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30(수)
소윤이와 시윤이는 지난주부터 수요일이 되려면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봤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과 숙모를 한 방에 만날 수 있는 추석 연휴가 언제 시작인지 묻는 것이었다. 거의 매일 ‘이제 몇 밤이 남았는지’를 확인했다.
장인어른의 환갑을 기념해 아주 오래전(코로나를 몰랐을 때)에 해외여행이라도 보내 드릴까 구상했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고 다른 생일과 완전히 똑같이 지내는 건 아쉬우니 가족끼리 국내 여행이라도 짧게 다녀오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마저도 코로나 사태가 이토록 길어지고, 오르락내리락 할 거라는 예상을 하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나와 아내, 장모님과 장인어른, 형님네 부부)만 사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의 독채 숙소를 찾아 예약했다. 오늘부터 모레까지 3일간.
소윤이와 시윤이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역시나 이른 아침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당일이 되자 남은 ‘밤’의 수를 확인하던 질문이, 출발 시간을 확인(혹은 독촉)하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아빠. 우리 몇 시에 출발하는 거에여?”
출발 전날이라고 사정 따위 봐 주지 않는 서윤이 덕분에 다름없이 잠을 설친 아내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이때는 어쨌든 서윤이도 자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덕분에 쉬는 날에도 강제로 부지런해진 나는, 세차를 하고 왔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아내와 서윤이도 깨어 있었다. 아내는 막바지 짐 챙기기와 집 정리로 아침부터 분주했다. 긴 연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충격파를 줄이려면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나가야 한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영향도 많이 받는 아내는 언젠가부터 철저하게 이걸 지키고 있다.
“아, 맞다 머리 못 감았네”
아내는 진심이 묻어나는 짜증스러운 표정과 함께 얘기했다. 짐 챙기고, 집 치우고, 애 셋 챙기고 그러다 보니 머리 따위 감을 정신은 남아 있지 않았던 거다. 이미 시간이 촉박해서 서둘러 나가려던 참이었다.
“여보. 머리 감고 와”
“늦었잖아”
“아니야. 내가 내려가서 애들이랑 쓰레기 버리고 짐 싣고 그러려면 시간 좀 더 걸리니까 여보는 감고 내려와. 말리는 건 안 해도 되잖아”
“맞아. 말리는 건 안 해도 되니까. 그럼 나 머리 감고 갈게. 내가 서윤이는 챙겨서 갈 테니까 여보가 소윤이랑 시윤이 좀 챙겨줘”
이때 머리를 안 감고 나왔으면 아내는 적어도 오늘 하루 내내, 아무도 이해 못 하지만 본인에게는 치명적인 우울감을 어딘가 지닌 채 보냈을 거다. 머리를 감은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짐을 하나씩 맡겼다. 마음먹고 힘주면 부러질 거 같은 여린 손들인데 그것도 사람 손이라고 이럴 때는 큰 도움이 된다.
“아빠. 엄마는여?”
“엄마는 머리 못 감으셔서 감고 오신대”
“왜 머리를 지금 감아여? 나중에 감아도 되잖아여”
“음, 오랫동안 못 감으셨으니까”
엄마의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키는 한계선이란다.
그렇게 챙기고 또 챙겼는데 빼 먹은 게 있었다. 당장 없으면 안 될 만큼 중요한 건 아니라 다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때 ‘나 홀로 집에’를 볼 때마다, ‘아무리 영화라도 그렇지. 자기 자식 놓고 가는 게 말이 되나’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 되고도 남는 이야기다.
숙소는 완전히 자연에 파묻힌,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마스크 벗어던져 놓고 마음껏 떠들고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평소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 게, 이럴 때 빛을 발한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찌 보면 지겨울지도 모르는 환경인데 그런 걸 전혀 느끼지 않고, 반대로 이 좋은 곳에서까지 영상에 집착하느라 볼 걸 못 보는 일도 없고.
서윤이가 걱정이었다. 이 좋은 곳에 와서도 평소처럼 낯가림을 하려나 싶었다. 서윤이는 일관된 사람이었다. 여기서도 엄마, 아빠만 찾았다. 어제 그렇게 배신할 때는 언제고 위기(?)에 처하니 아빠 품을 찾았다(찾은 건 아니고, 찾아줬더니 조용해졌지만). 서윤이가 잠잠해지지 않고 더 많이 울지 않는 이상, 특히 밥 먹을 때는 내가 데리고 있었다. 아내가 밥을 편히 먹는 게 나의 큰 즐거움이다. 불편하게 먹는 나를 보며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몸과 속의 소화 장기는 편한 상태에서 밥을 먹으면 좋겠다.
“여보. 내가 안을게. 여보 얼른 먹어”
“아이, 내가 안는다니까. 얼른. 말 들어. 난 이렇게도 잘 먹어”
“엄마, 아빠 싸우는 거에여?”
“아니, 이건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더 배려 하려고 그러는 거야”
“서로 더 편하게 먹으라고?”
“그렇지. 엄마, 아빠가 그만큼 서로 사랑해서 그래”
평소에 우리 집 저녁, 주말 식탁에서 자주 벌어지는 대화다. 아무튼 서윤이는 오늘도 낯가림을 거두지 않았다. 안겨 있으면 자고 내려놓으면 깨는 거부하고 싶은 기적을 잘도 보여줬다. 마지막 수유를 하고 잘 때도 집에서처럼 엄마의 시간을 많이 뺏었고. 재우고 나왔다가 다시 자러 들어갔을 때도 집에서처럼 깼다.
평소에 비하면 엄청 늦게 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오늘 늦게 잤으니까 내일 너무 일찍 일어나지 말고. 알았지?”
라고 얘기는 했는데, 내 스스로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게 무슨 공허한 당부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계는 없지만, 경험의 축적으로 예민해진 본능의 감각이 외치고 있다.
7시 정도면 선방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