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월)
어제 꽤 일찍 잤는데도 엄청 피곤했다. 서윤이 때문에. 체감상으로는 지난밤에 한 세 번은 깬 거 같다. 정확한 건 아내에게 물어봐야 했지만. 우는 소리에 깨 보면 어느새 아내가 벽에 기대고 앉아 수유를 하고 있었다. ‘아, 가영이도 피곤하겠다’라고 생각하며 다시 잠들면, 어느새 또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럼 아까 본 그 장면과 비슷한 장면이 보였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일찍 일어났지만, 너무 졸렸다.
아내가 일어난 뒤 카톡으로 정확한 경위를 들었다. 서윤이는 두 번 깼다. 처음 깼을 때는 수유를 하고 나서도 자지 않아서 아내가 거실로 데리고 나갔는데, 그렇게 두 시간을 깨어 있었다고 했다. 아내에 비하면 난 숙면이었구나.
시윤이 상태도 물어봤는데
“너무 멀쩡하네 진짜. 코가 좀 나오긴 하는데”
라고 했다. 열은 어제보다는 조금 떨어졌고. 어쨌든 다행이었다. 체온계의 숫자보다 중요한 게 실제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했다. 축축 쳐지는 것보다는 여러 모로 나았다. 손은 안 빨았는지 물어봤더니 빨았다고 했다. 대신 그때마다 손을 씻고 오게 했다고 했다. 이 방법도 괜찮은 거 같다. ‘손을 빨면 뭔가 귀찮은 일이 생기게 하고, 그럼 그게 싫어서라도 손가락을 안 빨지 않을까’라는 건 순전히 나의 기대다. 아이들은 언제나 나의 기대 그 이상이다.
어쨌든 시윤이가 멀쩡하다는 사실에 안도했는데 점심 무렵,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나 두통이 극심해”
평소에도 두통이 잦은 편이긴 했지만, 극심하다고 표현할 정도면 아내가 견디기에도 버겁다는 뜻이었다.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 정도 걱정은 평소에도 자주 있었다. 20분 뒤, 상황은 급변했다.
“다 토했네. 약을 일찍 먹었어야 했는데”
이건 좀 심각한 상태였다. 아내가 카톡을 보내고 한 시간 정도 있다가 확인을 했다. 바로 전화를 했는데 거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다. 딱히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었다. 당장 달려갈 수도 없고. 아내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거의 오타를 내지 않는 아내가, 마치 카톡을 쓰는 것조차 버겁다는 듯 오타(오타가 아니라 문장의 미완성)를 계속 보냈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에 속도 울렁거린다고 했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면 안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고. 그나마 시윤이가 열이 나는데도 멀쩡하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나중에 전화했을 때는 울고 있었다. 퇴근하기 1시간 30분 전쯤이었는데, 백 번은 고민한 거 같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하고 조퇴를 할까 말까를. 이 망할 놈의 회사원 DNA는 그게 뭐라고 나머지 1시간 30분을 채우도록 나를 조종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언니(505호 사모님 아님)가 고구마랑 계란 삶아서 가져다주고, 약도 사다 주고, 애들도 잠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정말 고마웠다. 너무 뜬금없는 전개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잘났다고 까불고 나대면 홀로 남게 되고, 홀로 남은 사람은 도움을 못 받는다. 지난번에 아내가 유선염으로 심하게 아팠을 때도 비슷한 도움(같은 사람은 아님)을 받았다. 회사에 발이 묶여 아무것도 못 하는 나에게는 빛과 같은 도움의 손이었다. 그 뒤로는 아내의 목소리가 조금 나아졌다. 약효가 좀 드는 것 같기도 했고.
6시. 땡 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퇴근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반갑고 힘차게 날 맞이했다. 시윤이는 여전히 멀쩡했다. 다행이기도 하면서 괜히 걱정도 됐다. 아내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에 육아에 지칠 대로 지쳤을 때보다 한 10배 정도 더 기력이 없었다. 서윤이는 아주 아주 환한 웃음으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바로 싱크대로 향해 저녁을 준비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에게 할 말을 담아 놓은 주머니를 푼 듯, 쉴 새 없이 질문과 대화를 걸어왔다. 하루 종일 아픈 엄마와 함께 있느라 애들도 고생했을 테니 최대한 성심성의껏 모든 문장에 반응을 했다. 그 중간중간에는 바닥에 엎드려 나를 보며 계속 웃는 서윤이랑 눈도 마주치고. 아내는 서윤이도 하루 종일 방치되어 누워 있었던 시간이 많았다며 좀 안아 주라고 했다.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마음은 열 일 다 제쳐 두고 안아주고 싶었다. 할 일이 많고, 소윤이와 시윤이의 마음도 챙겨야 하니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냥 다 짠했다. 아내도, 소윤이도, 시윤이도, 서윤이도. 다행히 아내는 저녁은 조금 먹었다. 토하지도 않았다. 머리가 아픈 것도 조금 잦아들었다. 낮에는 가만히 있어도 욱신욱신했는데, 저녁에는 가만히 있으면 괜찮다고 했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시윤이의 이마도 여전히 뜨끈했고, 체온계의 숫자도 어제랑 비슷했다. 하나도 아파 보이지 않는 것도 똑같았고.
“아빠. 오늘은 누구랑 자여?”
“오늘은 아빠가 재워 줄게”
“왜여?”
“그냥”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가뜩이나 제대로 바람도 못 쐬는 하루하루에 ‘엄마가 아픈’ 하루를 보낸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냥 같이 누워 있는 게 무슨 위로냐 싶기도 하지만, 그거라도 안 하면 또 엄청 서운해할 테니. 자려고 누워서 소윤이와 시윤이의 손을 잡고, 나의 언어(눈높이를 고려하지 않고)로 기도를 했다.
아내는 바로 자지 않고 잠깐 나왔다. 너무 일찍 자면 새벽에 못 잘 까 봐. 잠깐이라도 나랑 얘기를 나누려고. 그러더니 소파에 앉아 빨래를 개려고 했다.
"여보. 그냥 둬"
"괜찮아"
"아, 그냥 놔두라니까"
"그럼 또 여보가 할까 봐"
"아 하면 되지. 놔두라고. 빨리. 그냥 누워서 쉬어"
나의 회사원 DNA 못지않게, 아내의 주부 DNA도 강력한가 보다.
내일이 고비다. 다섯 명 중에 두 명이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으니. 내일 누구 하나라도 호전이 되면 내리막이고,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여전히 위기고, 누구 하나라도 심해지면 초비상이고.
오늘 밤도 푹 자긴 글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