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3(주일)
날이 밝고 조금씩 정신이 돌아올 무렵, 정체불명의 규칙적인 소음이 들렸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을 떴는데 아내와 서윤이가 보이지 않았다. 거실에 나가 보니 아내와 서윤이가 있었다. 아내는 아예 이불까지 가지고 나와서 자고 있었고, 서윤이는 그 옆에서 또렷한 눈동자로 언니와 오빠의 블럭을 만지작거렸다. 그 소리였다. 서윤이가 블럭을 만지면서 그게 땅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얼마 전까지의 서윤이는 그냥 이리저리 뒹굴거나 팔을 휘두르다가 블럭이 느껴지면 그제야 고개를 돌려, 이게 뭔가 확인했다. 요즘의 서윤이는, 오늘 아침의 서윤이는 먼저 블럭을 보고 ‘저걸 만져 봐야겠다’라는 의지를 가지고 손을 뻗었다. 내가 나온 걸 알고 나서는 계속 나를 보며 웃었지만 그전까지는 혼자 블럭을 이리저리 굴리며 옹알거렸다.
“여보. 들어가서 자”
“아니야. 그냥 여기서 잘게. 괜찮아”
“애들 나오면 오래 못 자잖아”
아내는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들어가고 얼마 안 돼서 소윤이가 나왔고, 잠시 뒤에는 시윤이도 나왔다. 서윤이는 지난주 주말하고는 또 달랐다. 지난주에는 기분이 좋을 때같이 놀다가 졸려 보여서 안아주면 금방 잠들고, 눕혀도 깨지 않았다. 오늘은 졸려 보여서 안아주면 금방 자지 않았고, 눕혀도 몇 번 깼고, 결국 눕히기는 했어도 오래 자지 않았다. 덕분에 아내는 그렇게 오래 자지 못했다.
대신 내가 정신을 못 차렸다. 일찍 일어나서 거실로 나오기는 했는데, 나오기만 했을 뿐 소파에 누워서 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아침의 기억이 희미하다.
날씨가 기가 막혔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 단계 연장이냐 2단계로 완화냐를 두고 고민하는 하늘 아래의 세상과는 너무 다른, 베란다에 서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하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뛰쳐나가겠구먼’
아침에 하늘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온라인으로 예배도 드리고, 점심도 먹고. 나는 점심 먹고 나서도 엄청 졸았다. 아니 잔 거지. 소파에 누워서 잤는데 잠을 떨쳐내는 게 어려웠다. 공식적으로는 취침을 마치고 몸을 일으켜 앉았는데도 눈을 뜨지 못했다. 너무너무 졸렸다.
우리는 오후 늦게 나갔다. 도저히 집에만 있을 수 없는 하늘이었으니까. 동네 산책이라도 한 바퀴 할까 싶었는데 아내는 차를 타고 가자고 했다. 집 근처에서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동네 산책의 가장 큰 아쉬움은, 질 좋은 커피가 없다는 거였다. 중요한 문제였다. 차를 타고 나가기로 했다. 어딘지 정하지는 못했지만 ‘자연을 만끽하면서, 사람도 없고, 쉬기에 좋은 곳’을 바랐다.
근처의 공원 몇 군데의 상황이 어떤지 지역 맘카페에 들어가서 살폈는데, 역시나 다들 사람이 많다고 난리였다. 일단 카페에 가서 커피부터 사기로 했다. 평소에 종종 가는 곳인데, 하천을 따라 산책로와 작은 공원이 군데군데 조성된 곳이었다. 카페에 가면서 보니 사람이 잔뜩이었다. 커피만 사서 다시 집 근처로 돌아왔다. 자연드림에 들러서 소윤이와 시윤이의 간식도 샀다.
“아빠. 우리 어디로 가는 거에여?”
“그러게. 엄마, 아빠도 아직 못 정했어”
“왜여?”
“다 사람이 많네”
집 근처의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담한, 아직 완공되지 않은 타운하우스 단지 근처로 가 봤다. 거기도 하천을 따라 산책로가 있었고 중간에 운동 기구가 있는 ‘쉴 곳’ 정도는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훨씬 적었다.
마음 같아서는 광활한 잔디밭에 내려 주고 마음껏 뛰고 소리도 치라고 하고 싶었는데, 이게 코로나 시대의 현실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그래도 바람만 쐐도 기분 좋지? 날씨가 너무 좋잖아”
소윤이와 시윤이는 정자에 앉아 쭈쭈바를 먹었다. 그 사이 시윤이는 두 방, 소윤이는 네 방 정도 모기에 물렸다. 나도 물렸고. 아내도 물렸고. 다행히 서윤이는 무사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아내와 나의 외출 욕구, 나들이 욕구를 채우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했지만, 이제 그 안에서 만족과 감사를 찾아야 한다. 평일에는 아예 나가지 못할 때도 많으니.
서윤이는 오늘도 많이 울었다. 내가 알고 있던 서윤이가 아니었다. ‘울면 안아주고, 안아주면 금방 잠잠해지거나 잠든다’ 이게 서윤이의 순서였는데 완전히 달라졌다. 안아줘도 여전히 울고, 겨우겨우 우는 걸 달래도 금방 다시 울고, 또 겨우겨우 달래서 눕혀도 금방 깼다. 오늘도 많이 울었고, 많이 안고 있었다. 민감한 엄마, 아빠들은 이럴 때 바로 바로 그 원인을 찾아내던데 (이가 난다든지, 성장통이라든지, 배앓이라든지) 아내와 나는 그런데 둔하다. 아내는 모르겠는데 나는 민감해지고 싶지도 않고. 뭐 다 성장의 과정일 테고, 이가 나서 우는 걸 안다고 한들 이를 조금 더 안 아프게, 빨리 나게 할 수도 없고.
일과 시간(?)에야 그렇다 쳐도, 서윤이는 자기 위해서 마지막 수유를 하고 난 뒤에도 거칠게 울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저녁 식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 내가 서윤이를 안고 기다렸는데, 엄청 울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 거 같았다. 아내가 먼저 서윤이를 데리고 들어가서 수유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 식사와 양치를 하며 잘 준비를 했고.
아내와 나의 계획 혹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굳어진 당연한 수순은 ‘먼저 들어가서 수유를 한 뒤 눕히고 나오면 서윤이는 잔다’였는데, 바로 격파 당했다. 서윤이의 앙칼진 울음소리가 온 집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거실로 데리고 나왔는데 울음을 뚝 그쳤다. 그러더니 내 얼굴, 소윤이 얼굴, 시윤이 얼굴을 보며 생글생글 눈웃음을 흘렸다.
“여보. 얘 자기 혼자 들어가기 싫다고 이러나 봐”
“그러게. 많이 컸네”
소윤이와 시윤이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누웠을 때, 서윤이는 나에게 안겨 있었다. 언니와 오빠가 잠들고 나서도 서윤이는 잠들지 않았다. 졸려 보이기는 했다. 고개를 내 겨드랑이 쪽에 파묻고 손가락을 빨았다. 불을 다 꺼서 서윤이의 눈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단 침대에 눕히고 서둘러서 거실로 나왔다.
“자?”
“몰라. 못 봤어. 어두워서”
다행히 서윤이는 다시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아내와 내가 자려고 눕기 전에 또 한 번 깼다. 분명히 많이 깬다. 최근의 흐름에 비하면. 아니, 이제 이게 최근의 흐름이 된 걸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