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하루

20.09.28(월)

by 어깨아빠

오랜만에 소윤이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다(아, 나는 회사에 있었고 아내가). 요즘, 그러니까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비염 증세가 나타나더니, 지난주쯤부터는 하루 종일 콧물을 흘리고 아침, 저녁으로는 기침도 많이 했다. 비염은 딱히 해결책도 없고, 병원에 가도 항상 비슷한 처방이라 굳이 가지 않았는데, 소윤이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콧물을 잠재우는 약이라도 좀 먹여야 할 거 같았다.


비염인 건 맞았다. 다만 지난번 (그게 언제인지도 모르겠지만)에 왔을 때보다 코가 훨씬 더 많이 부어 있다고 했다. 역시나 원인은 따로 없고 환절기로 인한 기온 변화가 가장 유력하다고 했다. 추우려면 일관되게 춥고, 더우려면 일관되게 더워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했다. 나랑 똑같다. 어쩜 이런 것까지 다 물려받았을까. 좀 가려서 가지고 가지. 아니, 내가 준 건가. 아무튼 불쌍하다. 비염이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아니까 더.


시윤이는 지난번에 열이 난 후로, 계속 손가락을 빨지 않고 있다. 그게 자기 나름대로는 엄청 힘든 일인가 보다. 낮에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엄마. 더는 머이카악이 보이먼 꼭 빨고 시퍼여어. 그디고 엄마 아빠가 더 돈 못 빨게 하는 것도 너무 힘드더여어"

손가락 빠는 게 뭐라고. 이렇게 불쌍하게 얘기하나. 주운 머리카락으로 코를 간지럽히면서 손가락을 빠는 그 느낌이 잊히지가 않나 보다. 손은 빨지 말고 코만 간지럽히라고 했더니, 그건 또 성에 안 차는 듯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꼭 어른의 중독 증세 같다(너무 심한 비유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내면의 욕망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습관을 고치고 있는 시윤이가 기특하다.


점점 배밀이 반경을 넓히고 있는 시윤이는, 내가 퇴근해서 문을 열고 눈을 마주치자 엄청 환하게 웃으며 배만 대고 엎드린 채 팔 다리를 떨었다.


"와, 대박. 여보. 쟤 진짜 여보 알아보네. 엄청 좋아하네"

"그치?"

코로나 때문에 당장 안아주지 못하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하루 종일 먼지도 많이 맞고, 땀도 많이 흘려서 아예 샤워를 했다.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소윤이와 시윤이도

"아빠. 우리랑 놀자여"

라며 매달렸다. 말은 못 하지만 표정과 몸짓으로 뜨겁게 반응하는 서윤이도 안고 싶고, 아빠의 퇴근을 오매불망 기다렸을 소윤이와 시윤이도 서운하게 하고 싶지 않고. 짧은 순간,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소윤이가 먼저 제안했다.

"아빠. 그럼 서윤이를 안고도 할 수 있는 묵찌빠를 하자여"

"오, 그래 좋아"

시윤이는 숨바꼭질이 하고 싶다며 아주 잠시 입을 삐죽거렸지만, 서윤이랑 하기에도 힘들 뿐 아니라 저녁 준비가 거의 끝났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려줬다. 사실 시윤이는 묵찌빠를 잘 못하기 때문에 누나처럼 재미를 느끼지는 못할 거다. 일부러 져주고, 풍성한 반응을 해주는 것으로 시윤이가 아쉬워할 틈을 주지 않았다.


내 무릎에 앉아 언니, 오빠, 아빠의 묵찌빠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서윤이는, 기분이 괜찮았는지 밥 먹을 때도 잘 누워 있..을 줄 알았는데, 내 밥그릇에 밥이 3분의 1쯤 남았을 때부터 울기 시작했다. 점점 크게, 점점 세게, 점점 강하게. 빨아들이듯 남은 밥을 먹고 서윤이를 안았다. 이번 주 들어 부쩍 내가 안아도 쉽게 잠잠해지지 않는다. 점점 엄마만 찾는 느낌이 진하다.

엄마만 찾을 거면, 엄마가 안아주거나 재워주면 곧장 자면 되는데 그건 또 아니다. 아내는 오늘도 수유하고 재우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마지막 수유(이길 바라지만 요즘은 아닌 경우가 많은)를 마치고 나서도 우는 서윤이를 달래 보지만 뭐가 못마땅한지 계속 크게 운다.

"맙소사. 서서 안아야만 안 울어"


방에 있는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을 안고 달래고 눕혀서 토닥이고 하다가 겨우 재웠다. 새벽에도 두 번씩 깨고, 첫 잠잘 때도 오래 걸리고. 서윤이 너도 점점 양심이 없는 아기가 되어 가는 거니.


아내의 '이른 육아 퇴근'이라는 꿈은 조각조각 부서졌다. 아내는 늦은 육아 퇴근 후에도 다 된 빨래 분류하기, 마른 빨래 개기 등의 작업을 이어갔다. 육아 퇴근일 뿐 완전 퇴근은 아닌 셈이다. 한참 동안 빨래 잔업을 하고 일어서서 화장실에 갔는데, 안방에서 서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저 강서윤 녀석이 진짜'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비보를 전했다.

"여보. 서윤이 우네"

"헐. 진짜?"

기상 - 아이 셋 홀로 육아 - 남편 퇴근 - 막내 재우기 (오래오래오래) - 빨래 분류 및 개기 (오래오래오래) - 강서윤 기상 - 재수유 및 취침


아내의 오늘 하루. 서윤이가 깨서 울었을 때 아내도 깨져서 울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내는 처연히 받아들였다. 이때도 서윤이는 수유하고 바로 잠들지 않았고 결국 아내는 서윤이 옆에 누워서 서윤이를 토닥이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여보, 오늘 하루도 엄마로 사느라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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