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0(주일)
지난밤과 새벽에 마치 꿈처럼,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아내가 서윤이 수유하는 모습, 소윤이랑 시윤이가 노래 부르는 모습, 소윤이랑 대화하는 모습, 시윤이가 나한테 와서 뭐라고 속삭이는 모습. 아마 다 꿈은 아니었을 거다.
그렇게 많은 장면을 보내고 나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한 9시쯤 됐을 줄 알았는데, 7시 30분이었다. 그럼 도대체 소윤이랑 시윤이는 몇 시에 일어난 걸까. 어제처럼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와 함께 거실로 나갔다. 역시나 어제처럼 서윤이를 언니, 오빠에게 맡기고 난 잠시 누웠다.
“아빠. 배고팠어여”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에게 가장 처음 한 말이었다. 서윤이 우는소리에 깼고, 서윤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배고픈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아침도 차려줘야 했고.
“소윤아, 아빠 서윤이 업고 해야겠다”
“아빠. 혼자 업을 수 있어여?”
“아니. 잘 모르는데. 엄마는 어떻게 하셔?”
“아, 엄마는 여기 소파에 한 발을 올린 다음 이렇게 서윤이를 안고 뒤로 돌려여”
“아 그래? 알았어. 그럼 소윤이랑 시윤이가 좀 도와줘”
나 혼자서는 업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혹시나 떨어져도 괜찮도록, 무릎을 꿇고 최대한 낮은 자세로 서윤이를 들고 돌렸다.
“소윤아, 시윤아. 어때? 가운데로 잘 왔어?”
“아니여. 아빠. 이쪽으로 좀 치우쳤어여”
“아 그래? 알았어. 자, 소윤이랑 시윤이도 좀 도와줘”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 등 뒤에 달라붙어서, 나름대로 진지하게 아빠를 도왔다. 덕분에 무사히 서윤이를 업었다.
밥이 없어서 밥부터 해야 했는데, 평소에 아내가 쓰는 쌀이 바닥이었다. 여분의 쌀이 또 있나 살펴보니 냉동실 안에, 지퍼백에 담긴 쌀이 있었다. 평범한 쌀 같았다. 그걸 꺼냈는데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그걸로 밥 하게여?”
“어. 왜?”
“그거 서윤이 이유식 할 때 쓰는 쌀인데?”
“그래?”
“네. 그거 찹쌀 아니에여?”
“찹쌀은 아닌 거 같아”
“엄마가 서윤이 이유식 할 때 그거 쓰시던데여”
“그래? 괜찮아”
솔직히 살림에 관해서는 소윤이가 나보다 많이 알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도 아내와 내가 모기 기피제를 찾다가 못 찾아서 그냥 나가려고 했는데, 소윤이가 어디 있는지 안다며 단박에 꺼내줬다. 나중에 아내한테 물어보니 그 쌀은 정말 서윤이 이유식 할 때 쓰는 유기농 쌀이었다.
서윤이는 등 뒤에서 곤히 잠들었다가 깼고, 아내도 애들이 아침을 막 먹기 시작했을 때 깨서 나왔다. 아침 먹고, 예배드리고 나니 또 금방 점심시간.
“점심은 뭐 먹이지?”
“그러게”
“저녁에는 뭐 먹이지?”
“그러게”
점심은 냉동실에 묵혀 뒀던 걸 잘 찾아내서 맛있게 먹었다. 저녁도 냉동실에 있는 고기나 생선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오후에는 잠시 파주에 가기로 했다. 원래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고구마를 가져다주실 겸 오시겠다고 했는데, 드라이브도 하고 바람도 쐴 겸 우리가 가겠다고 했다. 집에 가거나 같이 밥을 먹을 건 아니었고, 잠깐 물건만 주고받을 예정이었다. 상황을 봐서 잠깐 야외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도 있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확실하게 얘기하지는 않았다.
파주에 있는 공원에서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만났다. 커피를 한 잔씩 사서 잠깐 앉아 있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킥보드와 자전거를 꺼냈다. 날씨는 정말 더 이상 바라기 힘들 정도로 좋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전거와 킥보드는 처음에 딱 한 번 타고는 계속 돗자리에 같이 앉아 있었다. 사실 그렇게 앉아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바람이 계속 불기는 했다.
그래도 꽤 있었다. 1시간 넘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시간이었을 거다. 역시나 소윤이는 이제 정리하고 가자는 말에, 딱 10분만 할머니 집에서 놀고 가면 안 되냐고 물어봤다. 오늘은 안 된다고 했더니 또 특유의 슬픔을 끌어올렸다. 그래도 오늘은 아니었다. 미리 얘기해 주기도 했고, 내일은 월요일이니까. 소윤이도 막 울거나 그러지 않고 잘 이해했다.
“여보. 우리 그냥 가는 길에 뭐 포장해서 갈까?”
“그러자. 오늘 도저히 고기는 못 구워 먹겠다”
“그러니까”
그럴만한 여유와 체력이 이미 고갈되었다. 아내도 나도. 저녁 메뉴를 정할 때도 최대한 덜 번거로운 걸 찾았다. 아내와 나는 볶아서 주는 쭈꾸미, 애들은 돈까스.
서윤이는 집에 오는 내내 너무 울었다. 카시트가 싫은 건지, 배가 고픈 건지, 졸린 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엄청 울었다. 그렇게 울고도 목이 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그러고 보니 요즘 카시트에서 우는 게 잦았다. 집에서 놀 때도 자기가 가지고 놀던 걸 누군가 가지고 가면 울고. 그저 배가 고프면 우는 1차원 인생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느낌이다.
서윤이는 집에 도착해서 내가 안아주고 있었는데도 엄청 울었다. 차에서보다는 진정이 됐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고, 지치게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우렁찬(?) 울음이었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기고 나서 서윤이를 안았다. 뚝 그쳤다. 나에게 안겨 있을 때의 울음의 강도가 10 정도였다면 아내가 안고 나서는 2 정도로 뚝 떨어졌다. 아내는 수유를 했고, 서윤이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엄마가 최고고, 엄마 품에 안겨서 먹는 모유가 만병통치약이구나. 덕분에 저녁 먹는 동안에는 서윤이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방치했다.
주말의 끝자락이 되니, 마치 지난 금요일 밤만큼이나 피곤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 누워 두 녀석이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나도 잠시 눈을 붙였다. 붙이려고 붙인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알아서 붙었다. 드르럭. 몇 번이나 내 코 고는 소리에 각성한 덕분에 엄청 깊이 잠들지는 않았다.
요즘 아내와 나의 밤에 상수가 사라졌다. 어느새 상수가 되었던 서윤이가 조용히 변수가 되었다. ‘먹이면 잔다’는 공식이 희미해진 건 꽤 되었고.
“여보. 오늘 간만에 서윤이가 먹이니까 잔다”
아내는 오랜만에 예측한 대로 진행되는 서윤이의 행동을 기쁘게 전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안 됐을 때 상수 파괴자가 등장했다. 아기가 자고 있는 방에서 절대로 나서는 안 되는 크기의 문 여는 소리 아니 소음을 내며 시윤이가 거실로 나왔다.
“아빠. 이거여어”
시윤이는 웬 손수건을 하나 들고 나왔다. 자기가 누웠다가 그걸 발견했으니 가지고 가라는 의미였겠지. 곧바로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내도 나도 이골이 났는지 사실 별로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엄한 목소리로 시윤이를 울렸다. 뭐 훈육의 의미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그냥 시윤이가 우는 걸 보고 싶었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애들 우는 게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울면 아기 같아서.
오빠 때문에 잠에서 깬 서윤이는 결국 다시 거실로 나왔다. 아내한테 안겨서 나왔는데 날 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환하게 웃으며 내가 안았는데 서윤이는 바로 정색 아니 정색을 넘어서 울상을 지었다. 바로 울음을 터뜨렸고. 다시 아내에게 건네니 뚝 그쳤다. 와, 이 녀석 보소. 신기한 노릇일세. 하루가 다르게 점점 강화되고 있다.
엄마 = 유일한 안식처
의 공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