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빨래를 건드리지 마오

20.09.21(월)

by 어깨아빠

새로운 한 주의 시작. 같이 일하는 과장님은 ‘잘 쉬었냐’고 묻고는 곧바로 ‘하긴 제대로 못 쉬었겠지’라며 동질감을 표현하셨다(과장님도 애가 둘인 엄마다).


“애들하고 노는 게 쉬는 거죠 뭐”


진심이다. 월요일 아침이면 유독 휴대폰 속 사진을 들여다본다. 지난 주말의 추억을 곱씹으며. 아내가 새로운 사진을 공유했다는 알림이 뜨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확인하고.


아내는 ‘조금 자고 깨서 많이 운다’는 표현으로, 서윤이가 어떤지를 한마디로 설명했다. 어제 아기띠를 차에 놓고 와서 업지도 못하니, 더 힘든 모양이었다. 형님(아내 오빠)이 옥수수 주러 잠깐 들렀을 때 아내가 차에 갔다 오려고 애들을 맡기고 나갔는데, 문을 닫자마자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고 했다. 아내랑 내가 집에서 몇 번을 실험해 봤는데, 이제 엄마가 사라지면 우는 건 확실하다. 아기띠 가지고 와서 업어줬는데도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꼭 마음이 상한 것처럼.


퇴근하기 한 시간 전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의 목소리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못 들었지만,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지치고 화난 상태였다. 요즘 들은 목소리 중 가장 정상 궤도와 먼 목소리였다. 목소리만 들어도 찔릴 것 같았다.


‘오늘은 일단 어디라도 나갔다 오라고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한 30분쯤 뒤에 아내가 사진을 보냈다. 평소와 다름없이 밝고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요거트를 먹는 소윤이와 시윤이 사진이었다.


“사과하고 화해함”


사과와 화해. 이 두 행위에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하는 엄마의 애환이 담겨 있다. 30년 가까이 차이 나는 자녀에게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길래 사과를 하며, 부모 자식 간에 무슨 화해일까 싶지만 생각보다 그럴 일이 많다. 낳았으니 부모지 되어서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늘 부족하기 마련이고, 아무리 사랑으로 뒤덮인 관계여도 결국 인간 대 인간이기 때문에 갈등은 늘 존재한다. 아내는 누구에게도 토로하지 못하는 혼자만의 감정의 굴곡을 넘고 넘은 거다. 사과와 화해를 미루지 않는 건 애들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더 필요하다. 애들도 사람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평화의 바람이 가득했다. 아내는 오랜만에 서윤이를 업지 않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달려와서 인사를 했고 서윤이는 아빠가 온 것도 모르고, 거실 바닥에 엎드려 무언가에 심취해 만지며 빨고 있었다.


짧더라도 한 명, 한 명에게 차분히 집중해서 인사를 나누고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잘 안됐다. 달려드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몸으로 받아내면서 소윤이하고 인사했다가 시윤이하고 인사했다가 저 멀리 있는 서윤이도 불렀다가. 이때 소윤이와 시윤이는 동시다발적으로 각자의 말을 쏟아낸다.


나를 등지고 있던 서윤이가 방향을 돌려 나를 발견하더니, 몸을 팔딱거리면서 엄청 환하게 웃었다. 분명히 ‘나’를 알아본 거다. 아빠의 등장을.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 허벅다리와 배를 붙잡고 매달렸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서윤이한테도 인사 좀 할게. 잠깐만”


겨우 서윤이를 안고 인사를 나눴다. 다시 서윤이를 바닥에 내려 놓고 나서는 소윤이, 시윤이를 받아줬다. 대신 서윤이 근처에서 서윤이도 볼 수 있게.


저녁을 먹고 나서 아내에게 슬쩍 얘기했다.


“여보. 오늘 나가”


사실 요즘 같은 시국에 어디 갈 데도 마땅치 않은 데다가 어쨌든 서윤이 마지막 수유도 하고 나가야 하니, 제대로 자유를 누리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아주 잠깐의 외출에 가깝다. 그래도 잠시나마 육아의 흔적이 전혀 없는 공기라도 맡고 오는 데 의미를 두면, 나름 필요한 시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아내의 외출을 굳이 알리지 않았다. 어차피 애들 자러 들어갈 때 아내도 들어가서 수유를 해야 하니까.


오늘따라 서윤이가 수유를 하면서도 많이 울었다. 평소보다 수유 시간이 좀 길어졌고 아내도 그만큼 늦게 나왔다. 아내는 꽤 늦은 시간에 나갔다. 예전에 한창 자유 부인이 되고 그럴 때는 7시 땡 하면 나가고 그랬는데. 나간 지 한 10분쯤 뒤에 전화가 왔다.


“여보. 그런데 나 진짜 어디 가지? 갈 데가 없네”

“그냥 마노아라도 갔다 와”

“마노아? 그럴까?”

“응. 바람이라도 좀 쐬고 와”


워낙 늦은 시간에 나갔으니 갈 데도, 할 것도 마땅히 없었을 거다.


거실 소파에 빨래 산이 쌓여 있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말하면 뭇 아내들이 분노할지도 모르지만, 아내와 나 사이의 어떤 관습이랄까. 마른 빨래를 개는 건 내가 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내가 한 번도 뭐라고 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나도 매번 그대로 두지는 않는다. 오히려 갤 때가 더 많은 것도 같고)이지만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빨래가 개어져 있는 걸 보면 아내의 기분이 더 좋아질 거 같았다.


소파 앞바닥에 앉아 빨래 산을 허물기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보통 일이 아니었다. 평소에 비하면 양이 너무 많았다. 특히 우리 집에서 제일 작은 몸뚱아리를 가진 서윤이 옷과 손수건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놈의 손수건은 개도 개도 끝이 없었다. 보통 이렇게 많은 적은 없었다. 그걸 좀 빨리 알아차렸으면 아예 초장에 그만뒀을 텐데, ‘너무 많다’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너무 멀리 와 버린 뒤였다. 아마, 이렇게 많은 줄 알았으면 아예 손을 안 댔을지도 모르겠다. 재벌가의 2세가 흥청망청 돈을 쓰는 것처럼, 서윤이 손수건을 과소비했던 지난날을 후회했다.


소윤이 옷을 갤 때는 ‘이게 소윤이 옷이 맞나?’ 하는 생각, 시윤이 옷을 갤 때는 ‘이게 시윤이 옷이 맞나?’ 하는 생각, 서윤이 옷을 갤 때는 그냥 히죽히죽, 아내 옷을 갤 때는 ‘아니 뭔 옷이 이렇게 흐물딱 거리지’ 하는 생각, 내 옷을 갤 때는 ‘살 빼야 되는데’ 하는 생각. 서윤이 생각을 제일 많이 했다. 편애하는 게 아니라, 서윤이 옷이 월등하게 많아서 그랬다.


다 개고 나니, 보고 기뻐할 아내 생각에 보람차기는 했지만, 다음부터는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적군 아니 빨래의 양을 신중하게 가늠하겠다고 다짐했다.


손수건은 아껴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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