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와 맞바꾼 연휴

20.10.03(토)

by 어깨아빠

요즘은 새벽마다 서윤이 울음소리에 새로운 소리가 추가됐다. 아내의 흐느낌에 가까운 한숨 소리, 혹은 푸념하는 소리.


“하아아. 서윤아아아. 왜 이렇게 깨애에에”


아내는 그러면서도, 미우나 고우나 젖을 물린다. 사실 미울 일은 없을 거다. 힘들긴 해도. 아니, 미울지도 모르겠다. 너무 심하다. 지난밤에도 딱 2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울었다. 이건 뭐 신생아도 아니고. 100일의 배신이 우리 얘기였다는 말인가.


서윤이는 포천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훨씬 나아졌다. 그 덕에 아침에 잠깐이나마 아내가 더 잤다. 서윤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데리고 나갔고. 그냥 멀뚱하니 있는 것도 아니고 살랑살랑 웃고 소리 내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진작에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가려고 나갔는데, 타요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오면 누리는 특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서윤이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넘기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그나마 서윤이가 울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안아줘야 했는데, 허리가 여전히 멀쩡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 엄마는 서윤이가 울거나 칭얼대면 빛과 같은 속도로 아기띠를 장착하고 서윤이를 안았다. 아기띠는 허리에 꽤 많은 부담을 주지만, 그렇다고 아기띠 없이 팔의 힘으로만 안으면 지속 시간이 매우 짧아진다. 허리의 피로와 서윤이의 고요 (가끔은 수면으로 이어지는 값어치 있는)를 맞바꾼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픈 허리 때문에 누워 있다 보니 (허리가 아프지 않았어도 누워 있었겠지만) 또 잠이 솔솔 찾아왔다. 찾아오는 잠을 막지 않고 몸을 아니 눈꺼풀을 맡겼다. 달콤한 낮잠이었다. 평소에도 자고 싶을 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5분만 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하기에는 15분은커녕 너무 많이 자긴 했지만).


오후에는 (내) 엄마, 아빠가 인적이 드문 공원을 알아 놓았다며 거기에 가자고 하셨다. 어제처럼 날씨가 좋았다. 막상 가 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아예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걸 상상하고 갔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이 모여 있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가지고 간 자전거와 킥보드를 딱 5분 타더니 자리에 앉아서 싸 온 간식에 더 집중했다. 과일, 과자 등을 배불리 먹고 나자 다시 자전거와 킥보드를 찾았다.


시윤이가 누나의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하길래 태워줬는데, 생각보다 잘 탔다. 이전에도 타 본 적은 있었지만, 그 새 키도 크고 다리도 길어졌는지 한층 안정감이 느껴졌다. 페달을 구르는 기술도 훨씬 자연스러웠고. 요즘 부쩍 자기도 자전거 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더니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구나.


“아빠아. 더도 나둥에 다던거 다두데여어”


소윤이는 옆에서 열심히 훈수를 뒀다.


“시윤아. 발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시윤아. 앞에를 봐야지 앞에를. 안 그러면 넘어져”

“시윤아. 핸들을 잘 조절해야 돼. 시윤이 너가 가고 싶은 방향이 있지? 그쪽으로 핸들을 꺾어”


거들먹거리는 건 아니었다. 진심으로 동생을 ‘잘’ 지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소윤이는 이런 걸 워낙 좋아한다. 가르치고, 알려 주고, 고쳐 주고.


공원에서도 서윤이는 계속 (내) 엄마가 안고, 업었다. 그대로 잠들어서 정말 거의 계속 엄마 품에만 있었다. 점점 나아지고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통증이 느껴지는 허리 때문에 조금의 보탬도 되지 못했던 나는, 볕 좋은 가을 하늘 아래 누워 있다가 또 잠들었다. 졸리고 피곤한 거야 일상이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수시로 자는 게 가능한 건 아니다. 명절의 축복이었다.


공원에서 오후를 다 보냈다. (부모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치킨과 피자를 주문해서 가지고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요구가 반영되었다. 원래 저녁 먹고 우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소윤이가 아침부터, 아니 어제부터 ‘언제 갈 거냐’, ‘하루만 더 자고 가자’며 닦달했다. 초가삼간이어도 자기 집이 제일이라고, 집에 가서 좀 편히 쉬고 마무리하면서, 아내랑 오붓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하루 더 자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아내나 나는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으니까. 오히려 엄마, 아빠가 너무 피곤하고 힘들까 봐 일찍 가려고 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의 요청에 (내) 엄마가 먼저


“그럼 하루 더 자고 가”


라고 얘기했다. 집 주인의 승인이 떨어졌으니 일정을 연장했다. 하루 더 잔다는 확답을 듣자마자 소윤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그렇게 좋을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제보다는 조금 일찍 재웠다. 오늘은 시윤이도 할머니 옆에서 자겠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와 함께, 서윤이는 엄마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내) 엄마도, 아내도 금방 나왔다. 어제처럼 TV를 봤다. 아내가 있으니 한결 편안했다. 처가도 아니고 내 부모님 집인데.


한참 TV를 보다가 잘 시간이 되었을 무렵,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니, 어쩌다 우리 서윤이가 3시간 이상 자지 못하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서윤이가 되었지? 아내는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얼른 씻고 들어갔는데, 아내는 그 짧은 틈에 잠들었다. 자세를 보면 나온다. 이게 자려고 마음먹고 잔 건지, 아니면 잘 생각은 없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쓰러진 건지. 누가 봐도 후자였다.


아내나 나나, 머리만 대면 잔다. 불면증은 없다. 불면을 권장하는 183일 아가는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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