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시간 가속의 법칙

20.10.04(주일)

by 어깨아빠

아내와 나에게 불면도 없지만, 숙면도 없다. 밤새 울며 젖을 갈구하던 서윤이는 아침이 되자 방에서 사라졌다. (내) 엄마가 데리고 나갔고, 서윤이는 완전히 적응한 듯 조금의 낯가림도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TV를 보는 것도 모자라서, 밥을 먹으며 TV를 보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지만 그냥 뒀다. 어차피 그때뿐이고, 또 할머니의 승인에 따라 이뤄진 일이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그렇게 일탈을 일삼아도 집에 오면 또 프로처럼 원래 자기 생활로 돌아오는 건 기특하다.


(내) 엄마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아내와 나는 아침에 좀 늦장을 부려서 (늦장이라기에는 밤새 너무 잠을 설쳤다) 아침 먹을 시간이 없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아침 겸 점심으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차 안에서 끝까지, 꽉꽉 채워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아빠는 교회에 가고 안 계셨다).


“할머니. 나중에 또 만나자여어”

“하머니이. 나둥에 또 보다여어”

“아빠. 잠깐만여. 할 말이 남았어여. 할머니. 사랑해여”

“아빠. 아직이여. 할머니. 할머니. 나중에 시간 되면 우리 집에 놀러 와여”


아내도 나도 아쉬웠다. 벌써 연휴의 끝이라니. 조금이라도 후련하고 홀가분한 마음이 있었던 사람은 아마 (내) 엄마였을 거다. 자식에 손주까지, 다섯 명을 먹이고 챙기는 건 꽤 강도 높은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다. 손주들과 헤어지는 게 허전하기도 하겠지만, 내심 바라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오직 사랑과 기쁨만 존재했던 순수한 내리사랑의 시기는, 소윤이 홀로 존재하던 때가 끝인 거 같다.


오후쯤 집에 돌아왔다.


“아. 여보. 너무 좋아”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말끔하게 치워진 집을 보고 말했다. 가기 전에 무리하듯 고생하며 치운 건 다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육아에서 해방되었던, 힘들 게 별로 없는 연휴였지만 그래도 피곤하긴 했다. 더 이상 치우고 정리할 게 없는 집에 들어서서, 곧바로 소파에 앉아 좀 쉬었다. 어질러 놓고 갔으면 그러지 못했을 거다. 그렇게 했더라도 마음이 영 편치 않았을 거고. 즐거운 여행의 마무리를 원하는 자, 집을 깨끗이 치우고 떠나라.


나와 소윤이와 시윤이는 축구하러 갔다. 아빠 따라서 축구장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연휴의 종료, 할머니(할아버지)와의 이별의 아쉬움을 완전히 잊었다. 남은 자인 아내와 서윤이가 부디 평온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며 집에서 나왔다.


날이 생각보다 쌀쌀했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니 급격히 기온이 떨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겉옷을 챙기긴 했는데 너무 얇았다. 아쉬운 대로 내 바람막이를 소윤이에게 입히고, 내 티셔츠는 서윤이에게 둘러줬다. 애들한테 수시로 물어봤다.


“소윤아, 시윤아. 안 추워?”

“네. 괜찮아여”

“진짜 안 추워?”

“네. 아직 안 추워여”

“알았어. 혹시 추우면 얘기해. 꼭 얘기해. 알았지?”

“아빠. 그런데 춥다고 얘기하면 어떻게 하게여?”

“어? 그러게. 글쎄. 일단 아빠한테 얘기해. 알았지?”

“네”


한 경기 하면, 한 경기 쉬고, 그다음 경기에는 다시 들어가는 식으로 뛰었다. 체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도 큰 이유였다. 경기 뛸 때는 그렇게 나를 불러 대면서 언제 끝나냐고 물어보고, 쉴 때는 나랑 놀고 그랬다. 나 없을 때는 자전거도 타고 킥보드도 타고, 또 둘이 붙어서 뭔가 사부작사부작 하고.


마지막 경기를 뛰려고 소윤이와 시윤이의 눈을 피해 슬쩍 운동장 안으로 이동했다. 나를 발견한 소윤이와 시윤이가 경기장 안으로 난입했다(아직 경기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사실 그전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순서대로 하면 쉬는 게 맞았다.


“아빠. 하지 마여. 우리랑 놀자여”

“아 소윤아, 시윤아. 이게 마지막이야. 금방 끝나”

“아빠. 방금 뛰었으니까 이제 쉬어야져”

“아, 이게 마지막이야.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아 싫어여. 얼른 나와여어”

“소윤아, 시윤아. 아빠가 이따 맛있는 거 사 줄게”


마지막 한 경기를 위해 ‘맛있는 거’를 팔았다. 그만큼 효과가 좋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곧장 난입을 중단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덕분에 자유롭게 마지막 경기를 뛰었다.


아내는 결코 여유롭지 않았다고 했다. 일단 서윤이가 그리 오래 자지 않았고, 자지 않을 때도 엄마의 품만 찾았다고 했다. 거기에 연휴 내내 쌓인 빨래도 하고, 짐 정리도 하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고 했다. 얼른 서윤이까지 데리고 나와야 진정한 자유고, 휴식일 텐데. 아직 너무 멀었다.


저녁 먹고 나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핫초코를 타 줬다. ‘맛있는 거’ 사러 가는 건 내일로 미루고 대신 핫초코를 준 거다.


“소윤아, 시윤아. 맛있는 거 사는 대신 집에 가서 핫초코 타 주는 건 어때?”

“왜여?”

“시간이 너무 늦기도 했고, 또 중간에 내려서 고르기가 좀 불편하니까”

“음, 아빠 그럼 집에 갈 때까지 고민 좀 해볼게여”


“소윤아, 이제 집 거의 다 왔어. 결정을 해야 되는데?”

“아빠.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여?”

“어떻게?”

“오늘은 아빠 말대로 핫초코를 먹고, 맛있는 건 내일 사 주는 거에여”


고양시의 네고왕이 따로 없다.


“소윤아, 시윤아. 벌써 연휴가 끝났네. 시간 진짜 빠르다”

“아빠아. 내이도 툴근 안 해여어?”

“아니. 내일은 출근해야지”


제일 아쉬워하는 건, 언제나처럼 아내다.


“여보. 내일이 되면 또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프로 중의 프로면서, 겸손은. 아쉬운 건 나도 마찬가지다. 언제 5일이 지나갔나 싶다. '노는 시간'의 숨겨진 비밀이 분명히 있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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