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탑의 배신

20.09.29(화)

by 어깨아빠

그게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새벽에도 여지없이 깼다. 내가 한 번 깼으면 아내는 두 번 깼을 거고, 내가 두 번 깼으면 아내는 세 번 깼을 거다. 진짜 알람이 울릴 때를 대비해서, 자면서도 항상 신경을 쓴다. 휴대폰이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소리가 나면 바로 끌 수 있게. 이럴 거면 따로 자는 게 낫지 않나 싶겠지만, 그건 또 싫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싫다. 아내랑 둘로 시작한 이래로, 식구가 늘어도 그래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익숙하지 않아서 반갑지 않다.

오늘도 도둑고양이가 되어 조심조심 방에서 빠져나왔다. 연휴 전 마지막 출근이니 조금 더 잘까 하고 누워 있었는데 잠이 안 와서 바로 일어나서 나왔다. 조금 늦게 나오기도 했고, 옷 찾느라 시간을 좀 보내기도 해서 뭘 할 시간도 없이 바로 집에서 나갈 시간이 됐다. 막 차에 탔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나갔어요?”
“응”

그때 시간이 고작 6시 55분이었다. 아내는 서윤이가 깨서 그렇게 물어봤을 거다. 내가 아직 안 나갔다고 하면 방에서 데리고 나와서 부녀 상봉이라도 시켜 주려고.

연휴 전 마지막 날이니 혹시라도 이른 퇴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끝까지 기대의 끈을 놓지 못하는 아내에게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마음을 접으라고 통보했다. 대신 한 40분 일찍 퇴근했다. 비록 40분이지만 극심한 퇴근 정체는 피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기는 했다.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마침 아내에게 전화가 왔지만 능청스럽게 아직 사무실이라고 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귀가한 남편, 아빠를 보며 놀라는 모습을 보는, 내 나름의 소소한 즐거움이랄까.

저녁 먹고 장을 봐야 해서 장을 보러 나가는 김에 밖에서 먹기로 했다.

“오늘 주방 문 닫았어. 일찍 닫았어. 나가서 먹자”

주인이 문 닫았다고 하면 별 수 없다. 장 볼 마트 근처의 분식집에서 먹었다. 소윤이가 먹으면서 자꾸 바르게 앉지 않고, 신발을 만지고 그랬다. 몇 번 주의를 줬는데도 계속 같은 행동을 하길래, 조금 엄하게 얘기하기도 했다.

서윤이가 울어서 아기띠로 안고 먹었는데, 다 먹었을 때쯤 잠이 들었다. 다시 차에 태우면 깰지도 모르니 아내가 차를 가지고 마트로 가고, 난 애들을 데리고 걸어가기로 했다. 아내와 나의 대화를 들은 소윤이가 얘기했다.

“엄마. 저는 엄마랑 갈래여”

다분히, 엄한 꾸중을 여러 차례 반복한 아빠를 향한 서운함이 담긴 의사 표현이었다.

“소윤아. 아빠가 뭐라고 해서 기분 상했어?”

소윤이는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런 게 소윤이와 소통할 때 난이도가 높아진 거다.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야 당연한 거고 필요하지만, 그와 별개로 어쨌든 서운함과 슬픔을 느끼는 거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더라도. 그런 건 소윤이의 의지로 완전히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이고. 이런 걸 건강하게 다뤄줘야 마음의 구멍이 생기거나 모서리가 생기지 않을 텐데.

“시윤이는? 아빠랑 갈래, 엄마랑 갈래?”
“더는 아빠랑 갈래여어”

걸어도 5분이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긴 했다.

형님(아내 오빠)네 부부를 만나 함께 장을 봤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엄청 졸릴 시간이었다. 각자 자리에서 자기 소임을 다 하고 온 어른들 역시 피곤하긴 마찬가지였다. 다들 뭔가 차분했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 언제 또 다 씻겨서 재우나’

하는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도 나왔다.

“아, 언제 씻기냐”
“여보. 내가 씻길 테니까 여보가 서윤이 좀 안아줘”

서윤이는 내 품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빽빽 빽빽 빽빽 울어댔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아기띠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체는 내가 받치고 있으니까 어쩌지 못해도 상체를 계속 바깥쪽을 향해 돌렸다. 계속 매섭고 서럽게 울면서. 정말 계속. 소윤이와 시윤이를 다 씻긴, 아내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

정신이 없는 것도 없는 건데, 다소 서운했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울면 재깍재깍 안아 주고 놀아 주고 달래 주고 웃겨 주고 업어 주고 그랬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물론 배도 고프고 졸리기도 한, 가장 안 좋은 조건이기는 했다. 그래도. 179일 동안 지극 정성으로 마음을 줬는데, 무슨 낯가림 해서 놀란 아이 마냥 조금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아내의 품에 안기니 거짓말처럼 뚝 그쳤고.

물론 아내랑 비교할 바는 아니다. 아내는 삼시 세끼 밥도 주고 24시간 중에 24시간을 붙어 있는 정신적, 육체적 숙주 아니 지주고. 하루에 고작 1시간 정도 안아준다고 나대면 안 된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서운하긴 하네? 강서윤?

서윤이 태어나기 전에 요 무렵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엄마만 찾는 아이들 보며 서운하다고 하면, 육아에 통달한 사람처럼 ‘원래 그런 거지 뭐. 다 지나갈 일인데’라고 생각했었다.

원래 다 그런 거 알고, 두 번이나 겪었지만 서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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