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월)
아내의 생일이다. 연휴 끝나고 바로 이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애 셋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건지 어제까지 아내의 생일이 오늘이라는 걸 알면서도 수시로 까먹었다. 내 기억에 미역국을 끓여 주지 않은 건 올해가 처음인 듯했다. 아내와 나의 동반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아침 일찍 일어나 편지를 쓰고 선물(을 살 현금)을 챙겨서 식탁 위에 두려고 했다. 편지를 거의 다 썼을 때쯤 아내가 서윤이를 안고 거실로 나왔다. 별거 아니긴 해도 그냥 띡 주는 건 재미가 없으니, 아내 모르게 식탁에 두고 나가려고 애를 썼다. 다행히 아내가 비몽사몽이라 눈치를 채지는 못했다.
연휴를 보내고 맞이하는 첫날이 곧 생일이고, 아이 셋과 함께하는 아내는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역시 남는 건 가족이라고, 장모님과 형님(아내 오빠)이 와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고 했다. 잠시나마, 미약하게나마 오늘의 주인공이 본인이라는 사실을 느꼈으려나. 생일이라고 누가 특별히 자유를 주는 것도 아니고, 아내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중고로 산 유모차를 받으러 다녀 오기도 했고, 언제나처럼 수유와 끼니 제공이라는 임무를 해결하면서. 아침에 식탁에 놓아둔 편지와 선물에 관한 언급이 없길래 내가 먼저 물어봤다.
“여보. 아침에 내가 두고 온 건 봤어?”
“어, 봤지”
“뭐야. 그런데 왜 말이 없지?”
“너무 바빴어. 얘기할 정신이 없었어”
엄마의 생일이라고 편의를 봐 주고, 자치력을 높여 알아서 뭔가 하고. 그러기에는 애들이 아직 너무 어리다.
저녁에는 외식을 하기로 했다. 아내가 이전부터 가고 싶어 하던 월남쌈 집이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칼같이 퇴근해서 정말 부지런히 퇴근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밟아가면서. 꽃집에 들러 자그마한 꽃다발을 샀다. 역시 그냥 주면 재미없으니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타고 갈 차에 두고, 집에 올라갔다(마침 아내가 차를 안 잠가서 가능한 일이었다). 외출 준비를 마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아내는 작은 꽃 선물도 참 좋아한다.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다. 선물한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
식당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니, 너무 만족스러웠다. 주인공인 아내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고, 내가 애들을 챙겨야 했지만 오늘은 불가능했다. 일단 서윤이가 엄청 협조적이지는 않았다. 유모차에 앉는 걸 거부했다. 잠들어서 눕히면 깨고, 깨면 울었다. 아내가 아기띠로 안거나 업어야 진정이 됐다. 평소에 밥 먹을 때만큼은 내가 서윤이를 볼 때도 많지만, 오늘은 음식이 월남쌈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끊임없이 라이스페이퍼를 공급해야 했고, 쌈 싸는 게 능숙하지 않은 시윤이에게는 아예 완성된 쌈을 제공해야 했다. 나 먹을 거 싸기에도 바쁜 게 월남쌈인데 애 둘까지 챙기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둘 다 엄청 잘 먹어서 속도도 빨랐다. 애들 챙겨주고 내 거 먹을 때는 고깃집에서 쌈 싸 먹는 것처럼 크게 싸서 넣었다. 한 번에 많이.
아내도 나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느라 분주한 식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웠다. 다음에 또 오고 싶었다. 데리고 오고 싶은 사람도 많았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너무 잘 먹어서 그것도 좋기는 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아내랑 둘이 오붓하게 월남의 정취를 만끽하며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카페까지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장모님이 조각 케이크를 사 주셔서 그걸로 생일 축하 의식을 치렀다. 매년 다른 모습의, 나름의 의미를 가진 생일을 보내는 건 참 감사하다. 작년에는 부른 배를 안고 생일 축하를 했는데, 올해는 그 부른 배 안을 차지하고 있던 녀석이 아내에게 안겨 있다니. 새삼 신기하고, 감사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커서 각자 엄마에게 줄 선물도 준비했다. 소윤이는 각종 쿠폰 (엄마 말 잘 듣기, 서윤이 잘 돌봐 주기 등), 시윤이는 고구마 그림 편지. 얘네랑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선물인데 뭐가 더 필요하겠나.
소윤이와 시윤이는 케이크 먹을 때는 없던 체력도 솟아나고,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른다. 아내와 나는 너무 피곤했다. 5일의 휴식을 끝내고 맞은 첫 업무 개시일이었다. 피곤한 게 당연했다. 게다가 평소에 비하면 육아 특특특특야근이었고.
모든 걸 마치고 평소처럼 아내가 애들과 함께 방에 들어갔다. 모든 게 평소와 비슷했던 하루에, 조금 다른 일이 벌어졌다. 서윤이를 재우고 나오던 아내가, 오늘은 잠들었는지 소식이 없었다. 엄청 고민했다. 그래도 생일에 이렇게 잠들면 너무 허망하지 않을까 싶어서 깨우려다가, 그렇게 깨면 뭘 하겠나 싶어서 그냥 그대로 뒀다.
오늘의 허무한 마무리를 보상하는 의미로, 내일은 잠깐이라도 나갔다 오라고 해야겠다.
여보,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