 뛰쳐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 때문에 꽁꽁 갇혀 있어야 한다니. 아무리 그래도 오늘의 날씨는 날 들썩이게 했다.
일단 집으로 갔다(사무실을 뛰쳐나온 건 아니고, 퇴근하고). 저녁은 소윤이가 먹고 싶다고 한 김치볶음밥이었다. 아내는 역시나 서윤이를 업고 주방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잘 업혀 있던 서윤이가 갑자기 막 울기 시작했다. 아내는 서윤이를 보게 하고 내가 아내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서윤이의 울음은 그렇게 길게 가지 않았고 오늘도 우리의 저녁 시간을 잘 지켜줬다.
막상 퇴근해서 집에 오니 날씨가 다시 흐려지더니 드문드문 비도 내렸다. 애들도 무척 피곤해 보였다. 아내는 나갈지 말지 고민했다. 난 결정의 권한을 아내에게 넘겼다(혹은 미뤘다). 아내와 내가 바람 쐬는 것도 나가는 이유였지만, 애들도 어디든 차에서 좀 내리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게 마땅치 않으니 고민이 깊어졌고. 아내는 긴 생각 끝에
“잠깐 나갔다 오자”
로 결정을 내렸다. 피곤해 보이던 소윤이와 시윤이는 외출 소식을 듣고 나니 조금은 기운이 나는 듯했다.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고, 근처 공터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 다행히 공터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마실 주스도 집에서 챙겨 왔다.
서윤이만 빼고 각자 마실 음료를 하나씩 들고 돌의자에 걸터앉았다. 바람이 정말 선선했다.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만 아니었으면, 늦은 여름밤의 평화로운 한 장면이었을 거다.
“여보. 앉아 있기만 해도 힐링이다. 나오길 잘했네”
“그러게. 구름 봐”
낮에 예뻤던 하늘은 밤이 되어도 여전했다. 한창 만끽하고 있는데 한 방울, 두 방울 비가 내렸다.
“어? 비 온다”
“그러게. 그냥 잠깐 지나가는 비인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졌다.
“안 되겠다. 가야겠다”
“그러게”
카페 앞에 주차해 놓은 차로 돌아갔을 때는 꽤 세찬 비가 내렸다. 너무 짧아서 아쉽긴 했지만 그것도 감사했다. 빗줄기는 다시 금방 얇아지더니 잠시 뒤에는 그쳤다.
“아빠. 너무 잠깐이었어여”
“그러게. 어쩔 수 없지. 대신 내일 벌써 금요일이야”
외출이 즐겁긴 했는데 집에 오니 매우 피곤했다. 다들 그래 보였다. 서윤이는 오는 길에 잠들었다가 차에서 내릴 때 깼는데, 아내가 다시 방에 눕히고 나왔다. 그 뒤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기고 난 뒤에 ‘오늘은 너희끼리 들어가서 자면 된다’라고 했더니 소윤이가 서럽게 울었다. 시윤이는 원래도 이런 이유로는 잘 울지 않지만, 누나가 너무 서럽게 우니까 옆에서 눈치를 살살 보며 처신했다. 순간 마음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오늘은 울어도 그렇게 해 보고 싶었다. 어쨌든 소윤이와 시윤이만 들어가서 누웠고, 그 뒤로는 소식이 없었으니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즐거운 밤마실을 눈물로 마무리한 게 좀 아쉽긴 했다.
오늘은 소윤이 옆에 누워서 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