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5(화)
월요일 같지만 사실은 화요일이라는 걸 깨닫고 감사한 아침, 서윤이까지 깼다. 아내는 눈도 못 뜨고 겨우겨우 서윤이를 거실로 데리고 나와서 바닥에 내려놨다. 서윤이는 기분도 좋았고 잘 웃었다. 아내가 소파에 앉아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난 서윤이랑 놀았다. 그래도 꽤 놀았다. 한 25분 정도. 소윤이 때는 출근이 빨라도 너무 빨라서 그럴 여유가 없었고, 시윤이 때는 출근은 늦었지만 일어나자마자 나가느라 바빴고. 무엇보다 이 시기가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아니까 (두 번 정도 겪으니 절절해진다) 틈만 나면 정분을 나누고 있다.
시간이 다 돼서 나가야 할 때까지도 아내는 반 수면 상태였다. 내가 나가면 더 자기는 어려워 보였다. 일단 서윤이가 잘 지 안 잘 지 확실하지 않았고, 설령 잔다고 해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깰 시간이었다. 서윤이는 바닥에 엎드려 저 멀리 현관문을 나서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언젠가는 떠나는 엄마, 아빠를 보며 우는 날도 오겠지. 아직 그 정도는 아니고, 엄마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면 조금 칭얼대기는 한다.
아내는 낮에 친구네 집에 갔다 온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집으로 복귀했다. 나의 퇴근과 비슷한 시간에 올 줄 알았는데, 진작에 돌아와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옆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니, 어쩜 그렇게 애들 소리가 하나도 안 나요”
“아, 그런가요? 많이 우는데”
“아니에요. 어쩜 그렇게 조용한지. 그래서 나는 낮에 집에 없나 했다니까”
“아, 그래요?”
“우리 며느리는 딸만 둘인데, 내가 거의 1년 동안 가서 봐주거든요. 그런데 너무너무 힘들어. 소윤이 엄마는 진짜 대단해”
“아,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살다 보면 존재의 가치를 잊고 살 때가 많은데, 내가 함께 사는 아내의 위엄이 이 정도다. 반 백도 더 사신 어르신에게 진심 어린 박수와 치하를 받는 존재다.
전쟁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세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춰 항상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별것 아닌 하루하루가 참 대단하다(내 저녁을 준비해 준다는 것에 방점을 찍은 것이 아니니 오해 마시길). 아내는 오늘도 서윤이를 업고 부지런히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평소보다 하루 더 주말처럼 보내서 그런가, 유독 나에게 매달렸다. 사실 내가 그랬다. 내가 더 애들이 고팠다. 육체의 고단함을 무릅쓰고 소윤이, 시윤이와 몸을 부대꼈다. 아내의 등에 업혀 있는 서윤이를 당장 안아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눈으로만 인사를 건넸다. 소윤이, 시윤이하고 노는 게 재미없다는 건 아니다. 그건 또 그것대로 그립고, 재밌다.
아내의, ‘저녁 준비 완료’ 선포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소윤이랑 시윤이를 식탁 의자에 앉혔다.
“아빠. 아직 엄마가 앉으라고 안 했는데여?”
“거의 다 됐네. 일단 가서 앉아”
그러고는 서윤이를 건네받았다. 소윤이, 시윤이랑 노느라 하지 못했던 인사와 안부를 나눴다. 못 알아듣는 것처럼 보여도 다 알아듣는다. 소윤이, 시윤이에게도 그랬었다. 어른의 언어로 안부를 묻고, 나의 하루도 전해주고.
진짜 저녁 준비가 끝나서 서윤이를 살포시 바닥에 내려놨는데 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잽싸게 다시 안았다. 서윤이가 좋아하는 블럭을 서윤이 앞에 놓고 다시 내려놨다. 울지 않고 블럭을 만지작대며 좋아하길래 얼른 식사를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금방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내가 조금만 지체하면 분명히 아내가 데리고 가서 안을 테니, 부지런히 서윤이를 데리고 와서 내 무릎에 앉혔다(서윤이를 안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내가 밥 불편하게 먹을까 봐 그랬다는 거라고 굳이 오해의 소지를 없애 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쌍하게 울더니 무릎에 앉히니 바로 그쳤다. 앞에 앉은 소윤이가 웃겨 주니 꺽꺽대며 웃기까지 했다. 하아, 진짜 다 컸네.
안은 김에 이유식도 내가 먹였다. 날름날름 잘 받아먹었다. 받아먹는 자녀의 모습은, 잠든 자녀의 모습만큼이나 온갖 근심을 잊게 만든다. 주는 대로 다 받아먹더니 어느 순간 뱉어냈다. 우연인가 싶어서 다시 넣어주면 여지없이 혀로 밀어냈다. 나중에는 아예 고개를 돌리며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걸 어떻게 알아가지고, 싫은 건 싫다고 할 줄도 알고.
아내가 애들을 씻기는 동안 서윤이랑 놀았다. 기분이 오락가락하기는 했는데 안아 주거나, 누워서 배에 앉혀 놓으면 대체로 괜찮았다. 아침에도, 밤에도 다른 날에 비하면 아주 많은 시간을 서윤이와 보냈다.
“아빠. 잘 자여. 우리 내일 아침에 만나자여”
“아빠아. 달 다여. 내이 아띰에 만나여어”
소윤이와 시윤이가 누워서 나에게 밤 인사를 건넸다. 아내가 대신 대답했다.
“얘들아, 아침에는 아빠 안 만나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