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껌딱지, 아빠 자석

20.10.06(화)

by 어깨아빠


소윤이는 비염 때문에 크게 고생을 하고 있다. 너무 심해서 연휴 전에 병원에 가서 약도 처방받아서 꾸준히 먹였는데, 잠시 나아지나 싶더니 어제부터는 다시 심해졌다. 전국의 모든 비염 환자들이 다 소윤이처럼 고생하고 있다는 걸 보면, 소윤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안쓰럽다. 하루 종일 재채기하고 코를 푸는 걸 보면. 퇴근해서 만났을 때는 코밑이 빨갰다.


아내가 낮에 밖에 나가서 찍은 사진을 보내줬다. 소윤이, 시윤이가 모두 자전거를 타고 있고 서윤이는 유모차에 앉아 있고. 사정을 모르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난이도가 꽤 높은 외출의 모습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자전거 운전이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주시해야 하고, 거기에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서윤이도 있고. 능숙함과 별개로 근력과 힘이 많이 필요하다. 나도 애 셋을 데리고 나갈 때는 자전거는 당연하고, 킥보드 타고 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다. 단지 안에서만 타는 건 상관없지만 어딘가를 가야 하면, 찻길을 너무 많이 지나야 한다.


역시나 아내는 어디 멀리 가지 못하고 단지 안에서만 탔다고 했다. 사실 여기가 문제의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그 구도로 장을 보러 가는 건 너무 어려우니, 자전거는 집에 놓고 장을 보러 가자고 했는데 시윤이가 거부했다. 거부가 아니라 떼를 썼다. 자전거를 타고 가고 싶다고, 더 탈 거라고. 선을 넘어 버렸고, 장보기를 겸한 외출은 취소되었다. 또 이것 때문에 소윤이도 서럽게 울고. 시윤이는 집에 와서도 변함없이, 아니 오히려 더 농도가 짙어졌다.


“여보”

“어, 여보”

“어디쯤이에요?”

“가고 있어. 거의 다 왔어”

“아, 여보. 오늘은 와서 시윤이랑 얘기 좀 해야겠어요”


옆에서 시윤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싫다고 악을 쓰는 게 들렸다. 한 명을 오래 붙잡고 훈육하는 것도 어렵다. 애가 셋인 엄마에게는. 요즘은 서윤이가 ‘엄마’의 존재와 의미를 너무 정확히 알아서, 조금만 거리가 생겨도 격렬하게 울며 엄마를 찾는다. 그러니 마냥 시윤이에게만 매달릴 수도 없고. 또 엄마보다는 아빠를 무서워하니까. 아내는 시윤이를 나에게 넘겼다.


시윤이는 거실에 누워 자고 있었다. 엄청 졸렸나 보다. 혹시 ‘혼나기 싫어서 자는 척하는 건가’하는 의심도 했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바닥에 방치(?)된 서윤이는 서럽게 울었고. 일단 시윤이를 깨워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순한 양이었다. 꼭 아빠가 무서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고, 시윤이도 감정의 한 고개를 넘긴 듯했다. 잘 얘기하고 거실로 나갔다.


아내는 새우볶음밥을 만들고 있었는데, 새우잡이 배에 타서 직접 새우를 잡아왔나 싶은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 우는 서윤이까지 한 팔로 안고. 남은 건 내가 이어받아서 만들었다. 폭풍 같았던 시간을 지낸 것에 비하면, 저녁 식사 자체는 아주 즐거웠다. 맛있었고.


“여보. 나갔다 와”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에게 얘기했다.


“에이. 갑자기? 괜찮아. 나 멘탈 괜찮아”

“아니. 어제 생일인데 허무하게 끝났잖아”

“서윤이 깨면 어떻게 하려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야. 어딜 가겠어”

“왜.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와”

“서윤이 괜찮을까?”

“뭐. 괜찮겠지”


아내는 급히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여보. 깨면 전화해”

“어. 잘 갔다 와”


난 믿었다. 아빠랑 있으면 왠지 평소보다 잘 자고, 덜 깨는 ‘아빠 앞에만 서면 연기하는 자녀들’ 법칙을. 하루 종일 엄마는 그렇게 힘들게 하면서, ‘어디 한 번 혼 좀 나 봐라’는 심정으로 아빠한테 넘기고 나가면 희한하게 잘 자고, 잘 먹고, 울지도 않고, 땡강도 안 피우고. 뭇 엄마들을 억울하게 만드는 일이 오늘 밤, 우리 집에도 생길 거라고 믿었다.


산산조각 났다. 나의 믿음은. 서윤이는 11시쯤 깨서 울었고, 내가 방에 들어가니 누구인지 살피는 듯 잠시 멈췄다가, 오히려 안아주니 더 세차게 울었다. 누군가 안아줬다는 만족보다, 날 안은 게 엄마가 아니라는 것에 분노하는 울음이었다. 서서 안아도 울고, 앉아서 안아도 울고, 바닥에 내려놓으면 더 울고. 방법이 없었다. 이래도 저래도 우니까, 그냥 내가 가장 편한 자세로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서윤이를 안고 토닥였다. 그렇다고 고분고분하게 안겨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N극을 만난 S극처럼 어찌나 바깥쪽으로 몸과 고개를 뻗대는지. 어휴. 40분 동안 그랬다.


왜 아내에게 전화하지 않았나. 그냥 그러고 싶었다. 조금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성한 부모들은 애를 그렇게 오래 울리는 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애 둘을 꽤 많이 울려 본 나름의 임상 결과, 그 정도는 충분한 사랑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짧은 휴식을 누리는 아내의 행복을 파괴하는 게 더 슬픈 일이다. 나에게는. 아무리 서윤이라도.


미안하다, 서윤아. 그래도 아빠는 널 외면한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어.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도 아빠는 널 계속 안아줬어. 니가 아빠를 거부한 거지. 짜식이 말이야. 섭섭하게. 이름 바꿔라. 강서운으로.


아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서윤이를 안았다. 촌스러운 표현이지만, 정말 무슨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울어대던 녀석이 아내에게 안기자마자 울음을 뚝 그쳤다. 정말 안기자마자. 0.001초만에. 와, 어이가 없어서 정말. 내가 뭐 잡아먹기라도 하나. 그렇게 물고 빨고 애지중지 금지옥엽 깨질까 부서질까 허리가 나가도록 안아주며 길렀는데.


세상의 수많은 아빠들이여, 우리가 넘지 못하는 벽이 있으니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아빠는 엄마를 넘을 수 없어요.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고, 난 허망함에 잠시 소파에 앉아 시간을 허비했다.


서윤아, 괜찮아. 많이 서운하지만, 그래도 내일 또 안아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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