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인가, 누가 엄마를 힘들게 했는가

20.09.16(수)

by 어깨아빠

어젯밤, 자려고 아내랑 막 누웠는데 자고 있던 소윤이가 짧게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혹시나 싶어서 손과 발, 이마를 만져봤는데 특별히 뜨겁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이제 새벽에 한두 번 깨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두운 것 같기도 하고 밝은 것 같기도 한 새벽녘에 서윤이 울음소리, 소윤이가 화장실 다녀오는 소리, 아내가 나갔다 오는 소리가 다 들렸다. 그 시간에 깨면 다시 잠드는 게 어려울 때도 많기 때문에 눈을 꾹 감고 남은 잠이 달아나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그 와중에도 ‘소윤이 바로 다시 자야 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도 그게 걱정이 됐는지


“소윤아. 너 바로 자야 돼. 지금 엄청 새벽이야. 알았지”


라고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다행히 다시 잠드는데 성공했고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보니 모두 곤히 자고 있었다.


낮에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소윤이 미열이 있네! 37.8”

“헐. 어제 낑낑대더니. 컨디션은 어때?”

“컨디션은 매우 멀쩡한데”

“그나마 다행이군. 숨 쉬는 것도 괜찮고?”

“웅”


새벽에 깼을 때, 아내한테 엄청 덥다고 했다던데 열이 났던 건지 내렸던 건지 아무튼 자기 전에 들었던 앓는 소리가 예사는 아니었나 보다.


잘 논다니 다행이긴 했는데 한 번씩 힘들어한다고 했다. 사진 속의 소윤이 얼굴에 엄마, 아빠만 알아볼 수 있는 ‘평소와 다름’이 드러났다.


셋 모두 낮잠을 재우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소윤이가 못 자는가 싶더니, 의외로 시윤이가 복병이었다. 누나와 동생이 모두 잠들고 나서도 한참이나 잠들지 못했다. 결국 잠이 들긴 했지만 곧 서윤이가 깼다. 고로 아내는, 꿀 같은 자유 시간 따위는 구경도 못 해 봤다.


소윤이는 자고 일어나서도 상태가 괜찮다고 했다. 상태가 안 좋다가 좋아지면 다시 나빠질 때가 많지만, 애초에 상태가 괜찮을 때는 갑자기 나빠지지는 않는다. 이번에도 그러기를 기대하고 있다.


퇴근이 늦었다. 많이는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와 아이들은 저녁을 다 먹고 씻는 것만 남은 상황이었다. 아내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 아니, 힘든 걸 넘어서서 차갑기는 냉장고에 몇 달 있었던 아이스팩 같았고, 날카롭기는 방금 막 간 정육점의 칼 같았다. 나한테 그랬다는 게 아니고 아내가 내뿜는 기운이 그랬다는 얘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서윤이는 바닥에 엎드려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발을 파닥거렸지만, 바로 안아주지는 못했다. 오늘도 일단은 언니와 오빠부터. 함께 앉아서 손바닥 치기도 하고(의외로 이 간단한 놀이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의 깊은 웃음을 봤다), 묵찌빠도 하고, 하나 빼기도 했다. 시윤이는 제대로 참여하기가 어려웠지만 또 거기서 나오는 빙구미 덕분에 모두 웃을 기회도 있었고.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차례대로 한 명씩 소환했다. 화장실로. 소윤이가 씻으러 갔을 때 시윤이에게 물어봤다.

“시윤아. 엄마 기분 안 좋으셔?”

“아니여”

“그래? 엄마가 힘들어 보이시는데. 소윤이랑 시윤이가 엄마 많이 힘들게 했어?”

“아니, 우디가 힘들으게 한 건 아니구우 그양 엄마가 많이 힘드여서 그대여어”

“아, 그래?”


그 정도로 해 두고 시윤이랑 마저 재밌게 놀았다. 소윤이가 나오고 시윤이가 화장실로 갔다.


“소윤아. 엄마 기분 안 좋으신가?”

“아니여”

“그래? 엄마가 많이 힘들어 보이시던데. 소윤이랑 시윤이는 엄마 안 힘들게 했어?”

“음, 엄청 힘들게 하지는 않았고 엄마가 좀 힘드신가 봐여”

“그렇구나”


소윤이, 시윤이랑 놀면서도 서윤이는 허벅지 위에 앉혔다. 언니, 오빠, 아빠가 노는 걸 빤히 쳐다보며 잘 버텼다. 둘 다 씻고 나온 뒤, 아내는 10분을 허락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랑 10분만 더 놀아”


아내는 시윤이의 모자란(?) 몸짓에 한 번씩 실소를 흘렸지만, 지금은 웃으면 안 되는 기분이라 억지로 밀어 넣는 듯 보이기도 했다. 짧아서 아쉬웠지만, 퇴근이 유일한 해방일 아내를 위해 칼같이 문을 닫았다.


“자, 이제 그만. 얼른 들어가서 누워”

애들 재우고 (서윤이 빼고 아무도 자지 않았다. 낮잠을 잤기 때문에) 나온 아내는 여전히 힘들어 보였다. 뭐 손에 꼽을만한 큰 화젯거리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잔잔한 육아의 일상이 모여 커다란 파도가 되어 온 느낌이랄까.


소윤이한테 빈정이 상한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첫 번째 빈정 상함의 순간은 이렇다. 원래 서윤이한테 감자 이유식을 해 주기로 했고, 소윤이도 이걸 알고 있었다. 서윤이한테 이유식을 무난히 먹이려면, 너무 배고프지도 않고 너무 배부르지도 않으면서 기분이 좋을 때를 포착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서윤이의 하루에 이런 순간은 그리 길지도, 많지도 않으니까. 서윤이가 아니어도 충분히 정신없고 여유가 없는 아내에게, 소윤이는 하루 종일 이유식은 언제 줄 거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서윤아. 엄마는 이유식 왜 안 해주시는 걸까”


소윤이가 서윤이에게 말하는 걸 듣고, 빈정이 상한 아내는 소파에서 졸다 벌떡 일어나 바로 이유식을 만들었다고 했다.


두 번째 빈정 상함의 순간. 저녁에 ‘단호박에그슬럿(아무리 들어도 이상한 이름)’을 해 주기로 했는데, 아내가 생각보다 피곤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힘들 정도로. 소윤이에게 양해를 구했다.


“소윤아.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오늘은 에그 슬럿 못 해 주겠다. 그거 내일 먹자”


소윤이는 바로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여기까지는 아내도 소윤이의 속상한 마음을 이해했다고 했다. 잘 타이르고 설득해서 넘어가려고 했는데 소윤이도 서운함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엄마가 해 준다고 했는데 갑자기 안 해 준다고 하니까 속상한 거에여. 너무 먹고 싶었단 말이에여”


물러서지 않는 소윤이에게 빈정이 상한 아내는 분노의 에그 슬럿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마디 내 뱉으며.


“기분 좋게 해 주는 거 아니야”


다들 고생이다. 조금만 힘내자,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여. 화요일 같은 수요일이 지났다.


* 궁금해서 '에그슬럿(egg slut)' 이 무슨 뜻인지 찾아 봤는데, 아내도 나도 깜짝 놀랐다. 도대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알고 나니 쓰기가 어렵구나. 가뜩이나 소윤이가 "에그는 무슨 뜻이에여? 슬럿은여?" 라고 물어봤다고 하던데. 아내와 나는 오늘부터 '단호박계란치즈찜'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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