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07(수)
알람이 울리는 휴대폰을 시윤이가 가져다주며 날 깨웠다.
"압빠아, 압빠아"
아내랑 소윤이는 자고 시윤이만 날 따라 나왔다. 출근 준비하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눈웃음과 애교를 발사했다. 준비를 다 마치고 나갈 때가 다 되었는데도 아내랑 소윤이는 깨지 않았다.
"시윤아. 아빠 이제 출근해야 돼"
"읏냥. 읏냥"
"이리 와. 뽀뽀도 해야지"
뽀뽀하고 나서
"시윤아. 이제 엄마한테 가.
아빠는 출근할 게. 안녕"
"읏냥"
시윤이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여보"
"여보. 미안. 못 일어났네"
"괜찮아. 시윤이가 배웅해줬잖아"
"시윤이가? 시윤이는 일어나 있었어?"
"어. 나랑 같이 깼어"
"아? 그래? 그럼 여보 나가고 다시 방에 들어왔나 보네?"
"그런가 봐. 내가 엄마한테 가라고 했더니"
소윤이는 놀랍게도 무려 9시까지 잤다. 혹시 어디가 아픈가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다. 소윤이가 9시까지 잔 건 어느 시점 이후로는 공룡 화석 발견되는 것만큼 드물고 기이한 일이다. 아내는 목장모임이 있어서 오전부터 차를 가지고 움직였다. 나중에 퇴근하고 들었는데 목장 모임 마치고는 여의도에 있는 유명한 빵집에 다녀왔다고 했다. 수요미식회인가 어딘가 나온 유명한 빵집이라는데 다른 목적 하나도 없이 순전히 빵 사러 애 둘을 데리고 여의도까지 다녀왔다는 아내를 보며 치킨을 향한 나의 열정 못지않은 뜨거운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사 온 빵이 맛있기는 했다. 퇴근했더니 소윤이가 가장 먼저 달려와서 안기며 말했다.
"내가 아빠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속도 경쟁에서 뒤처진 시윤이도 두 팔을 벌리며 나에게 오길래 소윤이를 내려놓고 안아주려고 했는데 소윤이가 제지했다.
"안 돼. 안 돼. 내려놓지 마"
"소윤아. 그럼 시윤이가 속상하지 않을까"
"그래도. 싫어"
"알았어. 그럼 둘이 동시에 안아줄 게"
한 팔로는 소윤이, 나머지 한 팔로는 시윤이를 안고 분배의 육아를 시작했다. 몸을 타고 노는 소윤이와 똑같이 해달라고 하는 시윤이, 동생과 나누지 않고 혼자 독점하고 싶은 소윤이 사이에서 누구도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요령껏 놀아주려고 애를 많이 썼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결국 시윤이가 좀 불쌍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나마 시윤이가 누나가 있어도 막 들이대거나 하지는 않고 지켜보다가 누나가 자리를 비우거나 틈이 보이면 잽싸게 치고 들어오는 성향이라 대충돌은 피할 수 있었다.
글로 장황하게 써 놓으니 시간상으로도 긴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길지는 않다. 기껏해야 뭐 1시간 남짓한 시간이다. 거기에 밥도 먹고 씻기기도 하고 그러면 정작 노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오늘은 축구도 하러 가야 해서 씻기는 것까지만 함께 하고 그 뒤는 모두 아내에게 떠넘기고 나왔다. 3시간 정도 축구를 하고 돌아오니 아내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여보. 난 망부석처럼 여기 앉아 있었어"
"그러게. 그런 거 같아. 집이"
수다도 떨고 각자 할 일도 하고 그렇게 있는데 갑자기 덜커덕하고 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윤이 깼나 보다"
"그러게"
당연히 소윤이가 걸어 나올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시윤이가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음마, 음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내에게 안겼다. 아내와 나는 순간 당황과 황당 사이에서 헤매느라 웃음만 지었다. 아마 오늘을 계기로 이제 시윤이도 잠에서 깨면 밖으로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내에게 안겨 있는 시윤이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아빠한테 올래? 아빠 안아?"
라고 하며 팔을 뻗었더니 의외로 나한테 와서 안겼다. 잠깐도 아니고 마치 안겨서 잘 기세로 축 늘어졌다. 물론 그럴 수는 없으니 아내가 다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시윤아. 아빠 안녕해야지"
"읏냥. 읏냥"
소윤이도 이 맘 때는 그랬나. 두 번째인데도 왜 이렇게 신기하고 웃음이 막 나오는지. 보고 있으면 그냥 잡생각이 사라진다. 요즘은 아내에게 미리 내일 일정을 물어보곤 한다.
"내일은 별 일 없어?"
목장 모임이나 홈스쿨 혹은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면 자기 전에 알람을 좀 더 촘촘히 맞춘다. 별 일이 없다고 해도 알람을 맞추고 자기는 하지만 마음 저 멀리 아주 작은 한 구석에는 이런 마음을 품게 된다.
'혹시 늦게 일어나면 차 쓸 수는 있겠네'
내일도 별 일은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알람을 여러 개 맞췄다.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차 없이 출근하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