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마무리는 밤 산책으로

20.09.27(주일)

by 어깨아빠

아침에 일어나는데 정신을 못 차렸다. 어제 엄청 늦게 잔 것도 아니고 오늘 엄청 일찍 일어난 것도 아닌데 엄청 졸렸다. 아마 새벽에 잠을 설쳤기 때문일 거다. 이제 내가 인지하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최소 한 번은 자다 깨니까.


오후에는 오랜만에 애들을 데리고 축구장을 갔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날씨도 워낙 좋기도 했고, 내가 애들 데리고 가면 아내도 좀 쉬니까 가기로 했다. 애들도 엄청 나가고 싶어 했고. (가장 강렬했던 나의 열망은 좀 숨겨 볼까)


방방 뛰며 옷을 갈아입은 아이들을 데리고 막 집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나도 갈까?”

“여보도? 거기 여보랑 서윤이가 있기에는 별로 좋지가 않은데”

“나는 그냥 여보랑 애들 데려다주고 서윤이랑 어디 갈까”

“그래도 되고”


아내는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함께 집에서 나왔다. 가만히 집에 앉아 있기가 힘든 하늘과 구름이었다. 아내는 우리를 내려 주고도 한참 주차장에 머물렀다.


“여보. 왜 안 가?”

“갈 곳을 못 정했어. 어디 가지?”


하긴. 혼자였으면 몰라도 젖먹이 딸을 데리고 가 봐야 어디를 가겠나. 예전처럼 여기저기 아무 데나 막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 없고, 막혀 있지 않은 그 어딘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데. 아내는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일단 축구장을 떠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별로 할 것도 없는 축구장에서 바닥에 깔린 잔디 충진재를 모래처럼 가지고 놀았다.


“소윤아, 시윤아. 그래도 집에 있는 것보다 좋아?”

“네”

“왜? 심심하지 않아?”

“그래도 아빠랑 놀러 나오니까 좋져”

“더두 도아여어”


참 신기한 게 뭘 하고 놀까 궁금했는데, 어떻게든 찾아냈다. 주변의 지형, 지물을 이용해서. 기특하다. 영상의 시대에 영상 없이 시간을 보내는 법을 터득해 가고 있는 게. 어쩌면 나나 아내보다 나은 지도 모르겠다.


두 시간이었다. 아내는 두 시간을 채 못 채우고 돌아왔다.


“여보. 빨리 왔네?”

“왜 빨리 왔겠어?”


서윤이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호기롭게 커피를 한 잔 시켰지만 5분도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났고, 서윤이는 계속 소소하게 칭얼댔다고 했다. 사실 아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 아니 못 했던 거 같다. 서윤이를 데리고 다니면 평화로워도 불안하다. 평화가 언제 깨질지 모르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주 만족스러운 두 시간을 보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신났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집에 와서 저녁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내의 제안으로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대거 이용해 버섯전골을 만들었는데, 모두 맛있게 먹었다.


“아빠. 오늘도 밤 산책 가면 안 돼여?”

“오늘? 글쎄. 엄마가 너무 피곤하시지 않을까”

“그럼 엄마한테 물어보고 된다고 하면여?”

“그럼 되지”


“엄마. 우리 오늘도 밤 산책 나가면 안 돼여?”

“오늘? 엄마가 오늘은 너무 피곤한데”

“히잉. 오늘도 나가고 싶은데”

“오늘은 좀 힘들 거 같아”


잠시 후 아내가 시간을 물어보더니 다시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그럼 우리 오늘 아주 잠깐만 나갔다 올까?”

“진짜여? 좋아여”

“대신 뭐 놀고 그러지 못하고 진짜 딱 산책 한 바퀴만”

“좋아여 좋아여”


낮에 나가자고 했을 때처럼 또 방방 뛰며 옷을 갈아입었다. 이때 서윤이는 엄청 울고 있었다. 안아서 겨우 재우고 방에 눕혔는데 바로 깨고, 다시 안았는데 계속 울고. 결국 한참 아기띠를 하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체력을 너무 많이 썼다.


나가는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별것 아닌 소윤이와 시윤이의 말과 행동에 달아오를 뻔했다. 순전히 나의 체력 고갈에서 비롯된 거였다. 그렇게 애를 써서 재운 서윤이는 나가서 유모차에 눕히자마자 울며 깼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깬 서윤이는 아내가 안았다. 어제처럼 날씨가 모든 걸 녹였다. 몇 분 걸으며 바람을 맞으니 금세 기분이 좋아지고 고갈됐던 체력이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뛰어다녔다. 잠시도 걷지 않고 계속. 그걸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적 치유가 일어났다.


“여보. 소윤이 바이킹 태워줄까?”

“그럴까?”

“소윤아. 바이킹 탈래?”

“진짜여? 좋아여”


오랜만에 타는 바이킹에 소윤이는 잔뜩 신이 났다.


“시윤이는? 안 타?”

“네”

“시윤이도 이제 한 번 타 봐. 누나랑 옆에 같이 타면 괜찮을 텐데”

“시더여. 무더워여어”


이미 이쪽저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바이킹을 보며 시윤이가 말했다.


“아빠아. 보기만 해두 무더워여어”


바이킹이 멈추고 먼저 탔던 아이들이 내렸다. 소윤이는 맨 끝자리 바로 앞 줄에 앉았다. 엄청 기대하는 표정으로. 그걸 지켜보던 시윤이가 갑자기 외쳤다.


“누나아. 나두 탈래에에”


짧은 시간, 나름 괴로운 고민을 했던 거 같다. 타 보고 싶기는 한데 무서울 거 같고. 아예 모르면 모를까 타 보기도 했고, 그때 무서웠으니까. 그러다 충동적으로 누나를 따라 들어간 거다. 아저씨가 벨트를 채워주고 잠시 대기하는 동안 시윤이 얼굴에 긴장한 티가 가득했다.


“여보. 괜찮을까. 시윤이 울 거 같은데”

“그러게. 엄청 우는 거 아니야?”


너무 울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적당히 우는 건 나름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 교차했다. 바이킹이 서서히 움직였고 시윤이는 잔뜩 몸을 웅크렸다. 나도 타 봤지만 작다고 무시할 난이도는 아니다. 꽤 긴장감이 있다. 그러니 시윤이에게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니나 다를까 초반에는 거의 울다시피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시윤아! 누나 손 꼭 잡아! 그리고 하늘을 봐. 밑에 보지 말고!”


몇 번 왔다 갔다 하고 나서는 적응이 좀 됐는지 우는 표정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즐기거나 웃는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여전히 두려움과 긴장이 가득했다. 약간 고학년 아이들도 함께 탔는데, 걔네가 아저씨를 도발했다.


“아저씨. 너무 낮아요. 더 태워주세요. 하나도 안 무서워요”


아저씨는 그 장난에 호응하며 원래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더 태워주셨다. 시윤이에게는 달갑지 않았을 거다. 소윤이는 좋았을 거고.


“시윤아. 어땠어? 무서웠어?”

“아니여어. 터음에는 도금 무더웠는데 나둥에는 괜다났더여엉”

“그랬어? 다음에 또 탈 거야?”

“아니여어”


아내도 나도 피곤하긴 했지만 즐거운 밤 산책이었다. 서윤이도 아내에게 안겨서 울지 않고 두리번거리며 잘 있었다.


애들은 나가기 전에 양치까지 다 하고 나갔기 때문에, 돌아와서는 손만 씻고 누웠다. 아내도 서윤이를 데리고 함께 들어갔다. 조용하던 방에서 갑자기 엄청 우는소리가 들렸다. 수유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유가 끝난지도 모르게, 조용히 잠들던 서윤이가 요즘은 자꾸 운다. 매서운 울음소리가 한참 들렸다.


“여보. 괜찮아?”

“서윤이가 혼자 안 자려고 하네. 결국 다시 수유하고 있어”


아내는 시간을 꽤 쓰고 방에서 나왔다. 안타깝게도 그 시간이 허망하게, 서윤이는 금세 또 울었다. 매섭기가 아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다시 들어가야 할지 말지 고민하던 아내를 편의점으로 보내고 대신 내가 방에 들어갔다(갑자기 웬 편의점이냐면, 오늘 하루 고생한 아내와 나의 보상을 위해). 서윤이를 안았는데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치지 않은 건 그렇다 쳐도 오히려 강도가 더 세졌다. 계속 안아준다고 해도 진전이 없을 듯했다. 혹시나 해서 눕혀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악을 쓰며 울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서윤이가 막 울다가도 한 번씩 손을 빨며 조용해지기도 했다. 물론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고, 바로 다시 울었지만.


그냥 그렇게 눕혀두고 나왔다. 소윤이 어렸을 때는 이렇게도 많이 했다. 소위 말해 ‘손 타는 아기’의 길을 피하기 위해. 서윤이는 그럴 만한 여건(언니, 오빠와의 동침)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뭐 안아서 재우면 어떠하리’의 마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안아도 우는’ 건 계산에 없는 일이었다. ‘손 안 타는 아이’로 키우려는 게 아니라, 그냥 안아줘도 우니까 방법이 없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서윤이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들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윤아, 니가 자초한 일이야. 한 20분 그렇게 울더니 점점 울음과 고요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결국 잠들었다.


“아, 서윤이 그렇게 울려서 재웠더니 엄청 불쌍하네. 계속 신경 쓰이네”

“그래? 나는 전혀 아닌데”


서윤아, 미안. 그러니까 적당히 울어. 출구 전략은 가지고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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