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7(목)ㅇ
다행히 오늘도 소윤이는 멀쩡했다. 아침에는 아주 조금 미열이 있다고는 했는데, 지내는 것만 보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했다.
아내는 오늘 파주에 가겠다고 했다. 정확히는 파주에 가도 될지 나에게 물었는데, 아내에게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다. 소윤이가 아직 열이 조금 남아 있기는 했지만 사그라드는 모양새였고, 장모님도 애들(아내 포함)을 엄청 보고 싶어 하셨다. 아내도 숨 쉴 틈 없이 빡빡한 육아로 많이 지치기도 했고.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진 이후로는 우리 집으로는 오시지 못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한 번씩 가고 있다.
오후가 되자 아내는, 소윤이 열도 모두 떨어졌고 파주에 가는 길이라고 연락을 줬다. 일단 소윤이 열이 모두 떨어진 건 다행이었다.
파주에 갈 때마다 서윤이가 낯가림을 너무 심하게 해서 걱정이었는데, 오늘도 변함없었다. 아내가 보내준 사진 속 서윤이는 모두 우는 표정이었다. 불쌍하게 우는 것도 아니고,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있는 힘을 다해. 서윤이가 울지 않는 유일한 자세는, 서 있는 아내에게 안겨 있을 때라고 했다. 유독 파주에서 더 심하다.
아내는 퇴근하시는 장인어른도 보고, 애들 저녁을 먹여서 오겠다고 했다. 마침 나는 다른 날보다 퇴근이 조금 빨랐다(차가 덜 막혔다). 차에 쌓아둔 짐(쓰레기)을 정리했다. 낡은 카시트, 고장 난 킥보드 같은 걸 출퇴근할 때 쓰는 차에 옮겨 놓고 방치했다. 나 혼자 타는 차가 된 뒤로는 그야말로 운송 수단의 역할만 수행했다. 퇴근하고 잠깐 편의점에 들러 폐기물 스티커 사서 붙이고 버리면 되는데, 그걸 계속 미룬 거다. 집에 가면 뭐 좋은 게 있다고 그렇게 불나방처럼 뛰어드는지.
1시간 30분 정도 여유가 생겼다. 집안일도 없었다. 그냥 소파에 눌러 앉아서, 잠시 혼자 사는 자취생처럼 자유를 즐겼다.
서윤이는 파주에 있는 내내 울었다고 했다(설마 내내 울었겠어?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였다). 아내는 서윤이가 하도 울고, 안겨 있으려 하니까 친정 특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서윤이는 바닥에 누워 언니, 오빠, 아빠가 노는 걸 ‘웃으며’ 지켜봤다. 가끔은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몸을 파닥거리고 웃으며 옹알이도 건넸다.
“소윤아. 서윤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아. 그치?”
“맞아여”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예 양치까지 하고 왔기 때문에, 방에 들어가서 자기만 하면 됐다. 아내는 5분을 줬다.
“자, 5분 동안 아빠랑 시간 좀 보내고 들어가자. 알았지?”
실제로는 5분을 훌쩍(이라고 해 봐야, 15분 정도) 넘겼다. 둘 다 졸려 보였다. (아프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소윤이와 시윤이, 특히 열이 났던 소윤이의 건강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재우는 게 바람직하긴 했다.
수유를 끝내고 방에서 나온 아내가 얘기했다.
“서윤이 안 자네”
서윤이는 물론이고 소윤이랑 시윤이도 아직 잠들기 전이라고 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아내가 엄청 금방 나왔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서윤이는 곧바로 낑낑대기 시작했고, 이내 거친 울음으로 바뀌었다. 결국 서윤이는 거실로 나왔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걸 지켜봤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아내와 나는 저녁을 먹어야 했는데, 서윤이는 거실에 나오니 울음을 뚝 그쳤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덕분에 아내와 나는 자유롭고 편안하게 저녁을 먹었다. 서윤이의 ‘시계 바늘 쇼’(서윤이는 요즘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전진이나 후진은 못하고 시계 바늘처럼 도는 것만 가능하다)를 관람하면서.
딱 저녁을 다 먹었을 때쯤 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내가 안아주니 그쳤다. 아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뽀뽀를 하며 장난을 쳤더니 숨이 멎을 듯 크게 웃었다. 내가 받아서 똑같이 했는데 멀뚱히 나를 쳐다봤다. 얼른 다시 엄마 품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바로 울어버리겠다는 표정으로.
혹시나 소윤이와 시윤이가 거실에서 들리는 서윤이와 아내, 나의 웃음소리에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서윤이를 다시 눕히느라 들어가 보니 곤히 자고 있었다.
아내는 결국 수유를 한 번 더 했고, 서윤이는 그제서야 얌전히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