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과 후회, 그리고 사과

18.11.08(목)

by 어깨아빠

아내, 소윤이, 시윤이 모두 자고 있었다. 조용히 일어나 출근하려고 준비를 거의 다 했는데 소윤이가 깼다.


"아빠. 어디 가여?"

"아빠 회사 가지"

"회사? 왜 회사를 두 번 가여?"

"응? 지금 아침인데 소윤아?"

"아. 맞다"


막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아내와 시윤이도 잠에서 깼다. 급히 인사를 나누고 출근했다. 오랜만에 별 일 없었던 아내는 집에서 애들이랑 치열하게 보내다가 시윤이 낮잠 재우기에 1시간을 투자했으나 결국 실패함으로 인해 큰 고비를 겪었다고 했다.


"큰 위기가 있었지"


라고 간단히 표현했지만 태백산맥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감정의 굴곡과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고된 시간이었을 거다. 1시간 동안 소윤이는 뭘 했냐고 물었더니 소윤이도 중간에 문 두드리고 그럼 또 시윤이 깨고 그러는 악순환을 반복했다고 했다. 시윤이 재우기를 실패, 혹은 포기한 아내는 오후에 505호 사모님을 만나 함께 스타필드에 갔다. 시윤이는 거기서 잠들었다. 아내가 전화를 했다.


"여보. 시윤이는 이제 자"

"아. 진짜?"

"여보. 오늘 준비됐지?"

"뭐가?"

"시윤이랑 늦게까지 놀 준비"

"아니. 안 됐는데?"


말은 그렇게 했어도 마음속으로는 각오를 다졌다. 어제 아내에게 이런 얘기도 했었다.


"아. 요즘 애들이랑 놀 시간이 없네"

"왜?"

"아니. 차 안 가지고 다니니까 집에 오면 금방 애들 잘 시간이고 그러니까"

"왜? 애들이랑 놀고 싶어"

"그냥. 아쉽긴 하지"


'그래, 소윤이야 먼저 잘 테고 시윤이만이라도 재밌게 놀아줘야지'


라고 마음을 먹었다. 퇴근할 때쯤 아내는 하나로 마트에 있다며 삼송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삼송역에 거의 다 왔을 때 다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이제 조금 있으면 삼송역"

"그래? 그럼 여보 여기로 올래? 막상 장 보니까 너무 재밌네"

"그래. 내가 거기로 갈 게"


삼송역에서 내렸는데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세찬 비바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상용으로 가방에 넣어 다니던 자그마한 우산을 폈는데 강한 바람에 휘청휘청했다. 이 큰 몸뚱아리를 지켜 주기에는 너무 작고 역부족이었다. 한 10분 정도 우산을 쓰나 마나 한 정도의 강한 비바람을 뚫고 하나로 마트에 도달했다. 날 발견한 소윤이와 시윤이가 동시에 나에게 안기겠다며 팔을 뻗었다.


시윤아, 미안하다.


어쩔 수 없이 소윤이부터 안아줬다. 아내가 끌던 카트에 앉아있던 시윤이는 누나를 안아주는 날 향해 몸을 일으키며 자기도 안아달라고 성화였다. 곤란하기는 해도 기분은 좋다. 아빠가 와도 본체만체하면 그보다 슬픈 일이 어딨을까.


"소윤아. 시윤이도 한 번 안아줄게"


소윤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윤이도 안아줬다. 아내는 우리(아내와 나)의 저녁으로 순대, 떡볶이를 제안했다. 마감 할인해서 엄청 싸게 팔고 있었다


"애들은? 여기서 안 먹일 거야?"

"그러게. 여기서 먹이고 갈까?"


그리하여 애들은 2층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이고 가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순대 소윤이와 시윤이는 우동이 포함된 돈까스 정식. 요즘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되는지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고 자꾸 돌아다니려 하는 시윤이를 앉혀 놓느라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식사를 마쳤다. 소윤이는 이제 일어나려고 하지는 않지만 밖에서든 안에서든 밍기적 거리는 식사 태도 때문에 열불이 오를 때가 많다. 오늘도 그랬다. 그래도 하루 종일 아빠를 기다렸을 소윤이의 애틋한 마음을 생각하며 최대한 부드럽고 인격적으로 대응했다. 밥을 다 먹이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소윤이. 겉에 옷은 벗길까?"


이 말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아내는 기대하고 있는 거다. 혹시 가다가 잠들지도 모르니 취침 복장으로, 편하게 입혀서 차에 태울까? 라는 속 뜻이 있는 거다.


"여보. 그럴 리 없어. 기대하지 마"


하나로마트에서 우리 집까지는 신호 잘 받으면 10분 안에도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날로 체력이 강해지는 소윤이가 잘 리 없다고 확신했다. 당연히 소윤이도 시윤이도 잠들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 잘 준비를 하고 방에 들어갔는데 소윤이한테 한바탕 화를 내고 말았다. 자려고 준비할 때부터 말을 안 듣고 뺀질뺀질 거리는 소윤이를 참지 못하고 분출해버렸다. 덕분에 소윤이는 자기 전에 닭똥 같은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렸다. 아내에게 어제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요즘 애들이랑 보내는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워"


역시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소윤이가 잠들기 전에 나름대로 사과도 하고 소윤이도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도 했지만 영 찜찜했다. 팩트는 이거다.


[오늘도 참지 못한 아빠였다]


요즘은 소윤이가 부쩍 나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에도 그 새를 못 참고 그렇게 쏘아대다니. 자책의 마음이 가득했다. 어쩔 수 없나 보다. 소윤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문득문득 소윤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커다란 벽이 생길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소윤아, 아빠한테 잘해 줘. 아빠의 본심은 그게 아니야. (아무래도 소윤이는 이 일기를 사춘기 전에 읽을 테니 나의 심경을 낱낱이 밝혀 놔야지)


두 녀석을 모두 재우고 아내는 운동을 보냈다. 아내는 이번 주에 한 번도 헬스를 못, 아니 안 했다. 아내가 운동하러 간 사이 나도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하려고 했으나 역시 집에서는 공부든 운동이든 제대로 되지를 않는다. 딴짓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늘도 마지막 장면은 잠에서 깨 아내를 찾는 소윤이에게 끌려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


나머지 할 일을 마치고 느지막이 방으로 들어가 누우면서 생각했다. 일어나면 소윤이한테 오늘 자기 전 사자후를 내뿜은 걸 사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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