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몰카

20.09.14(월)

by 어깨아빠

지난주 목요일에 연차를 올렸고, 결재가 떨어졌다. 휴가 일자는 오늘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어제 잘 때까지도.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그저 아쉬운 주말의 마지막 밤이었겠지만, 난 혼자 신났다. 아침이 되었는데 출근을 하지 않는 남편, 아빠를 보며 놀라고 즐거워할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휴가를 올리기 전부터 이 상상을 하며 혼자 히죽거렸다.


어제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잤다. 당연히 아침에도 깨지 않았고.


“여보. 여보. 벌써 7시야”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1시간이 늦은 걸 확인하고는 놀라서 날 깨웠다.


“여보. 일부러 더 자는 거야? 아니면 알람 못 들은 거야?”

“그냥 더 자는 거야”


소윤이랑 시윤이도 일어났고, 아내는 서윤이 수유를 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왜 안 일어나세여?”

“그냥 피곤하신가 봐”


눈 감고 자는 척하면서 진실을 밝히기 전, 마지막 쾌감을 즐겼다.


“여보”

“어?”

“나 사실 오늘 휴가야”

“뭐? 진짜?”

“어. 연차 냈어”

“대박”


이 순간을 위해 목요일부터 꾹꾹 참았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진실을 알렸다. 아내도, 소윤이도, 시윤이도 좋아했다. 다행이다. 환영받는 남편, 아빠라.


“아, 여보. 오늘 뭐 하지. 알차게 써야 하는데. 어디라도 갔다 와야겠다”


아내는 뜻하지 않게 얻은 ‘남편이 존재하는 월요일’을 뜻깊게 보내고 싶어 했다. 이 시국에 뜻깊게 보내기 힘들었지만.


어제처럼 날씨가 좋았다. 아내와 나는 어제처럼 ‘사람 없고, 자연이 있고, 멀지 않은’ 어딘가를 갈망했다. 그래도 월요일이라 어딜 가든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두 곳이 후보로 남았다. 한강공원 망원지구와 연천의 당포성. 망원 지구는 예전에 자주 가던 곳이었고, 당포성은 찾다 보니 알게 된 곳이었다. 연천까지 가기에는 뭔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애들 놀기에도 망원 지구가 더 좋아 보여서, 망원 지구에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평일의 여유였다. 시계를 볼 때마다 ‘아, 사무실이었으면 이거 하고 있었겠네’를 생각하며 휴가의 만족감을 끌어올렸다.


“아빠. 우리 오늘 텐트도 치자여”

“그래. 텐트도 치자”


집에서 나갈 때쯤 되니 아침보다 날씨가 좀 흐려지긴 했지만, 뭐 여전히 나들이하기에 부족함 없는 날씨였다. 가는 길에 점심으로 먹을 것도 사고, 간식거리도 샀다. 소풍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날씨는 조금 더 흐려져서 차 유리 위로 아주 가끔씩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다.


‘비구름이 위에 있나 보네’


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한강 공원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 타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은 많았는데 우리처럼 자리를 잡고 소풍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월요일의 위엄이었다. 다만, 공원의 모습이 예전에 왔을 때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기도 했다. 다소 황량했다.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고, 진흙 밭이고. 지난번, 비가 많이 왔을 때의 흔적이 아직 그대로 남은 듯했다. 잔디밭은 들어가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약간 당황했지만 굴하지 않고,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돗자리를 펴고, 아내랑 열심히 텐트도 쳤다. 텐트를 세울 지지대를 열심히 연결하고 있는데 한 중년의 아저씨가 오셔서 말씀하셨다.


“여기 텐트 치시면 안 돼요. 벌금 300만 원이에요”

“아, 그래요? 예전에는 됐는데”

“뭐 나는 그건 모르겠는데, 아무튼 여기 텐트 치시면 안 돼요”

“아, 그냥 바닥에 치는 것도요?”

“네. 안 돼요”


어쩔 수 없이 다시 텐트를 접었다.


“소윤아, 시윤아. 텐트는 못 치겠다”

“왜여?”

“여기 텐트 치면 안 되는 곳이래”

“아빠. 그럼 텐트 칠 수 있는 곳으로 가자여”

“그럼 너무 늦어져”


소윤이와 시윤이가 매우 아쉬워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소윤아, 시윤아. 괜찮아. 그냥 돗자리에 앉으면 되지 뭐. 여기 그늘이라 텐트도 필요 없겠네”


자리에 앉아 사 온 음식을 펼쳐서 막 먹으려는데 후드득후드득 뭐가 떨어졌다.


“아빠. 비 오는데여?”

“그러게”


아내와 나는 막 웃었다. 그냥 우리 상황이 웃겨서.


“괜찮아. 오래 내릴 거 같지는 않아”


라고 말은 했는데 불안했다. 혹시나 더 거세지고 굵어질까 봐. 다행히 비는 아주 잠깐, 조금 내리고 말았다.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니, 피곤이 쏟아졌다.


“아으, 잠깐 누울까. 소윤아. 소윤이도 누워서 하늘 봐봐. 다 보여”


소윤이는 눕지 않았다. 하늘을 보라던 나는 금방 눈을 감고 한숨 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1분 1초라도 빨리 아빠랑 놀고 싶어 했다. 한 번 잠이 드니 다시 정신을 차리는 건 오래 걸렸다. 소윤이가 나를 깨울 심산으로 시끄럽게 낸 소리에, 유모차에서 자던 서윤이가 먼저 깼다. 덕분에 나도 깨긴 깼다.


“아빠. 우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자여”

“어, 아빠 정신 좀 차리고”


불쌍한 소윤이. 아빠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 번 하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소윤아, 미안. 정말 잠이 안 깨서 그랬어.


일단 시작하고 나서는 최선을 다했다. 뛰고 또 뛰고 계속 뛰고. 공놀이도 하고. 자전거랑 킥보드도 타고. 내가 신나고 재밌게 놀았으니 애들도 그랬을 거다.


“이제 가자”


는 말에 미련 없이 일어서는 걸 보니 그게 느껴졌다.


서윤이는 오늘 카시트에서 많이 울었다. 평소에는 카시트에 앉혀도 잘 울지 않는데 오늘은 엄청 울었다. 그것도 아주 서럽게, 혹은 매섭게. 역시나 신기하게도 카시트에서 꺼내 안아주면 바로 그친다. 정말 바로. 칼같이. 배가 고파서도 아니고, 졸려서도 아니고, 정말 카시트가 싫어서 우는 건가.


점심을 늦게 먹어서, 저녁에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애들을 씻기고 국수를 끓였다. 밥을 차려줄까 하다가 밥을 새로 하려니 귀찮았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물어봤더니, 국수도 좋다고 했다.


“소윤아. 아빠가 국수해주면 멸치 국수가 좋아? 비빔국수가 좋아?”

“멸치국수는 국물 있는 거에여?”

“어”

“전 아무거나 다 좋아여”


“시윤이는?”

“더는 궁물있는 게 도아여어”


국물 요리의 구원자, 다시 팩을 넣고 후다닥 국수를 끓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별로 배가 고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엄청 잘 먹었다. 아주 맛있게. 국물까지 남김없이 싹싹 비웠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가 기분이 엄청 좋네? 너네가 너무 잘 먹어서”

“아빠. 너무 맜있어여. 멈출 수가 없어여”


자기가 말한 국물 있는 국수는 콩국수였다며 아쉬워했던 시윤이도 남김없이 먹었다.


서윤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수유를 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의 저녁 식사 중간쯤부터 또 앙칼지게 울었다. 내가 안아줬는데도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오늘은 잠투정이었다. 그러더니 금방 눈을 감았고 그대로 아기 침대에 눕혔다.


시윤이는 집에 오는 길에 차에서 달콤하게 자서 그런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시윤이는 아내나 내가 재워주지 않아도, 재워주다가 먼저 나가도 그걸로 울거나 붙잡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늘도 내가 옆에 누워 있다가 먼저 나왔다. 시윤이는 그 뒤로 두 번이나 문을 열고 나왔다.


처음의 사유는


“물 말라여어(목 말라여)”


두 번째 사유는


“쉬 마려워여어”


화장실 갔다 오더니 씨익 웃으면서 아내와 나에게 뽀뽀를 하고 들어갔다.


“여보. 이러다 내가 내일도 ‘나 사실 오늘도 휴가야’ 이러면 좋겠지?”

“헛된 기대하게 하지 마라”

“그런 일은 없어. 내일은 진짜 출근이야”


주일 밤 같은데 사실은 월요일 밤이라는 게, 아직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내도 나도 같은 마음이다.


‘내일도 휴가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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