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쉬니까 오늘 조금 달려도

20.10.08(목)

by 어깨아빠

애들이 무척 보고 싶었다. 그저께 밤에 보고 어제 아침, 어젯밤, 오늘 아침까지 못 봤으니 평소에 비하면 엄청 오래 못 봤다. 많이 보고 싶었다.


“오늘은 육아 안 하고 싶은 날이네. 여보도 출근 안 하고 싶은 날이 있겠지? 그래도 힘냅시다”


그리움에 젖은 나하고는 다르게, 아내는 아침부터 고된 시간을 보낸 듯, 이런 카톡을 남겼다. 금방 떨쳐낼 아내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아내의 기분을 좋게 해 줄 방법을 찾았다. 고작 생각해 낸 게 저녁에 외식하는 거였다. 아내가 정말 좋아하는 무언가를 먹으러 가기로 정하면, 아내는 그걸 먹을 상상을 하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예를 들면, 파스타를 먹으러 가기로 하면 아내는 그 식당에 관한 후기를 계속 찾아보면서 자기도 곧 가서 먹을 생각에 행복해지는 식이다.


외식은 하지 않았다. 뭔가 아내의 마음에 꼭 드는 게 없기도 했고, 번거롭기도 했고. 외식은 항상 그렇다. 차려 먹는 게 귀찮아서 나가는 건데, 막상 나가면 더 번거로워서 이게 누굴 위한 짓 아니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우리가 애 셋이라 더 그렇겠지만.


대신 저녁 먹고 잠시 나가기로 했다. 내일이 쉬는 날이라 부담도 없으니. 아내는 열심히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무려 거의 이틀 만에 만난 소윤이와 시윤이를 반갑게 안았다. 서윤이는 아내에게 업혀서 반쯤 풀린 눈으로 날 보더니 스르륵 미소를 띠었다.


소윤이는 새로 습득한 놀이를 알려줬다. 소윤이가 이름 붙이기는 ‘색깔 게임’이다. 빨간색으로 쓴 ‘파랑’, 파란색으로 쓴 ‘노랑’, 보라색으로 쓴 ‘초록’ 이런 글자를 적은 종이 여러 장을 진행자 한 명이 한 장씩 보여주면, 나머지 사람이 글자가 아닌 색을 맞추는 게임이었다. 나름 재밌었다. 딱 세 번 정도까지만. 그다음부터는 너무 익숙해져서 시시했다.


대신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길이에 상관없이 읽고 싶은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열심히 읽어줬다. ‘한 가젤이 몸이 작아진 사자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자기 엄마를 잡아먹은 사자라 복수하려다가 참는’ 내용의 동화책을 읽는데, 시윤이가 갑자기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아빠아. 더는 이 짹을 읽으믄 독당해여어”

“속상하다고? 왜?”

“그양여”

“왜? 어느 부분이 속상해?”

“그냥 독당한 댕각이 드더여어”

“어느 부분이?”


신기했다. 시윤이는 정말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마치 울음을 참으려고 멋쩍게 웃는 어른처럼. 시윤이는 엄마를 잃은 가젤이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그림이 그려진 페이지를 펴며, “여기가 독당해여어” 라고 말했다. 시윤이의 감정이 풍부해진 걸 느끼긴 했는데,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걸 보니 참 새롭다.


아내는 매우 지쳤다. 이미 아이들에게 ‘밤산책’을 공표한 뒤라 무를 수는 없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밤산책이고 뭐고 다 취소하고 얼른 퇴근하고 싶어 보였다.


“아빠. 우리 밤산책 갈 거에여”

“글쎄. 모르겠네. 엄마한테 여쭤 봐야지”

“아니, 간다구여. 엄마랑 가기로 얘기했다구여”

“아, 그랬어? 그래야지. 그럼”


원활하고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모든 탈것은 두고 나갔다. 도보 산책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딱 롯데슈퍼까지만 갔다 오는 거야. 알았지?”


아내는 미리 산책의 범위를 지정했다. 사실 엄청 짧은 거리긴 했다.


“엄마아. 그 덩도는 너무 딸바여엉. 아빠아. 너무 딸븐데여엉?”

“그래? 그럼 시윤이는 어디까지 가고 싶은데?”

“한달림까지”


하아. 이 녀석들의 소박함이란. 어렵게 얻어낸 협상의 기회를 고작 50m 정도로 만족하다니.


나오기 전까지는 힘들어도 막상 나오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한다. 요즘 날씨가 그렇다. 밤공기가 너무 선선하고 상쾌하다. 마트에 들러서 특별 간식도 사 주고, 놀이터에 들러서 신나게 그네도 밀어줬다. 심지어 집에 돌아와서, 마트에서 산 과자도 먹었다. 그 늦은 시간에. 내일이 휴일이라 아내와 나의 마음이 넉넉했다.


그렇게 지쳤던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육아 퇴근을 하자마자, 가사 출근을 했다. 쌓인 (사실 쌓은 것도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 생산되는 설거지와 빨래가 그 정도 양이다) 설거지와 빨래, 집안 정리를 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 아니 다 썼다.


“여보. 그래도 내일 휴일이다”


다시 한번 세종대왕님께 감사드리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