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다음부터는 아빠 혼자 올게

20.10.09(금)

by 어깨아빠

서윤이는 밤에 깨는 횟수가 한 번 줄었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이번 주에 몇 번 그랬다.


“여보. 한 번만 덜 깨도 피로도가 완전히 달라”


아내의 진술이다. 대체로 6시간에 두 번 정도 깼으니까, 아내는 거의 2시간에 한 번씩 깼다. 한 번 줄어도 3시간에 한 번은 깨야 하는데, 그것도 감지덕지(?)라며 훨씬 덜 피곤하다고 말하다니. 부디 완전한 밤잠으로 가는 과정이기를.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부터, 아니 어제부터였나 놀이터를 가자고 했다. 미리 약속한 일이기는 했다. 시간을 정확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어제를 기준으로 ‘내일’ 가기로 했다. 차라리 어디 공원에 가자고 하면, 흔쾌히 그러자고 하겠는데 놀이터는 왜 이렇게 구미가 안 당기는지.


“아빠. 놀이터는 언제 갈 거에여?”

“밥 먹고 가야지”

“밥 먹고 언제여?”

“글쎄. 밥 먹고 시간 봐서”


내가 생각해도 답답하고 화가 나는, 애매모호한 대답이었다.


날씨는 여전히 좋았다. 놀이터 말고 조금 더 멀리 나가서 바람을 쐬고 싶기도 했고, 살 것도 있었다. 사 주고 싶은 게 있기도 했고.


“여보. 아울렛에 사람 많을까?”

“어디? 파주?”

“어”

“많지 않을까?”

“그래? 그러려나?”


갈까 말까 고민을 거듭하다, 가 보기로 했다. 갔다가 사람 많으면 뭐 다른 곳에 가서 바람 쐴 생각이었다. 가는 길에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샀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 안에서 김밥을 먹었다. 애들 마실 물을 사러 먼저 안에 들어 갔다 나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발 디딜 틈이 없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는 많았다.


“아빠. 캠핑 가면 이렇게 차 안에서 밥 먹는 거에여?”

“그렇지. 여기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놀기도 하고”


옆에서 아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어우, 생각만 해도 불편해”


내 생각에도 우리 가족이 야생성(?)이 엄청 높은 가족은 아니다. 경험을 안 해 봤으니 모르는 일이지만, 왠지 그럴 거 같다. 일단 아내는 캠핑의 감성, 그러니까 불 피우고, 고기 구워 먹고, 불멍하고, 밤에 수다 떨고 이런 건 좋아하는데 자는 건 어느 정도 호텔 감성이 있어야 한다. 소윤이도 왠지 아내랑 비슷할 거 같고. 시윤이는 의외로 깔끔 떨 때가 많고. 난 다 좋은데, 그걸 설치하고 정리할 때 성격이 드러날 거 같다. 아내랑 맨날


“아, 캠핑 장비 좀 하나씩 사야 되는데”


라고 얘기만 하고 영 진행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혼자 갔을 때도 사람이 많다고 느꼈는데, 애 셋을 데리고 가니 그 느낌이 더 선명해졌다. 애들까지 챙기려니 혼이 나가는 듯했다. 난 뭐 살 때 오래 걸리는 편이 아니라 대충대충 보고 슥슥 잘 집어서 사는데, 그런 나도 굉장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침착하게 뭘 구경할 상황이 아니었다. 매장 몇 개를 들어가 보고는 금세 마음을 접었다.


‘역시. 쇼핑은 애들이랑 오면 안 되는구나’


그때 (내) 엄마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코스모스 보러 파주 어딘가에 오셨는데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 그러기로 했다. 소윤이한테는 비밀로 하고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했는데, 아내의 통화를 들은 소윤이가 이것저것 캐물었다.


“엄마. 신림동 할머니랑 왜 전화했어여?”

“엄마. 오늘 만나기로 한 거에여?”

“엄마. 신림동 할머니, 할아버지 오신대여?”


일단 얼버무렸다. 그런 일 없다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울렛에 있는 기차(한 5분 정도 거리를 순환하는)와 회전목마를 탔다. 여기에 오면 그게 있다는 걸 정확히 기억하고, 출발할 때부터 그걸 타고 싶다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계속 물어봤다.


“아빠. 기차는 언제 타는 거에여?”

“아빠. 기차는 어디서 탈 거에여?”

“아빠. 꼭 탈 거져?”


그래, 생각해 보니 이 질문 때문에 더 정신이 없었다. 기차는 애들이랑 아내랑 탔다. 난 잠든 서윤이가 누워 있는 유모차를 끌고 기차를 따라갔다. 사실 걷는 게 더 빨랐다. 그다음에는 회전목마도 탔다. 어쩌다 보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서로 볼 수 없는 반대편에 각각 앉았다. 시윤이는 꽤 높은 말위에 앉았는데, 회전목마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웃지도 못했다. 무섭다고 운 건 아니었지만 긴장해서 표정과 동작이 경직됐다.


“시윤아. 손 한 번 흔들어 줘”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반응이 없었다. 자기 앞의 봉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아빠. 저는 놀이기구 중에 바이킹이 제일 재밌어여”


소윤이한테는 시시했을 거다. 바이킹 탈 때의 간질간질함을 즐기는 녀석에게, 회전목마라니.


다시 차에 타서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엄마한테 연락해 봤어?”


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뒷좌석에서 아내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소윤이가 묘한 미소와 함께 질문을 던졌다.


“아빠. 근데 왜 자꾸 신림동 할머니 얘기를 해여?”


깜짝 놀래 주고 싶었는데, 소윤이 눈치가 너무 빨랐다. 그냥 밝혔다.


“소윤아, 사실 맞아. 오늘 신림동 할머니, 할아버지 만날 거야”

“다 알고 있었거든여”


예상치 못한 선물(할머니, 할아버지의 방문)을 받은 소윤이와 시윤이는 많이 들뜨고 흥분했다. 다소 말을 안 들었다. 몇 번 주의를 줬지만, 비슷했다.


“여보. 애들이랑 놀이터에서 5분만 놀다 와여”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먼저 집에 들어가서, 속성으로 집을 치웠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네를 좀 타다 들어갔다. 원래도 깔끔했던 집은, 아내의 속성 5분으로 훨씬 더 깔끔해졌다. 아내는 급격히 체력이 방전됐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노느라 귀를 닫은 소윤이와 시윤이는 말을 안 듣지, 졸린 시간이 된 서윤이는 아내에게 안겨야만 울음을 그치지. 아내는 소파에 앉아 서윤이를 안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노느라 정신이 없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멍하니 쳐다봤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셨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빠르게 현실(?)로 복귀했다. 소윤이는 그 와중에


"아빠. 놀이터는여?"


라고 물었다. 바람도 쐬고 왔고, 기차와 회전목마도 탔고, 예상하지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방문도 있었지만 그게 놀이터는 아니니까.


차에서 많이 잔 시윤이를 빼고는 모두(소윤, 서윤) 금방 잠들었다. 시윤이는 20-30분 뒤에 문을 열고


“쉬 마여워서 나왔더여어”


라고 말하더니, 화장실에 가서 개미 오줌만큼도 안 되는 극소량의 오줌을 싸고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내와 나는 영화를 봤다. 그토록 피곤해 하던 아내지만, 영화 볼 때는 조는 법이 없다.


“여보. 내일이 아직도 토요일이라니”

“좋아?”

“좋지 그럼”


내일은 또 뭐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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