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9(토)
들어본 지 오래됐지만 꽹과리 소리와 비슷한, 그냥 무시하기에는 힘든 소리가 온 방을 휘감았다. 나는 물론이고 아마 소윤이와 시윤이도 깼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 새벽의 아내와 서윤이의 행보를 모르기 때문에, 아내가 바로 수유를 할 건지 아니면 그냥 좀 안아 줄 건지 봐야 했다. 수유를 하면 내가 나설 필요가 없고, 안아 준다고 하면 나서야 하니까. 아내는 서윤이를 안고 거실로 나가려고 했다.
“여보. 거실에 나가게?”
“어”
“수유하게?”
“아니. 좀 안아주려고. 수유한지 그렇게 오래 안 됐어”
“그럼 내가 안고 나갈게. 좀 더 자”
“아니야. 여보 자”
“얼른. 이리 줘”
서윤이를 받아서 안았다. 소윤이도 깨서 눈을 뜨고 있었다.
“소윤아. 더 자. 지금 너무 일찍이야”
“네”
난 이미 느꼈다. 소윤이의 눈이 너무 말똥말똥했다. 날도 너무 밝았고.
서윤이는 다소 불안정했다. 잘 노는 거 같다가도 갑자기 울고. 그러다 뜬금없이 또 웃고. 나랑 아주 풍성한 교감을 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울고. 사실 나도 엄청 졸려서 겨우 눈을 뜨고 있었다. 서윤이는 이제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자기랑 눈을 마주치는지 아닌지, 신경을 써서 자기랑 놀아주는지 아닌지를 조금은 안다.
나는 감기는 눈을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서윤이도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는지 조금 더 거세게 울 때쯤 방 안에서 소윤이와 시윤이의 소리가 들렸다. 뭔가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둘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더니 소윤이가 먼저 말했다.
“아니야, 시윤아. 아빠가 나오지 말라고 하셨어. 들어가자”
그러고는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둘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잠을 방해할 바에는 차라리 밖에 있는 게 나았다. 사실 나도 애들이 필요했다. 서윤이의 울음이 극으로 치닫기 전에 소윤이, 시윤이가 나와서 놀아주면 한참을 웃고 놀기도 하니까.
“소윤아, 시윤아”
“네?”
“이리 나와 봐”
소윤이와 시윤이를 거실로 불러냈다. 나의 기대대로 서윤이의 울음은 언니, 오빠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1시간 30분, 난 완전히 숙면은 아니어도 어쨌든 조금이라도 더 잤고, 서윤이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아니, 울려고 할 때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출동했다. 고마웠다.
그러고 나서 울 때는 굳이 안고 달래지 않았다. 배고플 시간이었다. 아내가 나와서 수유를 했다. 주말 아침이니 계란밥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샘솟았지만, 한편으로는 주말 아침이니 아빠의 음식을 먹이고 싶은 쓸데없는 열정이 생겼다. 아내가 카레를 제안하길래 바로 움직였다. 양파, 버섯, 카레 가루, 계란만 들어가는 간단한 카레였다. 다행히 모두 맛있게 먹어줬다.
소윤이, 시윤이가 거실과 작은방을 난장판을 만들어 놨지만 나무라지는 못했다. 내가 거실에 뻗어서 잔 것도, 서윤이가 울지 않은 것도 다 그 난장판 덕분이었으니까. 요즘은 또 부쩍 둘이 잘 논다. 여전히 티격태격 다투기도 많이 하지만 예전보다는 줄기도 했고, 시윤이가 좀 많이 컸다. 누나의 세밀한 세계를 조금 더 많이 이해하는 느낌이다.
점심시간쯤 밖에 나갔다. 주말이고 날씨가 좋아서 어디를 가든 사람이 많을 거 같아서 그냥 동네 산책을 택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킥보드를 타고 나갔다. 놀이터에 사람이 없길래 그네도 한참 타고, 점심을 대신해 핫도그와 찹쌀 도너츠도 사서 먹고, 한살림에도 들르고. 그렇게 가볍지만, 평일 밤보다는 길게 돌고 들어가려고 했다.
저녁으로는 아내 고모님이 주신 꽃게를 쪄서 먹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라면도 끓여서 먹고. 집에 라면이 없어서 라면을 사야 했다.
“아, 큰 마트 가고 싶다”
“갈까?”
“지금?”
“어. 안 되나?”
“사람 안 많을까?”
“마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차에 탔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좋아했다. 마트에 가는 게 워낙 오랜만이었으니까. 산 건 라면과 물, 소윤이와 시윤이의 빼빼로뿐이었다. 가성비 좋은 (지출은 물론이요 피로 누적의 측면에서도) 외출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애들 샤워를 해 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안 좋을 이유가 없기도 했지만, 그냥 뭔가 내내 유쾌했다. 아내랑 나도 어제의 피로가 무색할 만큼, 별로 힘들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힘들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바로 꽃게를 쪘다. 꽃게 요리는 밖에서도 사 먹어 본 적이 별로 없고, 집에서는 당연히 없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나도 썩 좋아하는 재료는 아니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어내는 결과물이 너무 적은 식재료였다. 그나마 서천에서 온 질 좋은 꽃게니까 기대를 안고 쪘다.
네 마리는 그냥 찌고, 두 마리는 라면에 넣었다. 게만으로는 애들 배를 채울 수 없으니까 먼저 국수를 삶아서 줬다. 소윤이가 거의 간을 하지 않은 비빔국수를 원해서 그렇게 줬다. 소윤이는 잘 먹고, 시윤이는 영 지지부진했다. 드디어 게가 다 익었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살을 발라줬다. 역시나 나와 아내의 노력에 비하면, 얻은 결과물이 너무 초라했다. 게다가 소윤이와 시윤이가 둘 다 엄청 잘 먹었다. 꽃게 특유의 바다 향이 강해서 어떨까 싶었는데, 발라주는 속도가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뭔가 번거롭고 뒤처리도 만만치 않아서 이번처럼 누가 주지 않으면, 굳이 사서 먹는 일은 또 없겠지만 어쨌든 애들은 엄청 좋아했다.
이미 샤워를 했으니 양치만 하고 자면 됐다. 꽃게 껍데기가 담긴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갈 때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나갔다. 원래 밤에도 잠깐 나갔다 올까 잠시 고민했는데, 서윤이가 너무 졸렸고 아내도 피곤했다. 그 아쉬움을 달래 주려고 같이 데리고 나갔다. 정말 쓰레기봉투만 버리고 들어오는 건 너무 순식간이라 괜히 놀이터 있는 곳까지 빙 돌아서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은 아빠가 같이 들어가서 재워줄게”
애들이 잠드는 데는 10분 정도 걸렸는데 그 사이에 나도 잠들 뻔했다. 역시, 느끼지는 못했어도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구나. 가랑비에 옷 젖는다더니.
손을 몇 번이나 박박 씻었는데 아직도 꽃게 냄새가 난다. 소윤아, 시윤아. 미안하다. 누가 주면 몰라도 사서 먹어지는 못할 거 같아. 꽃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