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수)
“아빠”
“어?”
“안녕”
“그래”
알람을 듣고 깨서 거실로 나가는 나에게 소윤이가 인사를 건넸다. 사실 나도 알람을 듣기 전에 깨긴 했다. 소윤이의 기침 소리와 뒤척이는 소리를 듣고, 소윤이가 깼다는 것도 알았고. 서윤이만 그리운 게 아니라 소윤이도 언제나 그립지만, 그렇다고 정분을 나누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꾹 참는 거다.
아내의 두통은 어제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오늘도 퇴근하기 전까지는, 집안의 상황을 자세히 전해 듣지는 못했다. 중간에 아내랑 통화할 때, 아내 목소리의 밝기와 높이로 짐작할 뿐이었다. 제법 괜찮아 보였다.
퇴근하려고 밖에 나왔는데 엄청 진하고 큰 무지개가 보였다. 다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었다. ‘무지개’를 그리라고 하면 누구나 그리는 모양의, 일곱 색깔이 선명하게 보이는 무지개였다. 집에 가서 보여 주면 엄청 좋아할 소윤이와 시윤이를 생각하며 찍었다.
“아빠. 시윤이가요 오늘 손을 거의 안 빨았어요. 칭찬 많이 해주세요”
아내가 나에게 시윤이의 선행(?)을 전해줬다. 열이 난 걸 기회 삼아 열심히 엄지손가락 빨기의 위험성을 설파하고 있다. 그게 좀 먹혔는지 오늘은 확연히 줄었다고 했다. 목격자 소윤이는 “딱 한 번 빠는 거 봤어요”라고 증언했다. 잘했을 때는 배가 부르도록 칭찬하는 게 바른 육아의 기본.
“우와. 강시윤 짱이다. 어떻게 그렇게 손을 안 빨았어? 대단한데? 시윤아. 왜 안 빨았어?”
“별로 업더서 그래떠여어”
“뭐가?”
“머이카악(머리카락)”
아니야, 시윤아. 너의 의지도 분명히 작용을 했을 거야. 너를 과소평가하지 마.
아침에 깼던 소윤이도 다시 잤다고 했다. 사실 다시 안 잘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윤이 나름대로는 아마 노력을 했을 거다. 아내와 나의 말을 기억하면서, 다시 잠들기 위해서.
기특한 녀석들.
저녁은 퇴근할 때 사서 들어갔다. 탕수육, 짜장면, 짬뽕. 웬만한 음식은 서윤이를 안고 먹는 게 가능하지만, 짬뽕은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막 들어갔을 때 서윤이의 기분이 썩 좋지 않아서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바닥에 내려놔도 그럭저럭 잘 놀았 아니 굴렀다. 어딘가에 막히거나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때마다 울상을 지었지만 나랑 눈을 마주치면 웃어줬다. 이 기분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기분 좋을 때 웃어 주는 것 하고는 또 다른, 내가 그녀의 위로가 되는 듯한 이 기분. 아슬아슬하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아내가 먼저 식사를 마치고 서윤이를 안아줬는데, 내가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내가 안았다. 내가 자처했다. 원래 아내가 수유하고 바로 재웠어도 됐는데, 그럼 나랑 서윤이와의 시간이 너무 없으니까. 대신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겼다.
다 씻고 나와서 옷을 갈아입는데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장난이 한가득이었다. 기분은 아주 좋았는데 지친 아내의 말을 바로바로 듣지 않고, 약간씩 뺀질거렸다.
“소윤아, 시윤아. 너네 오늘 아빠도 같이 계셨으면 많이 혼났을 거다”
역시나, 낮은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많다. 아내가 굳이 다 알리지 않을 뿐.
애들이랑 함께 방으로 들어갔던 아내가 나오며 얘기했다.
“여보. 시윤이는 손가락을 엄청 빨면서 자네?”
그래, 뭐. 다 씻은 깨끗한 손이니까. 오늘 하루 잘 참았으니 일종의 보상이라고 해 두자.
아내는 저녁 메뉴를 정할 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식욕이 없다고 했다. 9월이 되자 아내는 평일에는 빵을 먹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했다.
“여보. 먹고 싶은 게 없어. 의욕이 없어. 빵만 먹고 싶어”
“식욕은 없고 빵욕은 있네?”
수면욕. 식욕. 성욕. 다 필요 없고, 아내는 오로지 빵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